아루 2편

무직의 스물다섯

by 최열음

열음이 잠시 일했던 스타벅스에서 아루와 이야기를 나눴다. 하필 직장인 점심시간과 겹쳐 매우 혼잡했다. 인터뷰가 끝나면 아루는 동생네 아기를 돌보러 가야 했고, 열음은 피부과를 갈 것이었다. 우리의 다음 일정은 꽤 소소하지만 중요했다. 우리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직장인들이 하나둘 빠져나갔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밀도 있는 대화를 나눴다. 말하고 싶은 자와 듣고 싶은 자가 정해져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통은 아루와 열음이 만나면, 열음이 말하고 아루가 들었다. 그러다 아루가 하고 싶은 말이 생기면 모든 지분을 내어주곤 했다. 행방과 예측이 필요 없는 대화였다.


그러나 오늘은 무척이나 행방이 정해져 있었고… 열음은 아루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질문지까지 펼친 것이다. 그러나 아루가 펼쳐준 세상 속에서 열음은 간혹 길을 잃었다. 여러 갈래로 난 길에서 도착점을 찾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었다. 아마 아루가 그런 상황인 것 같았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면 아루는 길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은 행방이 정해져 있지 않다고 해도 그는 자신이 서 있는 지점이 어딘지 아는 것 같았다. 열음은 아루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그냥 아루가 이대로 쭉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아루의 세계가 어떻게 확장될지 궁금해하며 이야기를 마저 들었다.


사진 출처: 인스타그램 @betters_korea


- 무직인 상태인 동안 남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과,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있다면.


들은 말은, 요즘 뭐 하고 지내…?


- (웃음) 이거 진짜 무직인 공개 처형이다.


사실 이 말도 헤어질 때 ‘밥 한번 먹자’ 같은 별 의미 없는 인사잖아요. 그냥 인사치레인데… 무직인에게는 비수가 꽂히는 거죠. 만나자마자 묻지마로 ‘퍽…’하고 맞는 느낌. 원래는 요즘 무얼 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서슴지 않고 말할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올해는 정말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아무것도 안 한 것도 맞지만, 이유가 있긴 하니까요… 변명을 하기는 또 구차해지고요.


- 그렇죠. 정말 ‘아무것도’ 안 한 건 아니고, 계속 무언가를 하고 있었지만… 공식적이고 생산적인 일이 아니라면 선뜻 말하기가 어렵잖아요.


그리고 제가 취업을 하고 싶지 않아서 가만히 있는 게 아니라… 언제 어디서 무슨 공고가 올라올지 모르니까요. 다른 친구들은 특정 회사나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텐데, 저는 두루뭉술하게 말할 수밖에 없더라고요. 오랜만에 만난 친구에게 이토록 장황한 서사를 말하기도 어렵잖아요. 사실 상대방은 이 정도의 정보를 원하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해요. (웃음)


- 요즘 뭐 하냐고 물어봤는데, 5분 동안 설명하는 것도 좀 그렇잖아요…


그렇죠. 그렇다고 그냥 ‘아…’ 하고 가만히 있으면, 슈퍼백수 같잖아요? 사실 억울하죠.


- 억울한 마음이 백수의 기본 태도가 아닐까 생각해요.


그리고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한 말은 ‘너 그래서 뭐 할 건데…?’


- (웃음) 진짜 다 똑같네요.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하는 위치에 있는 것 같아요.


‘하면 언제 할 건데…?’ 이것도요.


- 그러면 현재 생활에 필요한 수입은 어떻게 내고 계시나요?


지금은 주말마다 ‘크리스피 크림’에서 알바를 하고 있는데요. 2년 정도 알바를 하고 그만뒀었는데, 아직 취업 전이면 조금 더 일해줄 수 있냐는 제안을 받고 다시 일을 시작했어요.


- 요건 언제까지 하실 계획인가요?


마침 지난주에 말씀을 드렸어요. 이번달까지만 일하겠다고…


- 지금 그만두시는 이유가 있나요?


이제… 취업을 하든지, 저만의 사업을 하든지 하려면 돈이 들어올 구석을 없애야 할 것 같아서요. 발등에 불이 떨어져야 몸을 움직일 것 같거든요. 사실 그만두겠다고 말한 건 아니고, 고민 중이라고 말씀드렸는데 점장님이 ‘그럼 이번달까지 하는 걸로 알고 있을게~’ 하고 말씀하셨어요. (웃음)


- (박장대소) 진짜로?


