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직의 스물다섯
마지막 인터뷰는 아지 편. 아지는 열음의 가장 가장 가장 오래된 친구이다. 가장 오래된 사이와 마지막 인터뷰를 진행했다. 묻고 싶은 말들이 많았기 때문일까. 서로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해도, 한순간 달라지는 마음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오래된 관계일수록 서로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고인 생각을 어서 털어내고 싶었다. 낡은 관계지만 그중 가장 새것에 가까운 마음을 골라 그에게 물었다.
아지와는 거의 매일 만난다. 우리는 같은 초, 중, 고등학교를 나왔고 현재는 같은 교회를 다니며 가능한 매일 카공을 한다. 학창 시절에는 주 7일을 만났다. 그리고 올해 봄에는 함께 유럽 여행을 다녀왔다. 3개월을 동거하는 동안 우리는 더 가족 같아졌다. 서로를 만나온 시간 말고는 거의 비슷한 게 없는 우리지만, 비슷하지 않다고 해서 친구일 수 없는 건 아니다. 우리는 다른 만큼 서로에 대한 폭이 넓어졌다. 그렇게 넓어진 마음으로 어디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궁금했다.
열음이 보는 아지는 체육인이다. 아마 아지를 보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작은 몸이지만 날쌔고 다부지다. 몸도 몸이지만 마음도 체육적이고... 견고한 몸을 가진 아지의 마음은 어떨지. 그가 향해 있는 방향에 대해 묻고 싶었다. 어느 쪽으로 몸을 돌리고 서 있냐고, 금방이고 튀어나갈 듯한 그의 행방을 미리 엿보는 마음으로 물었다. 이름을 아지로 정한 이유는… 강아지에서 따온 것이랬다. 조금은 단순한 그의 곁에 편한 마음으로 서있다. 허물없는 마음에 맞는, 허물없는 대화를 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었다.
- 요즘 하루 일과가 어떤지.
주로 스포츠 강사 활동, 축구 심판, 배드민턴 협회 대외활동을 하고요. 교회에서 양육 사역도 하고 있고요. 매일 정해진 루틴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활동들을 조합해서 하고 있어요.
- 하루 단위보다는 한 주에 무엇을 하는지가 정해져 있는 거군요. 보통은 일어나서…?
8, 9시쯤 깨서 11시 반쯤까지 침대에서 뒹굴거려요. 일어나면 참았던 화장실을 가거나… 일어난 김에 해야 할 것들을 합니다. 강사 하는 날에는 씻고, 아닌 날에는 열음이 있는 카페로 가기 위해 준비를 해요. 거의 비슷한 시간에 준비를 시작하는 것 같아요. 오늘도 그때 일어나서 집안일하고 나왔습니다.
- 저녁 먹고는 주짓수도 가시잖아요. 역시 바쁘시네요… 전공이 있다면 그 분야를 선택한 이유와 그 결과가 어떤지.
체육 교육과고요. 아마 체육 선생님을 진로로 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70%고요. 나머지 30%는 스포츠 마케팅을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어릴 때부터 운동을 잘하고 또 좋아했어요. 멘토-멘티 활동하면서 가르치는 것도 좋아했거든요. 결정적으로는 고2 때 체육 선생님이 추천해 주셔서 체육 입시를 시작하게 됐어요. 그 후로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이쪽으로 온 것 같아요.
멘토-멘티는 매년 했고, 체육 부장도 항상 했고, 체육으로 전교 1등도 했으니까요… 그런 것들이 쌓인 데다 체육 선생님의 한 마디로 추진력을 얻은 것 같아요.
- 선택의 결과에 만족하시는지.
대학교 때 주변 모든 사람들이 저보고 제일 잘 즐기는 것 같다고 했거든요. 그런 말을 들을 정도로 100% 이상 만족하는 상태입니다.
- 무직의 상태가 되신 지 얼마나 되었고, 주로 어떤 시간을 보내셨는지.
2월에 졸업했으니까 9개월 차네요. 지금까지 제가 진짜 하고 싶은 것들로 채운 시간인 것 같습니다. 이를 테면… 내년부터 임용 준비를 시작해야 하니까, 올해 일 년은 휴가로 보낸 느낌이랄까요.
고등학교, 대학교 때는 학생으로서 해야 할 일을 하면서 지내는 거고, 내년에 공부를 시작한다면 고시생으로서의 삶을 살게 될 텐데요. 올해만은 어떠한 틀도 없이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케팅 대외활동과 주짓수, 축구 같은 운동을 했고요.
- 특히 이번 여름은 어떻게 보내셨는지. 어떤 생각이나 계획이 있으셨나요.
