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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열음 Nov 29. 2023

첫 번째 재주넘기

-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


주현과 글을 쓰기로 했다. 글모의 이름은 ‘재주넘기’로 주현이 정했다. 첫 번째 주제는 <나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고, 열음이 정했다. 함께 글을 쓴다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지금껏 한 번도 없던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글을 읽고, 듣고, 말하며 다시 쓸 것이다. 새롭게 쓰이는 글이 어떤 얼굴을 갖게 될지 무척 기대된다.


주제를 던지고 생각해보니… 나를 슬프게 할 수 있는 건 사람뿐이다. 넓게 말하면 동물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주변에 살아 숨쉬는 무언가만이 우리를 슬프게 할 수 있다. 그런 이들을 생각하면 늘상 얼굴이 쪼그라든다. 정확히는 마음이 쪼그라드는 것일 텐데, 그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보이는 것은 언제나 부분만을 담고 있다.


며칠 전에 첫 면접을 보고 왔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는 이유는… 그 면접이 내겐 슬펐기 때문이다. (ㅋㅋ) 예상 질문과 답변을 정리하는 동안 나는 꽤 행복했다. 드디어 마음이 꼭 맞는 집단을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회사에서는 채용 공고에 거의 편지를 실어두었다. 자신들의 철학에 공감할 수 있는 사람만 지원해달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들의 철학이란… 세상에 가치로운 것을 전하는 일이 삶의 이유라고 믿는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치로운 사람과 가치로운 글을 쓰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면접장에서 마주한 세 명의 어른은, 무척 지쳐보였다. 어떠한 생기도 없었다… 1차 면접을 지나 실무 테스트를 거치면 최종 면접이 기다린다. 그래서 첫 번째 면접에서는 마음이 맞는 사람인지 확인할 거라고 짐작했다.


아름답게 흡수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왜 당신들의 회사에 들어가고 싶은지, 아직 준비되지 않았음에도 성급하게 지원한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기쁜 마음으로 정리했다. 그러나 모든 질문은 나의 능력에 관한 것이었다. 내가 얼마나 준비된 사람인지에 대해, 자신들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해, 그리고 몇번 훑어본 나의 자소서에 대해.


서로가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내가 가진 것은 아직 협소해보이지만, 그래도 쑥쑥 자라날 것이라고 확신했으므로… 당신들이 가진 비교적 거대한 성과들에 기대어 자라나고 싶었다. 어쩐지 2주년을 맞아 처음을 기억하며 글을 썼다는, 채용 공고 속 당신들의 마음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내게 그 마음이 있는지도 찾고 싶은 것 같지 않았다.


내 글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 물었다. 한 에디터가 내 글은 어쩐지 차갑거나 어두워보이는데, 실제로는 훨씬 밝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글을 쓸 때면 자꾸 슬픈 마음이 들어서인 것 같다. 당신들은 채용 공고에서 훨씬 밝아보였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 편지를 정말 인상 깊게 읽었는데… 다들 어디 계세요?


그저 이 축축하고 거대한 공유 오피스에서 빨리 나가고 싶은 사람들 같았다. 자유롭게 일하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땀을 뻘뻘 흘렸다. 묘하게 지친 사람들 틈에서 푹 익어가는 느낌이었다… 아무튼 그들의 질문에 반은 하고 싶은 대로, 반은 해야 할 것 같은 대로 대답을 하고 나섰다. 빌딩숲이 낭자한 을지로 한복판에 덩그러니… 놓였다.


어째서 서울의 높은 빌딩들은 전부 같은 모양인지에 대해 생각했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사람의 기개는 어떠할지도 궁금했다. 그러나 당장은 타야 할 버스가 있었다. 곧 만나야 할 친구들이 있었고, 그 애들은 나를 반가워할 것이었다. 그 애들에게 가는 길이 결코 무겁지 않았다. 오히려 다행이었다. 그 회사가 내 생각과는 다른 곳이었다고, 미리 알게 되어서 다행이라고 말해주어야 할 텐데.


면접을 궁금해하는 애들에게 요목조목 나의 곤란함을 설명해주었다. 내게 비즈니스적인 측면이 너무 없어서 안 될 것 같다고도… 어째서 이 회사는 수익보다 마음이 먼저일 거라고 생각했을까. 돈보다 마음이 먼저인 사람들은 어딘가에서 글을 쓰고 있을 텐데. 돈 많은 어른의 세계는 멀고도 복잡한 것이었다.


머지않아 새로운 세계에 진입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을지로에서, 에디터라는 직함이 적힌 사원증을 걸고 다닐지도 모른다고. 실상은 빌딩숲 중 한가운데 공유오피스를 찾아간다고 해도. 아주 지쳐보이는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고 해도. 너무 피곤해서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쓰지도 못하고 잠에 든다고 해도. 남들이 일어나는 시간에 일어나, 다함께 지하철을 타고 실려간다고 해도.


그 모든 평범함들이 때로는 나를 가두고, 때로는 나를 해방시킬 테니까. 다수에 속해있다는 안정감 속에서 바라보게 될 세상이 궁금했다. 이제와 정말 슬픈 건… 그런 다수 앞에 앉아 면접을 보는 동안, 내가 내 글을 쓰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부끄러웠다는 것이다. 찝찝함의 근원이 그랬다. 나를 부끄러워했다는 자각이 나를 부끄럽게 한다… 무엇보다 슬프게 한다.


이쪽에서 저쪽으로의 진입, 이쪽에서 저쪽으로의 전복. 이쪽에서 쓰던 모든 것을 가지고 저쪽으로 가면 잘 될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저쪽엔 아주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저쪽엔… 마케팅 스쿨을 수강하고, 컴활 자격증이 있으며, 제대로 된 기사를 써본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저쪽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사실마저 우리를 구분 짓는다.


아무튼 내가 속하지 않은 세계에 발만 담갔다 뺀 채로 다시 글을 쓴다. 아직은 발이 축축하고 물기를 미처 털어내지도 못했지만… 한 다리를 들고서 곰곰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일이라고. 역시 나를 슬프게 하는 건 사람뿐이라고. 그건 세 명의 외지인과 나. 그리고 내가 고칠 수 있는 것은 오직 나 하나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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