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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l 04. 2022

화성방조제, 우리 삶에도 과속방지턱이 필요합니다.

궁평항과 화성방조제

병원에서 퇴원한 선배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내일 시간 되냐고, 가까운 바다가 어딘지 자기 좀 데려가 달라고 말이죠. 영호는 그러자고, 집 앞으로 아침 일찍 가겠다고 했습니다.


영호의 고등학교 1년 선배인 정훈은, 젊을 때부터 장사를 시작했습니다. 대학 진학보다는 바로 생업에 뛰어들어 돈을 벌어야겠다고 했죠. 과일 노점부터 시작해 지금은 농수산물센터에 제법 큰 가게가 있으니,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우리 몸은 지우개 같아!"


다음 날, 차 안에서 마시던 커피를 컵홀더에 내려놓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는 그의 뜬금없는 소리에, 영호는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지우개라니? 뭔 소리야? 자꾸 생각이, 기억이 지워져?"


영호는 "내 머릿속의 지우개"라는 영화 제목이 떠올라 그렇게 되물었습니다. 하지만 선배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습니다.


"지우개는 처음엔 정말 깨끗하지.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닳아 없어져. 귀퉁이가 닳아 둥글해지다가 결국 너덜너덜해지지. 우리 몸도 마찬가지야. 젊을 땐 어디든 쌩쌩하지. 하지만 무리하게 몸을 쓰면 어느새 닳아 없어져. 근육이든 뼈든."


둘이 탄 차는 사강을 지나고 있습니다. 영호는 궁평항 이정표를 보고, 방향지시등을 깜빡이며 차선을 바꾸고 선배 얘기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젊을 때 몸을 아끼지 않고 너무 험하게 썼다는 얘기, 자기 몸이 닳아 없어지는지도 모르고 휴식 없이 살아왔다는 얘기, 이제 나이 먹으니 온 몸이 아프다는 얘기를 덤덤하게 이야기하다가 한숨을 길게 내쉽니다.


궁평 낙조길


둘은 잠시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 차가 궁평항에 도착하지 않았다면, 영호는 어색함에,  아니 무슨 위로의 말을 해 쥐야할지 고민하던 난감하던 차에 다행이라고 생각했죠.


"형! 잠깐 여기서 쉬었다 가자."


주차장은 그들보다 더 일찍 길을 나선 차들로 만차였습니다. 한참을 돌다가 빈자리를 발견하고 주차를 했습니다.


"사람들 참 부지런하다. 우리도 일찍 출발한 건데, 이른 시간에 이렀게 차가 많다니!"


"그러게, 다들 열심히 일하고, 또 열심히 쉬는구나!"


궁평항에서 반대편 해수욕장으로 이어진 낙조길


영호는 이곳에 참 자주 왔었습니다. 아이들 어릴 땐, 주말에 장거리 여행 아니면, 반대편 궁평리 해수욕장에서 텐트 치고 하루 종일 놀았었지요.  이젠 아이들이 다 커서 이렇게 잠깐 동안 머물다 가지만 말이죠.


"이제 병원은 안 가는 거야?"


영호는 좀 늦었지만,  선배 몸이 어떤지 궁금했습니다.  자세히 얘길 안 해줘서 묻기도 그랬었지요. 선배는 어두운 얼굴로, 외래진료를 꾸준히 받아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목과 어깨, 허리가 다 고장이 났다더군요. 젊을 때, 아끼지 않고 쓴 덕에 관절이 남아있질 않답니다. 꾸준히 재활치료를 해야 한다네요.


"더 이상 나빠지지만 않으면 다행 이래! 나도 몸 좀 아끼며 살걸 그랬어. 돈도 중요하지만, 몸이 이래서 쓰지도 못하겠다. 하하!"

"꾸준히 치료받으면서 이제 좀 쉬어, 일 좀 줄이고."

"그래야지. 이젠."


말은 그렇게 하지만, 선배가 아직은, 쉴 수 없음을 알기에 영호는 맘이 아팠습니다. 당장 현업에서 물러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다시 차를 몰아 화성방조제를 달렸습니다. 중간중간 과속방지턱만 없으면 직선으로 쭉 뻗은 길을 쉬지 않고 달릴 수 있는 곳이지요.


직선 길, 화성방조제


"오래전에 여기 길이 막 생겼을 땐 지금처럼, 과속방지턱도 없었어. 그땐 지금보다 더 신나게 달렸지. 거침없이!"

"그 얘길 들으니 꼭 내 얘기 같네. 앞만 보고 쉬지 않고 달려온 나, 말이야! 중간에 속도를 잠시 줄이고 또 달렸어야 했는데...."


순간 영호는 깨달았습니다. 맞았어요. 일직선 길이라고, 무작정 과속으로 달리면 탈이 난다는 것을 말이죠. 그래서 이렇게 사람들은 방지턱을 만든 것이었죠.


"형 말이 맞네. 인생 뻥 뚫렸다고 생각해 쉼 없이 달리면 분명 탈이 나지!"

"이쯤에서 돌아가자. 차도 오래 타니까 힘들다!"

"에고, 그렇구나! 오케이!" 


영호는 중간쯤 달리다가 방파제가 있는 곳에서 차를 돌려 궁평항으로 다시 돌아갑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경이 보여, 차를 도로에 세웠습니다. 아주 잠깐만 쉬어 가기로 했지요.


화성호


긴 인생길, 처음부터 잘 계획하고 살았어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젠 중반에 접어든 두 사람, 지금부터라도 인생 후반전 계획표를 다시 짜 봐도  늦지 않았겠죠?


우리 몸, 지우개처럼 다 닳아 없어지지 않게, 아끼고, 챙기고, 쉴 때 쉬면서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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