여름에 걸쳐서 3달 동안 유럽 여행을 (열음과) 다녀왔고, 이후로는 무계획 상태였던 것 같아요. 1년 간 대외활동을 하겠지만, 바쁜 삶을 좋아하는 특성상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행복한 상상을 했어요. 정말 백수처럼 집에서만 1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았으니까요.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고민하는 시간이었습니다.
- 무직의 상태인 동안, 남에게 많이 들은 말이 있다면.
너 그래서 임용은 볼 거야? 공부를 하고 있긴 해? 정도… 아무래도 저는 그쪽에 있는 친구들이 많으니까요.
- 볼지 말지 자체를 물은 거네요.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있다면요?
음… 뭘 할래? 가고 싶은 방향이 확실하게 두 갈래니까, 둘 중에 어떤 선택이 저를 더 행복하게 해 줄지를 많이 생각한 것 같아요.
- 지금은 임용과 마케팅 중 어떤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 같은지. 결정을 한다면 당장 내년부터 실행을 해야 하는 건가요?
정말 맞습니다. 졸업할 때부터 내년 1월 2일에 시작한다고 했거든요. 공부든 무엇이든…
- 아, 1월 1일은 빨간 날이니까 쉬는 건가요.
쉬어야죠. 둘 중에 무얼 할지 결정되는 순간 무조건 할 텐데, 아직 가닥은 전혀 못 잡았어요. 이대로 흘러가다 보면 그냥 임용을 할 것 같아요. 만약 하기로 한다면 열심히 할 텐데, 임용이 제 길인지에 대한 고민은 아직 진행 중이에요. 아마 12월 31일까지 고민할 것 같습니다. 원래가 진지하게 분석하면서 결정하는 편도 아니고… 뭐가 행복할지에 대한 상상만 포괄적으로 하는 중이라서요.
어차피 1년간 고민하는 시간을 충분히 가졌으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할 것 같아요. 둘 중 하나라도 흥미가 없었다면 진즉에 포기했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해온 모든 일은 임용과 관련된 일이라서, 정석대로라면 그쪽으로 가야겠죠. 주변에 지인도 많고, 도움 줄 사람도 많으니까… 현재 상황에서 더 자연스러운 길은 그쪽인 것 같아요. 만약 그걸 부정하려면, 반대쪽에서 그만한 가능성이 보여야겠죠.
- 전에 pd 쪽에도 관심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건 30%의 마케팅과 묶여있는 건지.
임용이냐, 아니냐에서 아닌 쪽인 것 같아요. 꼭 스포츠라고 한정하지 않아도 기획/마케팅 일을 하고 싶은 마음이라서요. 만약 그쪽을 선택한다면 아예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그럼 토익부터 해야겠죠? 그쪽 경험이 전무한 상황이라… 그렇게까지 선생님을 하기 싫은 건지 고민하고 있어요. 모두 뒤엎기에는 선생님도 하고 싶은 마음이거든요. 어쨌든 12월 31일에 정하고, 1월 2일부터 시작할 생각입니다.
- 현재 생활에 필요한 수입을 어떻게 내고 있는지.
스포츠 강사와 축구 심판으로 필요한 지출은 거의 커버가 되고, 내년에 임용을 본다는 가정 하에 엄마가 처음으로 용돈을 주기 시작했어요. 임용에 드는 인강비, 수영 강습비 같은 큰 금액을 대비하기 위해 미리 나눠서 받는 느낌인데요. 임용에 돈이 진짜 많이 들거든요… 그래서 받는 용돈은 모두 임용을 위해 모아둬야 하구, 제 생활비는 모두 버는 돈으로 충당하고 있어요.
- 한 달에 최소로 필요한 생활비가 얼마라고 생각하는지.
카드 내역 좀 볼게요… 전혀 모르겠어서요. 핸드폰 값이 거의 9만 원이거든요. 다행히 기기값은 이번달에 끝나니까 지출이 좀 줄어들겠네요. 토스 계좌로 확인하니까 월 40-50만 원 정도 쓰는 것 같아요. 핸드폰 값에 밥값…
- 마라탕 값?
(웃음) 맞아요. 아니면 요즘은 열음과 카페를 자주 가니까 커피 값도 들고요.
- 예상치 못한 지출이 생긴다면요?
모아둔 돈을 써야겠죠.
- 무직인이라 가장 좋은 점과 가장 불편한 점이 있다면.
