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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n 29. 2022

청계사, 소원은 절실함으로 이뤄집니다.

법당 안에 여인은 정성을 대해 절을 올리고 있었습니다.  얼굴은 자세히 못 봤지만, 40대 중반의 단아한 모습의 여인이었답니다.

가벼운 티셔츠에 헐렁한 바지, 허리에 붉은색 카디건을 두르고 있는 그 여인은 아마, 이 무더위에도 아랑곳없이 108배를 올리고 있는 듯 보였어요. 곁눈질로 남을 바라보는 일이 결코 없던 저였는데, 이상하게 훔쳐보게 되었어요.


그런데 그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는 제게도 그 간절함이 전달되었어요. 신기한 일이죠?


그녀는 무슨 일이 있기에 저토록 간절히 기도를 올리는 것일까요?


그리고 사람에게서 아우라가 나온다는 게 이런 것이지 싶었습니다. 아마도 이곳이 터가 좋은 절이라서 그랬나 봐요.


누군가의 간절한 기도를, 그저 옆에 스치듯 지나가는 사람도 느낄 정도라면, 분명 부처님이 꼭 들어주실 겁니다.


청계사 가는 길


조용한 산사를 찾아가는 길이 그리 쉽지 않습니다. 폭이 겨우 5미터 남짓한 좁은 사찰 길에 승용차들이 뒤엉켜 복잡하네요.


만약 좁은 길에서 두 대의 차가 마주치면 걷던 사람들은 돌 위에 올라서거나 흙길로 내몰려야 합니다. 오랜만에 호젓하게 사뿐사뿐 걸어 올라가고 싶었는데 차들 피하느라 조금 짜증도 난 것 사실이에요.


저는 지금 한동안 ‘우담바라’인지 ‘풀 잠자리 유충’인지 말 많았던 청계사를 가는 길입니다. 인덕원에서 성남으로 이어지는 큰 도로에서 3km 정도 청계산 방향으로 계속 달리다 보면 바로 이곳 청계사에 도착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간 시간이 점심시간을 훨씬 넘긴 시간이라 주차장에 자리가 없을 줄 알았는데 다행히 빈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습니다. 여기 주차장부터 약 30분 정도만 오르면 청계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차들이 이곳에 주차하지 않고 더 올라가네요. 그 바람에 그 차들을 피하느라 맘 놓고 여유롭게 올라가지 못하겠어요.


‘이 정도 거리면 그냥 걸어가도 좋을 덴데!’라는 생각을 해봤는데, 차에 타고 계신 노인 분과 눈이 한번 마주치곤 그런 생각을 접어야 했답니다.


하긴 불경드리러 가는 노인 분들이나 아기가 있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차를 이용해야겠죠? 저 같은 여행객은 이렇게 좀 걷는 게 맞고요.


청계사 입구

청계사는 일주문이 따로 없습니다. 일주문 대신 부도를 지나 굽은 길을 올라가니, 바위에 붉은색으로 “우담바라 핀 청계사”라고 크게 음각한 글씨가 보입니다.


우담바라는 불교에서 이상적인 왕, 전륜성왕이 나타날 때 핀다는 가상의 식물이라고 하죠?


3,000년 만에 한번 피는 그 꽃이 보이면, 상서로운 일이 생길 징조라고 ‘무량수경’은 전합니다. 하지만 곤충학자들은 풀잠자리의 유충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저는 진짜 우담바라라고 믿고 싶네요. 어지러운 세상에 그런 믿음이라고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처음 계단을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1689년에 세운 청계사 사적비를 비롯한 5점의 비석이 세워져 있고 그 앞으로는 더 많은 비석과 부도들이 정돈돼있답니다. 근래에 만든 것과 꽤 오래된 유물이 함께 자리하고 있지요.


이제 정면에 보이는 계단 앞에서 서서 잠시 숨을 골라봅니다. 경내에 들어가려면 올라야 하는 길이죠. 계단 끝에는 사천왕상이 자리하고 있답니다.


생각보다 경사가 심하네요. 그래도 중간에 쉬어가라고 가운데쯤에 평지가 나타납니다.


계단을 오르면 경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만약 이런 게 없었다면, 저는 어디서 쉬어야 할지 모르고 힘들게 끝까지 올랐을 것입니다. 누구나 그렇듯 이런 곳에선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래 적당한 곳에서 쉬기도 해야 해!’


다 올라오면 비로소 사찰의 전체 모습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선 약수에서 물 한 모금 마시고 천천히 돌아봐야겠어요.


고려 충렬왕 10년(1284년)에 크게 중창되었다는 이 절은 조선시대 연산군이 도성 안에 있는 절을 폐쇄했을 때 봉은사를 대신하여 선종의 본산 역할을 했던 유서 깊은 절이라고 합니다.


현재 절은 1955년 이후, 역대 주지 스님들의 중수로 이루어진 모습이지만 전체 규모와 가람의 배치는 조선시대에 틀이 잡힌 것으로 보고 있다네요.


현재 경기문화재자료 제6호로 지정되어 있고. 경내에 신라 석등과 부도 조각 일부가 남아 있다고 합니다.


건물로는 극락보전과 종각, 삼성각, 산신각, 수각 및 요사채가 있습니다. 그리고 동종(경기 유형문화재 96)과 목판(경기 유형문화재 135) 등의 문화재도 있습니다.


동종(경기 유형문화재 96)


제일 먼저 시선을 끄는 유물은 당연히 동종입니다. 극락보전 앞에 있는 이 동종은, 조선 숙종 때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인 사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이랍니다.


그가 만든 종은 모두 8개인데 모두가 보물로 지정되어있죠. 그중 하나가 바로 ‘청계사 동종’이고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6호로 지정되었다가, 2000년 2월 15일 보물 제11-7호로 변경되었다고 합니다.


동종을 둘러보고, 본당인 극락보전을 보기 위해 발길을 돌리다가, 지극 정성으로 절을 올리고 있는 여인을 보게 되었습니다.

극락보전

그리고 그 여인이 뿜어내는 아우라에 시선을 빼앗겼지요. 무슨 기원을 저리도 절실하게 하는지, 그 기운이 제게도 느껴졌지요.


'아! 저 정도 절실함이 있어야, 기도가 이뤄지겠구나!'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그리고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누가 보면 저를 이상한 놈으로 생각하겠지요?

청계사 와불

저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산신각에 올랐습니다. 마침 비가 잦아들더니 운무가 아름답게 피어오릅니다.

산신각


법당 안, 치성드리는 그 여인의 소원을 이뤄주려는 신령님의 답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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