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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l 10. 2022

불갑사, 꽃살문이 아름다운 곳

불갑사 대웅전

오후 4시가 되어가니,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하지만 차 안에는 마실 물외엔 아무것도 없습니다. 점심도 대충 차 안에서 삼각김밥으로 때웠던 탓에 배가 많이 고팠지요.


조금만 기다리라며 옆에서 구시렁대는 친구 입을 막고 매점이 나오길 기다렸지만, 결국 그대로 불갑사 주차장에 도착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친구에게 있어 여행은, 뭐니 뭐니 해도 맛집 탐방이 우선이지만, 저는 여행지가 우선입니다. 영광에 왔으니, 굴비정식을 먹자고 친구는 노래를 불렀는데, 운전자가 저였으니 제 맘대로 불갑사를 먼저 보자고 강행했습니다. 지금 친구 입은 대자로 나왔습니다.


차에서 내려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썰렁하기 그지없습니다. 또 바람은 왜 그리 차갑게 불어대는지, 적막함이 훨씬 더합니다.

저희는 낮에 벗어두었던 외투를 꺼내 입고 차에서 내렸습니다. 친구는 입이 더 툭 튀어나왔습니다. 배도 고픈데 매점은 안 보이고, 추운데 걸어서 절까지 들어가려고 하니 심술이 날 밖에요.


잠깐의 망설임. 솔직히 걸어서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는 상황인지라, 저도 누군가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주위를 둘러보았습니다.


그러다 일주문 앞에 있는 군밤장수가 눈에 띄었습니다. 마침 잘 됐네요. 허기 때울 간식도 사고, 절까지 얼마나 걸리는지도 물어봐야겠습니다.


“걸어가려고요? 지금 이 시간이면 차 가지고 들어가도 괜찮을 거예요!”


환호성을 지르는 친구를 바라보며 잠시 망설이다,  어두워져 가는 산사, 쌀쌀해지는 날씨를 탓하며, 결국 차를 몰고 일주문을 통과해버렸습니다.


꽃살문이 아름다운 불갑사 대웅전

전라남도 영광군 불갑면 불갑산 자락에 위치한 불갑사 기원은 백제 때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누가 언제 창건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백제 무왕 때 ‘행은스님’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침류왕 원년에 ‘마라난타’가 백제에 들어올 때 창건했다는 두 가지 설이 존재합니다.


그 후 고려 후기 ‘진각국사’가 머물면서 대찰로 중창됐으나 다시 정유재란 때 전소되고,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고 합니다.


잘 닦여진 공원길을 지나쳐 달리다가 흙길을 만났습니다. 차 속도를 최소로 줄이고 울퉁불퉁한 흙길을 달립니다.


"이런 길은 걸어야 제 맛인데!"

"그래, 다음에 다시 오면, 꼭 걸어보자.  오늘은 허기져 힘들다!"


둘은 절 바로 앞에 차를 세우고, 계단을 올라 절집 구경에 나섰습니다. 불이문이 맨 처음 저희를 반기고, 그 뒤로 천왕문이 보입니다.


천왕문 안에 있는 사천왕상이 이곳 불갑사의 격조를 한층 높여 주고 있습니다.


이 천왕문 안에 모셔진 사천왕상은 신라 진흥왕 때 연기조사가 목조로 조각한 것을 조선 고종 7년(1870년)에 설두스님이 불갑사를 중수하면서, 폐사된 전북 무장 ‘연기사’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합니다. 전남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되어있습니다. 그 뒤로 만세루가 살짝 보입니다.


천왕문과 만세루를 지나 이제 대웅전 앞마당에 섰습니다. 이 대웅전(보물 제830호)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입니다. 가운데 문에는 꽃무늬 장식이 있고 좌우 문에는 빗살무늬 장식이 있습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조각을 들여다보니 그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옵니다.


불갑사 대웅전(보물 제830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입니다.
대웅전 왼쪽에 자리한 ‘일광당’. 스님 한 분이 벗어놓은 고무신마저 정겹게 느껴지네요.


인적 없어 고요한 절, 어둠이 조금씩 드리웁니다. 서쪽 산 위로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좀 전에, 백수해안도로에서 이곳으로 오면서는 갑자기 흐렸진 날씨 탓에 일몰에 대한 기대를 버렸었습니다. 그런데 둥그런 태양이 산으로 넘어가고 있는 모습이 확연히 눈에 들어오자, 둘은 마음이 바빠졌습니다.


"야! 잘하면 멋진 일몰을 볼 수 있겠다!"


서둘러 불갑사를 빠져나와 다시 백수해안도로를 향해 달렸습니다. 저곳이 일몰이 아름답기로 유명하거든요.


하지만 시간은 저희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급하게 차를 몰았지만 해안도로 근처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태양은 사라지고 붉은 여운 만이 주위에 가득 남아있습니다.


달리고 달리다가 도착한 천일염전, 태양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랩니다.


결국 도로 끝까지 달려가, 작업장의 불이 모두 꺼진 천일염전에 도착했습니다. 태양은 이미 바닷속으로 들어가 버렸고, 저희는 한참 동안 붉은 노을만 지켜보았습니다.


"아쉽다!'

"담에 다시 오라는 하늘의 배려라고 생각해라."


기운 빠진 제게 친구가 등을 두드려줍니다. 역시 그래야겠지요?


친구의 말에 기운을 차리고, 영광에서 보내는 마지막 시간을 맛있는 ‘굴비’와 함께하기 위해 영광읍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친구가 원하던 맛집을 찾아 운전대를 돌렸습니다.


휭 한 바람만이 왕래하는 천일염전은 그래도 그곳에 남아, 노을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지켜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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