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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케 Apr 07. 2023

한의사도 전공의 있습니다.

03. 첫 오프는 엉엉 우는 것이 국룰! (1)



떡하니 키워드에 '작가 지망생'이라고 띄워놓고는, '국룰'과 같은 시쳇말로 글을 시작하게 되다니 여간 쑥스러운 것이 아니다.

얄팍한 변명을 해보자면 그를 대체할 만한 어떤 단어들(법칙, 룰, 공식, 같은 것들..) 중 딱 이거다 싶은 게 없었다.

어쨌든, 변명까지 해가며 다룰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인턴 첫 오프에 대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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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병원의 인턴은 정식 입사 전 1개월의 교육기간을 거치는데, 이 기간 동안은 외출, 외박이 허락되지 않는 의미로 '킵(KEEP)'이라고 불렀다.

수련의 생활에는 크게 2번의 킵이 있는데, '업무 사항에 크게 변동이 있어 관련된 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진행한다. 우리 병원 기준으로는 인턴 첫 입사 시기, 인턴에서 레지던트로 넘어가는 '인지던트' 시기가 그러했다.


어쨌건 병원에서 1년을 보낸 뒤에 맞이하는 인지던트 킵과는 달리 인턴 킵은 쌩 초짜인 학생들을 데려다 한 명의 몫을 하는 사회인으로 키워내는 과정이었기 때문에 강행군의 연속이었다. 낮에는 업무의 숙달을 위해 이리저리 발로 뛰었고, 저녁에는 교육이다, 시험이다, 해서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을 잘 수 있었다. 그렇게 한 달 남짓을 보낸 뒤, 예민함이 극에 달하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분노가 치미는 상태가 되면(이게 바로 구금, 감금이 형벌인 이유다), 그때 첫 오프가 찾아온다.

첫 오프, 이름마저 달콤한 그것은 인턴 해방의 날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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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고생을 한 끝에 얻게 된 첫 오프를 보내는 방식은 다양하다.

집에 가서 원 없이 자고 오겠다는 사람, 오랜만에 미용실에 가겠다는 사람, 사우나 가겠다는 사람...

나는 '연인과의 데이트'를 선택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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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친구는 감정기복이 거의 없다시피 하고 무던한 사람이었다.

예민하고 샤프한 외모와는 달리 순박하고 둥글둥글한 성격이 사랑스러웠고, 그런 점은 예민한 나에게 없는 부분이라 동경했다.

그랬기에, 남자친구의 첫 오프날 그의 모습은 나에게 상당히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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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첫 오프 날, 오랜만의 만남에 신나 있는 나에게 남자친구는 평소처럼 '뭐든 좋다'라고 대답했다. 그렇다기에 그런 줄만 알았던 게, 화근이었다.

당시에 나는 학생으로, '킵'의 고단함에 대해 무지한 상태였기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를 데리고 방탈출 카페로 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나의 배려심 없는 모습에 통탄이 나온다. 남자친구의 굳어지는 얼굴을 봤어야 하는데!)


오랜만의 데이트니 만큼, 뭔가 특별하게 하고팠던 나, 병원에서 겨우 탈출했더니 제 발로 갇히게 된 남자친구.


방탈출의 시작을 울리는 알림음이 남자친구의 인내심 끊어지는 소리인 줄은 모른 채, 그렇게 동상이몽의 방탈출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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