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의 스물다섯
우리는 이제 모교가 된 학교의 빈 강의실 하나를 차지하고 앉았다. 함께 모인 친구 중 하나가 재학생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물론 공식적으로 빌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인터뷰 역시 누구도 부탁하지 않은 것이었다. 무허가에 무허가를 더해 공식적인 무허가 인터뷰로 만들어보았다. 인터뷰가 모두 끝난 뒤 합류한 친구는, 갓 무직인이 된 주변인들을 ‘이때다!’ 하고 인터뷰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너무 맞는 말이라서 웃겼다. 하지만 아무도 믿지 않을 때 혼자 믿는 게 가장 재미난 일이라고 누군가 말했다. 비슷한 마음으로 아무도 인터뷰하지 않을 때 혼자 인터뷰를 독점하고 있다. 아무래도 재밌는 것 같다.
초롱은 나와의 지면 인터뷰에 실리는 동시에, 다른 친구의 영상 인터뷰에도 실릴 예정이었다. 둘 모두 초롱을 인터뷰하고 싶어서 모인 것이었으므로, 두 콘텐츠를 하나로 합치자고 제안했다. 열음이 질문하고 초롱이 대답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찍으면 가성비가 좋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를 당하는 자는 정제된 언어와 깔끔한 옷을 준비해 왔다. 나머지 둘은 꽤 편안한 모습으로 모였다. 부담을 준 것 같아 미안하면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준비 중인 자, 그러나 언제나 준비된 자. 초롱은 그런 사람 같았다. 준비를 하고 오라고 말할 것을 준비하는 자 같았달까. 그를 인터뷰하는 동안 내가 정해둔 질문들은 금세 답을 찾았고, 그래서 더 묻고 싶은 것들이 생겨났다. 18개의 질문을 모두 완료하고, 그 외의 질문들도 더 수록했다. 그러나 질문의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초롱의 탄탄한 몸과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들을 최대한 담고자 노력했다. 내가 바라보는 초롱의 옆모습을 가장 비슷하게 보여줄 수 있다면 좋겠다.
- 일과 휴식의 경계는 어떻게 정하면서 지내시나요.
보통은 저녁 운동 전에 일을 다 끝내려고 해요. 운동을 하고 나서는 쉬는 편이에요. 물론 할 일이 남아있으면 그 후에도 하긴 하지만요.
- 루틴이 어느 정도 지켜지나요?
네… 상당한 계획형이다 보니 잘 지켜지는 편이에요.
- 일주일에 며칠 정도 쉬는지, 그런 것도 정해두셨나요?
주 5일은 일하고 2일은 쉬자. 요일을 정하지는 않았지만 보통은 주말에 쉬는 편이고요. 상황에 따라 유동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 그렇다면,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하고 싶은 일과 여러모로 넉넉하지만 재미없는 일 중에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고르실 건지. 넉넉하다는 건 돈, 시간, 체력을 말하는 거고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건 전자네요.
-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 있다면.
도서관과 카페인데요. 장소에 잘 질리는 편이라서, 두 곳을 번갈아 다니고 있습니다. 월요일에 도서관을 갔다면, 화요일에는 카페를 가는 식으로요.
- 하루에 한 공간에서 일을 하면 생산성이 괜찮은가요?
그래도 점심을 기점으로 장소가 바뀌니까요. 오후에는 집에서 하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아침에 집에서 시작하면 흐트러지는 기분이 들어서요. 일어나자마자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을 찾아가는 편인 것 같아요. 아침이 집중하기 가장 좋은 시간이니까요. 그래서 점심시간 이후에는 집중력이 덜 필요한 일을 하는 편이에요.
- 분배를 철저하게 하시는구나… 정말 체계적으로 루틴을 관리하고 계시네요. 최고의 무직인이다… 그렇다면 올해는 우리 초롱에게 어떤 해였던 것 같나요.
