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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n 28. 2022

대천해수욕장, 밤바다에선 파도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언제부턴가 전철과 기차를 구분하기 시작한 승우 아들은 1호선 국철 승강장에서 쌩하고 지나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타보자고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전철로 만족해하더니, 이젠 더 빠른 기차를 원하네요.  이번 여행은, 꼭 아이 때문에 기차를 택한 것만은 아닙니다. 그들 부부도 모처럼 운전대를 놓고 좀 더 여유로운 여행을 하고 싶었습니다. 고속버스가 될 수도, 시외버스가 될 수도 있었는데 아이 입김이 좀 더 세게 작용해서 기차가 된 것이죠. 


수원 역에 도착했습니다. 시간상 2시간 이내의 거리를 택하다 보니 대천이 제일 적당했습니다. 왕복으로 끊으려 했는데 당일 돌아오는 표는 입석도 매진이라고 하네요.  잠깐 망설였지만 올라올 때는 버스를 이용하자는 생각에 일단 편도로 표를 끊었습니다. 14시 23분발 장항선. 솔직히 얼마나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인지? 승우도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이기에 어린아이처럼 마음이 설렜습니다. 


일요일이고, 오후 늦은 시간이라 그들이 탄 객실에는 맨 앞에 두 사람, 맨 뒤쪽에 일가족 대여섯 명, 그리고 그들 바로 앞자리에 사내아이와 애 엄마가 다였습니다. 


잠시 뒤 기차가 승강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차에 속력이 붙자, 앞에 앉았던 아이는 얼굴을 뒤로 돌리며 그의 아들에게 나이를 물었습니다. 


꼬마는 기차여행이 처음이 아닌 듯 보였습니다. 지겨운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친구를 사귀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는 듯했죠. 그 꼬마가 먼저 과자를 주더니 어느새 둘은 친구가 되었습니다. 2시간 동안 둘이 잘 놀아준 덕분에 그들 부부도 편하게 대천까지 올 수 있었답니다. 


역에 도착해 제일 먼저 한 일은 버스터미널에서 차 시간을 확인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이 서울행이고 인천과 성남행 몇 개 노선이 전부네요. 수원으로 가야 하는 데 말이죠. 막차시간도 너무 일러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바로 돌아갈 수도 없었죠.


승우는 아내와 상의하고 다음 날,  첫 기차를 타고 돌아가기로 했습니다. 이번에도 그는 여기 대천에서 바로 출근입니다. 시간을 보니 첫차를 타면 회사까지 제시간에 갈 수 있겠네요.


역 앞에서 버스를 타고 대천해수욕장에 갔습니다. 아무래도 민박하기엔 해수욕장이 적당할 듯싶어서죠. 버스는 좁은 골목길을 몇 번 돌더니 이내 넓은 도로를 달렸습니다. 눈에 많이 익은 도로였답니다. 차를 가지고 왔다면 어쩌면 이 길을 달렸을지도 모르죠? 


오후 6시. 드디어 해수욕장에 도착했네요. 그들이 집에서 여기까지 오는데 무려 5시간이나 걸렸습니다. 만약 차를 가지고 왔다면 2시간이면 왔겠지요? 하지만 그들은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걸린 만큼 더 많은 것을 보았고 느꼈기 때문이죠. 


그의 아들도 이번엔, 평소보다 많이 걸었습니다. 그래도 피곤하다는 소리는 하지 않네요. 차 타고 다니면 조금만 걸어도 힘들다고 업어달라던 녀석인데 이번엔,  오히려 즐겁게 잘 걸어 다니고 있습니다. 


언제 처음 이곳에 와봤던가요? 참 많이 변했습니다. 하긴 변하지 않은 곳이 어디 있을까마는 이곳처럼 화려하게 변한 곳도 없으리라고 승우는 생각해봅니다. 