대화가 그런 쪽으로 흘러버려서요. 이것도 언젠가 제게 좋은 타이밍이었다고 말하게 될 때가 오지 않을까요~


- 아동 미술 교사도 생각해 보신다고 들었는데, 그것도 준비하시는 건가요?


아, 지금 10월 말에 마감되는 공고가 하나 있는데요. 콘텐츠 마케터 쪽이거든요. 아동 미술보다는 그쪽을 중점적으로 준비할 것 같아요. 혹시라도 잘 안 되면 아동 미술 쪽으로… 만약 그렇게 되면 투잡을 하려고 해요. 제 작업도 같이 준비하려고요.


- 한 달 동안 최소로 필요한 생활비는 얼마라고 생각하시는지. 혹시라도 부족하다면 어떤 식으로 메꾸시는지도요.


졸업과 동시에 자취방을 빼고 본가에서 살고 있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월 40-50만 원 정도로 지내는 것 같아요. 주말 알바로 그 정도는 커버할 수 있거든요. 물론 약간은 부족하긴 한데… 정말 부족할 때는 이런 식으로 하는데요. 핸드폰을 보여드려도 될까요?


- (당황하며) 카드 내역을 보여주시게요?

아루-엄마의 카톡방 캡처본

‘하아… 기다리는 중…’ 하면서 엄마에게 카톡을 보내면, 돈을 보내주세요. 물론 공짜로 받는 건 아니고요. 항상 대가를 지불해야 해요. 저희 집 신조가 그렇거든요. 부모님의 부탁을 들어준다거나, 빌리고 갚는다거나 하는 거예요.


- 이번에 받은 건 어떤 거래를 하셨나요?


(웃음) 반은 퀘스트를 해서 얻어냈고, 반은 갚기로 했어요.


- 어떤 대가를 지불하셨는지 너무 궁금한데요.


(웃음) 그건 엄마의 사적인 영역이라서…


- 아, 알겠습니다. (웃음) 무직이라서 가장 좋은 점과 나쁜 점이 있다면요.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 시간이 많다는 거예요… 시간이 많으니까 약속을 유동적으로 잡을 수 있다는 게 좋고요. 한편으로는 언제 취직을 당할지 모르니까 먼 미래의 약속은 잡기 어렵더라고요. 김칫국일 수도 있지만 취업을 언제 할지 모르니까요.


그리고 자소서 같이 해야 할 일들을 뒤로 미루는 경향이 있어요. ‘나중에 써도 되겠지~’ 하면서 느슨한 마음을 먹는 게 부작용인 것 같아요.


- 이번에 새롭게 추가한 질문인데요. 무직인에게 필요한 게 있다면 무엇인지.


하… 돈이요. 속세적으로 말하자면 돈이고요.


- 저희가 뭐 엄청난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죠. 그냥 딱 생활할 정도 아닌가요?


뭐, 백만 원이면 더 좋은 거고요… 정서적으로는 저를 지지해 주는 존재가 필요한 것 같아요.


- 있어요? 몇 명 정도 있나요, 혹시 다섯 명? (아루와 열음이 포함된 여섯 명의 모임이 있음)


아니, 뭐… 다섯 명도 그렇고요. 되게 많아요. 뭐… (어쩐지 말끝을 흐린다)


- (쩝…) 축하드려요. 아까 생산적인 일에 대해 말씀하셨는데, 일과 휴식의 경계는 어떻게 하세요?


경계라면, 저에게는 조금 애매한데요. 제 성향이 버튼을 눌렀다 끄는 것처럼 간헐적으로 일을 하거든요. 벼락 맞은 것처럼, 혹은 신내림 받은 것처럼 해야 할 일에 쭉 몰두했다가 아닐 때는 쭉 쉬는 것 같아요.


- 역시 예술가 같네요.


예술가 맞죠. 3일 내내 박혀서 일을 할 때도 있고, 쉴 때는 그냥 침대에 스르륵 녹아내리는 편이에요. 저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카페에서 일을 잘 못하겠더라고요. 제게는 방이 가장 좋은 작업실이라서, 온-오프를 쉽게 오가는 것 같아요. 비록 전원이 언제 켜질지는 알 수 없지만요.