올해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기복이 심했던 것 같아요. 확신과 의심을 마구 오가면서… 앞으로는 이 기복을 조금 줄이고 스스로를 믿고 싶어요. 감정적으로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 앞으로 이 일은 자리를 잡을 때까지 계속해볼 생각이신지, 아니면 어느 정도 정한 기간이 있으신지.
사실 저의 최종 목표는 저만의 브랜드를 만드는 거라서요. 이 일은 자본을 벌기 위한 과정인 동시에 배우는 중인 거고요. 졸업할 때 계획했던 건, 이 일로 월 500만 원의 순수익을 내는 것인데요. 목표가 너무 크다 보니까 힘들었던 것 같아요. 컨설팅을 받으면서 순수익 100만 원을 목표로 변경하게 되었습니다. 자본이 모인다면 저만의 브랜드를 만들 생각이에요.
- 사업 컨설팅 전후로 차이가 큰가요?
확실히 도움이 됐고요.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컨설팅을 듣는 내내 확신에 차서 자신만만해졌거든요. 그런데 막상 끝나고 나니까 다시 전과 같이 막막해지더라고요. 의심을 하는 것도 비슷하고요. 그래서 스터디를 들어가게 된 거예요. 지금은 어찌 됐든 스스로에게 달린 문제라는 걸 느끼게 됐어요.
- 그렇죠. 결국은 행동하는 자의 몫인 거니까요. 내년 여름의 자신을 상상해 본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은지.
바라는 바로는, 바쁘게. 돈을 많이 벌면서. (웃음)
- 월 500만 원을 벌면서?
개인 사무실도 장만하고 싶고요. 쉬는 공간과 작업 공간이 분리된 곳에서 일하고 싶어요.
- 모든 프리랜서의 꿈이죠… 작업실 장만! 저도 항상 그걸 꿈꿔요. 요즘의 기쁨과 슬픔은 무엇인가요.
저의 기쁨은… (웃음)
- 아, 푸바오 얘기한다.
아무 생각 없이. 할 일을 모두 끝내고 누워서 푸바오를 볼 때 가장 기뻐요.
- 궁금한 게 있는데요… 푸바오가 이미 외국으로 떠나지 않았나요?
아직 아닙니다. 내년 3월 전에 간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푸바오만이 아니라 아이바오와, 러바오… 푸바오 동생들도 모두 좋아합니다.
- 그냥 모든 판다를 좋아하시는 거네요… 닉네임도 초롱이 아니라 푸바오로 하시지… 바오나, 푸바도 귀여운데요.
(웃음)
- 슬픈 일은 무엇이 있나요.
불안감이 몰려올 때나, 집중이 안 돼서 해야 할 일을 마치지 못하고 누웠을 때.
- 주로 할 일을 끝내고 누우면 무슨 생각을 하세요?
오늘도 해냈다… 만약 하루를 잘 못 끝내면 잠이 잘 안 오죠. 그렇다고 다시 일어나서 하지는 않지만요. 잘 해내고 나면 이제 뿌듯한 마음으로 푸바오를 보는 거고요. 먹방도 자주 봐요. 자기 전에는 아무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요.
- 되게 잠들 때도 깔끔하게 잠들 것 같아요. 탁탁탁! 스르륵…
영상을 보다가 졸음이 몰려온다 싶으면 클래식을 틀어요. 적막 속에서 자려고 하면 잡생각을 하게 돼서요.
- 아, 생각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네요. 정말 잠드는 것까지 체계적이다… 푸바오 보다가 먹방 보면서 클래식 틀고…
그러면 이제 밝기 줄이고, 아이패드 뚜껑 닫고 스르륵… 잠드는 거죠. (웃음)
- 아침에 일어나도 클래식이 나오고 있는 것 아닌가요?
그래서 만약 10시간짜리 영상을 틀고 자면, 종료 3시간쯤부터 틀어놔요. 자동으로 꺼질 수 있게… 일어났을 때 배터리 없는 경우도 많아요. (웃음)
- 오늘 집에 가서는 무얼 하실 계획인지.