15년쯤 전인가? 친구들과 우르르 몰려왔던 이곳은 바다와 민박집들, 조그만 횟집이 전부였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 후로 이곳에 가끔 올 때마다 놀랐죠. 계속 변하고 있기 때문에. 마지막으로 이곳을 찾았던 어느 해 5월에도, 해변과 어울리지 않게 굴삭기가 끊임없이 뭔가 작업을 하고 있더니만 결국 해변에 경사진 인공구조물을 만들어 놓았더군요 


그들 가족은 바닷가에 나가보았습니다. 어둠이 조금씩 찾아오는 바닷가에서 그는 ‘순돌이’를 만났습니다. 순돌이는 해변에서 마차를 끄는 말입니다. 말 발자국이 해변 여기저기 어지럽게 찍혀있네요. 지금 막 한 바퀴 돌고 물과 음식을 먹으며 휴식 중인 순돌이를,  그는 가만히 바라봅니다. 


승우 아내와 아이가 갖는 불만 중 하나는, 그가 결코 이런 걸 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돈이 아까워서, 그렇게 타자고 조르는 둘을 보며, 항상 다음으로 미뤄왔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엔 인 심한 번 쓰기로 했습니다. 우선 순돌이가 기운 좀 차리면 타보리 라,  생각해봅니다. 



말발굽 모양이 깊이 파인 해변을 따라 걸었습니다. 젊은 친구들, 단란한 가족들, 연인들 모두 제각기 즐거운 표정을 하고 있네요. 


모래사장에는 유난히 하트가 많이 그려져 있는데,  꾹꾹 눌러 그림을 그린 사람들도 파도가 밀려오면 결국 지워질 것이라는 사실은 알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고, 가끔 떠올리며 살겠지요? 




약속대로 순돌이를 타러 갔습니다. 바람을 가르며 해변을 달리는 마차는 해변의 왼쪽, 갯바위까지 갔다가 돌아오는데 그곳에도 조그만 포장마차가 있었습니다. 마부 아저씨께 물러보니 직접 잡은 멍게나 해삼 등을 파는데 싸고 운치 있게 먹을 수 있다고 합니다. 


화려한 네온사인의 횟집에서 먹는 것보다는 저런 갯바위에서 싱싱한 해산물에 술 한 잔 기울이며 바다와 가까워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하지만 참자! 아직은 아이에게 충실해야지. 


순돌이와 작별을 하고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근처 횟집에 들어갔습니다. 밥을 먹는 사이 날은 금방 어두워졌고요.


“펑! 펑!”


불꽃 터지는 소리에 깜짝 놀랐습니다. 날이 어두워지자 바닷가 여기저기선 폭죽이 터지기 시작했던 것이죠. 


“아빠! 저러면 물고기들이 죽어요?” 

“그럼! 저 잔해들이 바다에 떨어지면 오염이 된단다. 그러면 물고기들이 살 수 없지. 저러면 안 되는데....”


여전하네요. 2년 전 이곳에서 폭죽의 잔해들이 파도를 타고 해변으로 몰려와 그 긴 백사장에 띠를 이루고 있던 모습이 생각났습니다. 정말 지저분했었던 기억. 그런데 하나도 바뀌지 않았네요. 


계산을 하며 식당 주인에게 평일엔 설마 이 정도는 아니겠죠? 라며 물어보았는데 이곳은 평일에도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 저렇게 밤하늘은 폭죽으로 수놓는다고 합니다. 



어둠이 짙게 깔린 해변으로 내려갔습니다. 해수욕장은 어느새, 낮과 밤이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되어있었습니다. 좀 전까지만 해도 조용하던 이곳에선 더 이상 파도소리조차 들을 수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터지는 폭죽 소리가 파도소리를 잠재운 것이죠.


그들은 서둘러 바닷가를 빠져나와 민박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다행히 방음 장치가 잘 돼있어 시끄럽진 않습니다. 하지 안,  새벽에 일어날 생각에 잠을 청해 보지만,  밖에서 새들어 오는 불빛은 어쩔 수 없네요. 


도대체 언제부터 바닷가에서 폭죽을 터트리기 시작한 것일까요? 이젠 정말 우리 모두 심각하게 생각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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