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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n 08. 2022

용궁사, 소원바위에 두고 온 것은?

여러분은 어디에 미련을 묻어두고 오시렵니까?

용궁사, 소원바위에서 바라본 풍경


"사람이 만나, 사랑을 나누다 헤어지면 누가 더 미련이 많이 남을까?"


수화기 건너 조곤조곤 들려오는 친구 물음에 민우는 당연히, 더 많이 사랑한 사람이 그렇다고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문제의 답은 반대였어요. 사랑을 더 많이 받은 쪽이랍니다. 아낌없이 사랑한 사람은 모든 걸 불태웠기에, 받기만 한 사람보다 덜 미련이 남는다는 것이죠. 물론, 둘 다 미련은 남기 마련이지만 말이죠.


만남은 헤어짐을 동반한다는 인생 진리를 생각하며, 민우는 과거 인연들을 하나씩 떠올려봅니다. 그가 헤어진 후 미련이 많이 남아있다고 생각했던 사람.  하지만 그 사람이 자기 자신보다 더 미련을 갖고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자, 이상하게 굳었던 앙금이 풀어져 버렸어요.


민우는 친구와 전화를 끊고, 차를 몰고 나갔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인천대교 이정표가 보였습니다. 코로나 시국 전이라면, 차들이 많이 지나다녔을 인천대교를 건넜습니다. 그리고 오래전, 다녀온 적 있는 용궁사라는 조그만 절에 가보기로 했답니다.


이번엔 또 어떤 인연을 만나게 될까요? 전에는 스님과 인연이 되어 얘기를 나눴던 기억이 있는데 말이죠.


인천 용궁사는 정확한 기록이나 유물이 없어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창건은 신라 문무왕 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원효대사가 백운산 동북쪽 기슭에 이 절을 지으면서 ‘백운사’라고 칭했다고 합니다. 백운산에 있는 절이니 백운사라는 이름이 합당해 보이죠? 그런데 조선 철종 5년(1854년), 흥선대원군이 이곳을 수리할 때 용궁사로 이름이 바뀌었답니다.


오랜만에 절에 도착하니, 주차장도 새로 넓히고, 범종각도 새로 지었네요. 민우가 예전에 왔을 땐, 막 중건 중이었어요. 그리고 이번엔 주 법당인 대웅보전도 신축하고 있었습니다.


'옴마니 반매홈'이라는 진언이 적힌 비석을 뒤로하고 위로 올라가면, 얼핏 보기에도 꽤 나이 들어 보이는 느티나무가 있습니다.


반대편에도 또 한그루의 나무가 있는데 수령이 자그마치 1,300년이나 된 할아버지, 할머니 나무랍니다. 역시 오래된 만큼 상처도 깊고 커 보이는데 여기저기 수술을 받은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자연이라는 대 전제 앞에선 그 어떤 것도 영원하지 못하다는 진언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무겁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속이 비었는데, 생명력을 유지하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세상 어떤 것도 영원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남겨진 자신의 삶을 이어가려는 생명력이 느껴지지 않나요? 민우는 그렇게 자연에게서 또 하나 배우고 갑니다.


그리고 느티나무가 서 있는 마당에는 ‘용궁사’라는 편액이 달린 요사채가 있습니다. 이 절의 역사를 느끼게 해주는 이 글씨는, 바로 흥선대원군이 썼다고 합니다.


요사채 뒤로는 관음전과 칠성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두 전각 사이에는 커다란 미륵불이 절 전체를 굽어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 관음전에는 네 모퉁이에 걸린 주련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군산에 있는 개심사, 그곳에서 봤던 ‘상왕산 개심사’라는 글자가 눈에 선명한데, 그 글씨를 섰던 해강 김규진 선생의 글씨가 이곳에도 있습니다. 해강 김규진이 썼다는 주련(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서 붙이는 글씨)이 관음전 기둥에 걸려 있습니다.


해강 김규진이 썼다는 주련(기둥이나 벽에 세로로 써서 붙이는 글씨)이 관음전 기둥에 걸려 있습니다.


절에 왔으니 부처님을 뵈어야지요? 민우는 삼배를 하기 위해 대웅보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먼저 삼배를  올리는 여인이 있군요.


저분은 무엇을 기원하러 이곳에 왔을까요? 남편 사업 번창? 아들 대학 진학? 아님, 가정의 행복?  무엇이 되었든 꼭 이뤄질 겁니다. 정성을 다해 삼배를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니 그렇게 느껴졌어요. 여인의 삼배가 끝나길 기다리다, 민우도 삼배를 올렸습니다. 그리고 소원을 빌었죠.


항상 그렇지만, 소원은 꼭 완성형으로 빌어야 합니다. "제 가족, 모두 건강하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제 가족이 모두 건강하여 감사합니다!" 이렇게 말이죠. 그래야 이뤄집니다.


"사업을 번창하게 해 주세요!"가 아니라 "사업이 번창하여 감사합니다!" 이런 식으로 말이죠.


본당에서 절을 올리고, 소원바위에 올라가 봅니다. 민우는 이곳에서 따로 소원은 빌지는 않았어요. 소원바위는 소원을 빌고, 시주를 하고, 절을 하고, 너른 바위 앞에 있는 작은 돌을 돌려봄으로써, 그 소원이 이뤄지는지 여부를 알아보는 것인데요, 해보진 않았답니다.


소원바위


그 대신, 친구와 오전에 통화했던 내용을 떠올렸어요. 과거 인연에게 남아있던 미련과  풀렸던 앙금을 꺼내서 소원바위 옆에 슬며시 놓아봅니다. 다음에 다시 이곳에 와보면, 그 앙금도 사라지고 없겠지요?

그리고 또 누군가에게 미련이 생긴다면, 오늘 일을 기억하렵니다. 버리기 쉽도록 말이죠.

여러분은 어디에 미련을 묻어두고 오시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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