밀려 있는 디자인 외주 알바를 하려고 해요. 더 이상 미룰 수 없거든요.
- 본인의 속도가 시속 몇 km라고 생각하시나요.
아, 제가 미리 평균 속도를 찾아봤거든요.
- (너무 웃김)
평균 속도가 80km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이상인 것 같은데요. 한 90km 정도…?
- 다른 분들은 어린이 보호구역이라고 말하고 그랬는데… 초롱님이 제일 빨라요.
아, 저는 조금 줄이고 싶어서요. 성격이 급하기도 하고… 평균 속도로 가고 싶은데. 여유를 잘 못 즐기는 편이기도 하고요.
- 빠르게 달려가고 계시군요… 혹시 수영은 할 줄 아시나요?
마침 이번 여름에 배웠어요. (이런저런 수영법을 선보이며) 평영도 배우고, 배영도 배우고…
- 본인의 현재 모습을 수영에 비유하자면 어떤 것 같은지.
배영이라고 생각해요. 앞이 보이지가 않아서요. 제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 앞을 보고 가는 게 아니라 짐작하면서 나아가는 것 같기 때문이에요. (웃음)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일단 가고는 있는데. 그런 마음입니다.
- 아, 요즘 달리기도 한다고 들었는데요. 러닝 크루에 들어가셨다면서요.
- 맞아요.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서 달리는 것인데요. 사실 친구하고 같이 들어갔는데 요즘은 그 친구가 바빠서 잘 나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도 한 번씩 가면 한계를 뛰어넘는 경험을 하고 오는 것 같아요. 진짜 이젠 못 뛰겠다, 싶을 때도 주변 분들이 응원해 주시면 어떻게든 끝까지 달리게 되어있더라고요.
- 감사해요, 초롱님.
초롱은 배영을 하면서도 팔다리를 매우 빨리 휘저을 것 같았다. 상상이 무척 용이해서 웃겼다. 그러나 밤에는 누워서 푸바오가 대나무를 먹거나, 혹은 누군가의 쩝쩝대는 소리를 들으며 잠들 초롱을 생각하니 금세 이완되었다. 잠드는 순간에 클래식을 듣는 것까지도… 무척이나 치밀하고 계획적인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마음이 웅장해졌달까. 특히 작업실을 마련하고 싶다는 그의 이야기에 고무되어, 잠들기 직전에 근처 작업실을 알아본 열음이었다. 그가 푸바오를 보고 있을 그 시간에. 탄탄한 계획을 들으면 나 역시 탄탄해지고 싶은 마음이라…
동물을 무척 사랑하는 초롱, 느끼한 음식은 싫은 초롱, 보드게임을 할 때는 물불 안 가리는 초롱, 달리는 초롱, 올해의 사업가 초롱. 그는 최고로 부지런한 무직인인 동시에 언젠가 우리 학과 최고의 아웃풋이 될지도 모른다. 초롱은 자신의 한계를 곧잘 뛰어넘는 걸까, 아니면 자신의 한계를 정확히 알고 그 직전까지 달리는 걸까. 어느 쪽이든 그가 용기를 내는 모습을 보는 게 좋다. 그는 자리를 잡는 중이라고 하지만 이미 자리를 잡은 것처럼 보인다. 확실한 개척자의 면모를 자주 엿볼 수 있었다.
열음은 벌써 9개월 차 무직인이지만, 2개월 차 무직인인 초롱에게 많이 배운다. 흡수하고 싶은 게 참 많은 인간상이다. 혼자 도서관을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다가, 카페를 가고, 운동도 가는 그의 하루를 상상해 본다. 그러한 체계 속에서 그는 진정 자유를 누릴 것이다. 나 역시 잘 짜인 계획 안에 있을 때 짜릿함을 느낀다. 이것이 계획형 무직인의 자유와 해방이다. 초롱은 무려 배영을 하면서도 선두에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