좋은 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다는 것. 시간적 여유도 있고, 알바를 하면 경제적 여유도 있을 테니까요. 나쁜 점은 아무리 행복한 시간을 보내도 누군가에게는 설명하기 애매한 위치라는 점이요. 누군가는 모두에게 설명하기 애매할 수 있고, 또 누구는 특정 사람에게만 애매할 수도 있는데요.
- 아지는 둘 중 어느 쪽에 속하는 것 같나요?
저는 완전 후자요. 예를 들면 친척? 올해까지는 어떻게 해도 내년부터는 정말 애매해질 것 같아요. 가족은 혼자만의 관계가 아니니까요.
- 이번 추석 때도 혹시 느꼈는지.
제가 가족 전체 막내라서요. 제 나이를 잘 모르시지만 졸업을 했다고 하니까, 취업은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시더라고요. 여행을 하고 쉬는 중이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이상 물어보시지는 않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된다면 애매해질 것 같다고 생각해요… 내년에도 어쨌든 고시생이거나 취준생일 테니까요.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곤란해질 것 같아요.
- 아마 계속 물어보시지 않을까… 잘 모르시니까요. 올해까지는 졸업의 해기도 하고, 유예 기간으로 여겨주실 것도 같은데 내년은 진짜 다를 것 같아요. 설명하기 더 어려운.
준비생이라고 해도 직업은 아니니까요.
- 무직인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즐기는 마음이요. 어차피 흘러가는 시간인데 즐기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은 하지만 성격 따라 그게 안 되는 사람도 있을 텐데요. 그래서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필요한 건, 믿어주는 누군가? 자기 자신일 수도 있고, 친구나 부모님일 수도 있고. 그런 존재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해요. 스스로를 못 믿어도 누군가 믿어준다면 힘을 얻을 수 있잖아요. 무직인은 자기 PR을 해야 하는데, 위축되면 감당하기 어렵고요. 그래서 믿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일과 휴식의 경계는 어떻게 정하시는지.
어, 저… 없는데요.
- 그러면 일하지 않는 시간은 휴식하는 느낌인 건가요?
저는 딱히 휴식이 필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래서 경계랄 게 딱히 없는… isfp라서 많은 시간을 누워있기는 하지만, 휴식이 필요하다기보다는 할 게 없어서 누워있는 거거든요. 가장 편한 자세이기도 하고. 아무튼 휴식이 꼭 필요하지 않은 사람인 것 같아요.
- 여러모로 부족하지만 하고 싶은 일과, 넉넉하지만 재미없는 일 중 선택해야 한다면.
저는 무족-권 전자. 그 누구보다 전자입니다. 제가 고민하고 있는 것도 그런 부분이니까요.
- 요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과 그 이유는.
침대요. 방금 휴식 필요 없다고 했는데… (웃음) 어쨌든 isfp라서요.
- 집에 있으면 주로 방에 있고, 방에 있으면 주로 침대에 있나요?
아, 정정해야겠다. 바닥에 제일 많이 있어요.
- 바닥? 소파에 누워있는 게 아니고요?
아, 정정해야겠다. 누울 수 있는 곳 어디든. 어디에 누울지는 정해져 있지 않고… 제 침대, 거실 소파, 거실 바닥 정도요.
- 거실 바닥이라면…
이불이 있는 스팟이 있어요. 방에는 잘 때만 들어가요. 아침에 뒹굴거릴 때하고… 딱히 누워있는 공간이 정해져 있지는 않고, 그냥 아무 데나 괜찮은 것 같아요. 누워있을 수 있는 곳이라면요.
(다음 편에서 계속…)
가장 잘 누워있는 사람이 가장 잘 뛰는 모순을 생각해 보았다. 그는 일어날 때도 벌떡 일어나지 않는다. 천천히 느긋하게 일어나 조용히 침대를 빠져나온다. 오히려 벌떡 일어나서 몸을 놀라게 하는 쪽은 열음이다. 아지의 움직임은 느리지만 철저히 효율적인…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최대의 효율을 내는 사람. 내가 본 아지는 그랬다. 아무튼 그런 사람이 한없이 빨라지는 순간을 좋아한다. 그런 격차가 기대감을 만든다.
두 가지의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아지는 올해의 마지막 날까지 고민하다가 1월 1일에 결정을 지을 것도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그때까지 불안해하는 건 아니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넓게 생각한다. 무거운 마음으로 좁게 생각하는 나와는 정반대인 성격이다. 조급해하지 않는 아지에게, 그 마음을 계속 유지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운동에도 페이스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자신의 페이스대로 이미 착실히 나아가고 있는 아지에게, 구체적인 계획 같은 건 꼭 필요하지 않을 것이었다. 일단 킵 고잉, 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