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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n 27. 2022

감추사, 친구에게 보내는 안부!

왔던 길을 되돌아 기억을 더듬다가, 드디어 목적지를 찾았습니다. 주차를 하고 철길에 내려섭니다. 이 철길을 건너야만 목적지에 갈 수 있습니다. 무단 횡단하면 안 되는데 길이 이곳뿐이 없으니 조심하며 주의를 살핍니다. 철길엔 주의 표지판과 기차가 지나가는 시간표까지 있습니다.


'하나도 변하지 않았군! 건너가 볼까?’


그때 갑자기 열차 기적소리가 들립니다. 깜짝 놀라 얼른 뒤쪽으로 물러났습니다. 시원한 바람을 일으키며 기차가 지나갑니다. 한동안 멍하니 기차가 지나간 철로를 바라봅니다. 이 철길만 지나면,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그만 해변과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있는 멋진 장소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 바닷가에 조그만 절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동해 ‘감추사’입니다.




여기까지 글을 읽던 현우는 드디어 저곳에 가볼 용기가 생겼습니다. 이젠 그만큼, 마음이 무뎌졌나 봅니다. 10년도 더 지난 추억이 있는 곳. 친구가 동해에 살던 시절, 시간만 나면 친구 만나러 먼길을 떠나곤 했었지요.


이제, 그 친구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생각에, 현우는 눈시울이 다시 붉어졌습니다. 10년 전 이맘때쯤, 투병생활을 하던 친구와 마지막으로 다녀온 곳이 바로 이곳 감추사였답니다.


그리고 그 친구는 아주 먼 곳으로 혼자 여행을 떠났지요. 좋은 곳에 자리 잡아두겠다고, 현우에겐 아주 천천히, 나중에 오라고 했답니다.


"내 생각나면, 가끔 여기에 와! 저 위에서 내가 보고 있을게!"


하지만, 현우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아니 못했을지도요. 어떻게 혼자 이곳에 오겠어요. 생각도 못 할 일이지요. 오히려 근처를 지나갈 일이 있어도, 일부러 멀리 돌아갔답니다. 그만큼 가까이 가기도 힘들었었죠.


그러데 우연히, 예전 글을 읽던 현우는 친구 만나러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혹시 그곳에서 그녀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는다는 생각이, 이제야 드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주차장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친구와 늘 차 세우기 편하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나네요. 언제 와도 항상 넉넉한 주차공간이, 이곳을 찾는 사람을 편하게 해 줍니다. 그런데 제일 크게 변한 건, 바로 '감추교'라는 이름의 다리가 놓인 것이네요. 이젠 철길 무단횡단은 안 해도 됩니다. 아슬아슬하게 친구와 철길을 건너던 일도 이젠 추억이 돼버렸죠.


다리를 이용해 건너편으로 걸어갑니다. 철길 중앙에서 바라본 풍경도 참 멋지네요. 이때 기차라도 지나가 준다면 좋은 그림이 나 올 텐데요. 아마도 그런 운이 있는 사람은 멋진 사진을 건졌을 겁니다.


다리를 다 건너 이제 다시, 예전 기억에 남아있던 풍경이 현우 눈에 들어왔습니다.


'와! 여긴 그대로네!'


가파른 언덕을 내려가면 옆으로는 철조망이 바다를 둘러싸고 있고, 군 초소가 아직도 곳곳에 보입니다. 이 아름다운 곳에 참 흉물이지만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으니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철조망이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여긴 아직이구나!'


해변 오른쪽에 작은 사찰이 보입니다. 덥다곤 하지만, 아직은 바닷가를 찾는 사람이 없어 한산합니다. 현우와 관광객 몇 명 만이, 이곳 해변에 있을 뿐입니다.


감추해변


이곳은 작고, 아담한 해변입니다. 물이 얼마나 깨끗한지, 아마 이곳은 한 여름에도 폭죽놀이로 인한 쓰레기는 없었을 겁니다. 바로 옆이 절인데, 폭죽놀이는 못하겠지요?


현우는 언젠가, 이름난 해수욕장 민박집에서 잠을 청했다가 폭죽 소리에 놀라 몇 번이나 잠에서 깼었습니다.  바다를 향해 쏘아 올린 폭죽이 보기엔 좋을지 몰라도 바다를 오염시키는 주범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정말 모르는 걸까요? 아니면 알면서도 그러는 걸까요?