-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과 여러모로 넉넉하지만 재미없는 일을 해야 한다면, 어떤 쪽을 선택하실 건가요.


아, 이거는 ‘여러모로’에 따라 다를 텐데요.


- 아마도 돈, 시간, 체력 정도가 포함되겠죠.


완전, 완전 후자예요. 저는 제 안위가 최우선인 사람인지라… 여러모로 풍족하다면 재미없는 일을 하더라도, 남은 시간에 기쁜 일을 할 수 있잖아요. 그게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투잡, 쓰리잡을 하더라도요.


-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과 그 이유가 있다면.


전적으로 제 방인데요. 요즘만이 아니라 앞으로도 죽을 때까지 그럴 것 같아요. 최고의 작업실이자 은신처라서요. 방에서 혼자 할 수 있는 것들이 너무 많기도 하고요. 유튜브도 봐야 하고, 덕질도 해야 하거든요. 게다가 이미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차있으니까요.


- 올해는 어떤 해였는지 한마디로 한다면. 앞으로의 계획이 있는지.


한 마 디 요…?


- 한마디가 많이 어렵다면 올해가 ‘어떤’ 해였는지만.


(멈춤) 올해는… ‘삼삼한’ 해였다…


- (웃음) 왜요. 많이 담백했나요?


자극적인 일도 없었고, 크고 작은 이슈도 없었으니까요. 감정도 그렇고요.


- 되게 고등어 같네요.


아, 그건 비린내가… (웃음) 앞으로의 계획은 적극적으로 수입을 낼 수 있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준비하던 브랜드에 대한 소망이나, 취업 같은 것들을 이루기 위한 발판을 준비하는 거죠.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 준비는 끝났고 이제는 움직일 때다?


그렇죠. 벌써 10월이니까요.


- 마지막으로 요즘의 기쁨과 슬픔이 있다면 무엇인지.


기쁨은, 덕질이 주는 만족감인데요. 요즘 ‘BOYNEXTDOOR’와 ‘polar’라는 가수를 좋아하거든요. 콜라 아니고 폴라입니다. 이 존재들이 주는 행복감이 엄-청 커요. 무의 감정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덕질을 시작하면서였거든요. 친구들이 제게 사랑이 너무 많다고 말하지만… 이들이 제게 자극과 영감을 주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것 같아요.


슬픔은, 딱히 없는 것 같아요. 요즘은 진짜 (덕질로 인해) 약 먹은 것처럼 행복하달까요… 그런 날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 (웃음) 감사합니다, 아루님.



아루가 준비하던 자소서를 본 적이 있다. 거기에는 아루가 지금까지 한 것들 중 소량의 부분과, 앞으로 할 수 있는 것들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 자소서를 보면서 아루가 해온 수많은 일들이 누락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보여주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한 것들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기 때문이었다. 미래를 위한 과거, 그리고 당장 과거가 될 현재까지. 모든 것들이 아루의 가능성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래서 열음은 아루의 미래를 지켜보는 일이 두렵지 않고 즐겁다. 그가 무슨 일을 한다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응원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니 계속 응원하는 마음으로 아루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끔은 철부지 동생 같기도, 또 어떨 때는 신중한 언니 같기도 한 아루였다. 이야기를 하는 그가 무척이나 주인공 같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방에서 쉬거나 ‘비생산적인’ 일을 주로 하며 보낼지 몰라도, 그가 생산적으로 보내온 시간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쉬어가는 것에도 명분이 필요한 세상을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했다. 아루를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가 하얗고 차가워 보인다고 짐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 아루는 무표정의 순두부일 뿐이다.


또 누군가는 그가 대책 없이 논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게는 꼭 필요한 휴식이자 과도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그가 다른 사람들의 기대나 인식에 갇히더라도 조금은 자유로운 마음이었으면 했다. 언제 어떤 일로 불려 나가 무슨 일을 하게 될지 모르니까. 그런 예측 불가능한 미래가 온다면 우리는 반드시 이 과거를 그리워하게 될 테니까. 피곤해도 전원을 켜고 살아가야 할 날이 매우 많이 남아있다. 그러니 전원을 끌 수 있을 때는 확실하게 끄는 게 좋겠다. 물론 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잘 살아갈 아루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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