이름난 해수욕장 모래사장에 제일 많은 것은 아마도, 조개껍질과 함께 담배꽁초, 폭죽 잔해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지저분한 생각을 떨쳐내고자 맑고 깨끗하고, 또 아름답기까지 한 이곳 감축 해변을 눈이 빠지게 쳐다봅니다. 그렇게 보니, 친구와 물놀이하던 그 추억도 같이 보이네요. 아련합니다.


돌탑에 염윈을 담아!

그리고 누군가 염원을 담아 쌓아 올린 돌탑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처음 시작한 사람이 누구일까요? 장난 삼아 돌탑을 쌓았는지, 소원을 빌며 쌓았는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 덕에 훗날 다른 사람들이 여기에 염원을 담을 수 있었겠지요.


그게 친구였을지도 모르겠네요. 혼자서도 이곳에 자주 왔었죠. 그리고 친구는 자신의 삶에 대한 염원을 여기저기, 곳곳에 심어 두었을 겁니다.


"옛날 신라시대에 선화공주가 병에 걸렸을 때, 여기서 기도해서 치료하였다네!"


친구가 들려주던 절의 이력. 그래서 자기도 열심히 기도 중이라고 했습니다.


선화공주는 기도 올린 지 3년 만에 병이 낫자, 그 은공을 기리기 위해 절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이 절은 창건 당시의 절이 아니라 해일에 의해 유실된 것을 1965년에 다시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건물은 관음전과 삼신각, 용왕각, 그리고 스님들이 쓰시는 요사체가 있습니다.


친구는 이곳에 오면, 주로 삼신각에서 기도를 했습니다. 자신은 이곳이 좋답니다. 확 트인 바다를 보는 풍광도 제일 멋지기도 하고,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습니다.


불경 소리가 들리는 관음전 앞에 섰습니다. 이곳 좌측에 삼신각 올라가는 계단이 있습니다만, 현우는 올라가 보지 않았습니다. 뭐가 두려웠을까요? 아마도 밀려올 슬픔이 두려웠겠지요? 그 대신 용왕각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르는 길에 예전엔 없었던, 해수관음상이 보이네요. 잠시 손을 모으고 기도를 올립니다. 친구의 편안함을 위해.


해수관음상


삼배를 올리고, 다시 용왕각 올라가는 길. 삼신각이 눈에 들어온 현우는 잠시 발걸음을 멈췄습니다.


"후드득"


그때 하늘에서 굵은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처음엔 거센 파도에 바닷물이 튀긴 것인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분명 맑은 하늘에서 내리는 빗방울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지?"


현우는 깜짝 놀랐습니다. 햇살이 이렇게 쨍한 하늘에서 빗방울이 쏟아지다니 신기하네요. 혹시 친구의 눈물인가?  잠시 머리가 멍해졌답니다. 현우는 하늘을 바라보고 얘기했습니다.


"미진아! 나왔어. 너무 늦었지? 미안해. 오고 싶었지만 그렇수 없었어. 너 없는 이곳에, 나 혼자 올 수 없었어. 네가 이렇게 기다릴 줄 알았다면,  직즉에 올걸 그랬어!"


현우가 하늘에 소리치자 빗방울은 금세 멈추었습니다. 정말 친구는, 그가 온 것을 알았던 것일까요? 정말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현우는 한동안 자리에 멈춰서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다리에 힘이 풀려 계단에 주저앉아 한참을 삼신각과 바다와 하늘을 바라보았지요.


빗방울은 이제 완전히 멈췄습니다. 해변에 우산을 펼쳐 든 사람이 없었다면,  현우는 진짜 비가 내렸다는 사실도 자신의 착각이었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현우는 친구가 했던 말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내가 보고 싶으면 가끔 이곳에 오라던 친구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립니다. 하늘에서 널 보고 있을 거라던 얘기도.


진짜일까요? 친구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일까요? 현우는 그렇게 믿기로 했습니다. 그래야 지금 자신이 이곳에 온 것이 다 설명이 됩니다.


10년 동안 오지 못하다가, 갑자기 용기가 생긴 것. 갑자기 친구가 그리워진 것. 하늘에서 그를 보고 있다는 친구의 대답이 빗방울로 내린 것 등이 말이죠.


'그래 가끔 올게. 네가 그리울 때 올게. 일상이 힘들 때 올게.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고 싶을 때 올게!'


현우는 하늘을 바라보고 얘기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지친 일상에 위로가 되어 줄 친구가 이곳에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햇살은  아까보다 더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친구의 웃는 모습이 구름 사이로 얼핏 보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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