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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l 09. 2022

"너, 개심사에 가봤어?"

서산 개심사

친구의 물음으로 시작된 여행


군산이 본가인 친구가 있습니다. 언젠가 그는, 제가 자주 쏘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이 집에 다녀오는 길에 자주 보았던 '개심사'에 가봤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너무 유명한 절이기에 당연히 가봤을 거라는 생각에 물어봤을 텐데, 가봤다는 대답에 조금 실망한 눈치였습니다.


친구 질문을 들은 뒤로 항상 그곳을 노리고 있었는데, 마침 서산에 온 김에 들러보기로 했습니다. '개심사'하면 가장 먼저 휘어진 기둥들이 떠오릅니다.


심검당이라고 했던가요? 절집들을 곧은 나무가 아닌, 못생기고 굽은 나무로 기둥을 삼은 곳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드디어 그 절집을 구경합니다.


서산 마애삼존불에서 보원사지를 둘러보고 개심사를 향해가는 길에는 서산 목장이 광활하게 펼쳐져있습니다. 예전에 얼핏 지나쳐갈 때는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없었는데, 절집을 찾아가는 길목마다 늘어선 긴 능선이 저희 차를 계속 따라오는 모양새를 보니 엄청나게 큰 규모입니다.


이윽고, 그 능선을 떨쳐버리고 산길을 오르다가 아주 규모가 작은 주차장에 이르렀습니다. 개심사에 가려면 이곳에 차를 세워두고 가야 합니다. 이름에 비해 작은 주차장, 그리고 몇 안 되는 가게들. 역시 많은 사람들이 얘기했던 대로 규모에 비해 작고 아담한 절인 것 같습니다.


"어머! 저 강아지 좀 봐!"


엿장수 가위질 소리에 옆에서 꼬리를 흔들던 강아지가 엿장수가 던져주는 엿을 질겅질겅 씹고 있습니다. 곁을 지나가며 이 광경을 보고 무심코 던진 아내의 말에, 엿장수는 '질기지 않고 맛있는 엿'이라며 인상 좋게 웃어 보입니다.


'맛있겠다.' 저는 무심코 입맛을 다시며 좀 사볼 생각에 아이 손을 끌었습니다. 하지만 아이는 개를 무서워하는 터라, 제 손을 뿌리치고 혼자 급하게 일주문을 통과해버렸습니다.


상왕산 개심사 일주문, 일주문을 통과할 때는 의례 두 손을 모으고 예를 갖추던 아이가, 급하게 뛰어가느라 그냥 지나쳐 버렸습니다.


서산시 운산면 신창리에 위치한 개심사(전통사찰 제38호)는, 충남 4대 사찰 중의 하나로 백제시대 혜감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합니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영산회괘불탱이 있고, 문화재 자료인 명부전과 심검당이 있습니다. 대웅전의 기단은 백제 때의 것이고, 현존 건물은 1475년(성종6년)에 산불로 소실된 것을 1484년(성종15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 것이라고 합니다.


일주문 앞에서 제가 안내문을 읽는 사이, 두 사람은 이미 멀리 사라져 버렸습니다. 급하게 뛰어가 둘을 잡으니 포장길이 끝나고 흙과 계단으로 지어진 산길이 시작됩니다. 저희는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혹시 산 중턱에 절이 있는 것을 아닐까 하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거리에 따라서 계획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려오는 사람이 앞에 보이는 고개만 넘으면 바로라고 일러준 덕에 계획을 바꾸지 않고 산길을 오를 수 있었습니다.


숨이 조금 가빠질 무렵, 마침내 눈앞에 절집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대충 봐도 규모가 작은 절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던 네모난 연못이 처음 저희를 맞았습니다.


그 위에 소담스럽게 걸쳐진 나무다리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이 옮겨집니다. 누가 그리로 가야 한다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저 나무다리를 건너야지만 절집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일 처음 만난 네모난 연못과 그 위에 놓인 나무다리가 저희를 대웅보전으로 인도합니다.


범종각의 휘어진 기둥도 이곳에선 유명하지요.


나무다리를 건너 그 앞에 서면, 왼쪽으로 종루의 휘어진 기둥이 시선을 사로잡고, 정면 안양루에는 일제강점기 서화가인 해강 김규진의 전서체로 쓰인 ‘상왕산개심사’ 라는 큼직한 현판이 또 시선을 멈추게 합니다.


몇 개의 계단을 올라 안양루 오른쪽에 있는 작은 문을 통해, 대웅보전과 오층석탑이 있는 절 마당 앞에 섰습니다. 하지만 저희는 보물 143호로 지정된 대웅보전보다는 심검당 부엌문에 관심이 더 갔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이 그토록 많이 얘기했던 바로 그 건물을 직접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웅보전과 같은 시기에 지어졌고 다만 부엌채만 증축됐다는 이 심검당이 이곳에선 가장 오래된 건물 같습니다.


개심사 심검당(문화재자료 제358호)의 부엌문과 설선당 건물


제가 이렇게 느끼는 이유는 대웅전은 보수를 했기 때문인데, 지붕도 새것이고 기둥도 새로 칠을 했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본다면, 1484년에 중건된 기록이 있는 대웅전을, 완전 새 건물로 착각할 만합니다.


보물 제143호, 대웅보전
개심사 명부전(문화재자료 제194호) 안에는 죽은 자를 심판하는 10명의 대왕이 봉안돼 있습니다. 사진 제일 오른쪽이 염라대왕입니다.


다시 대웅보전에서 돌아 나와 명부전 쪽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이곳 명부전은 문화재자료 제194호로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염라대왕 등 10대 왕을 봉안한 전각입니다.


입구에는 사람 크기 만한 사자상을 세워둬 안을 들여다볼 때 깜짝 놀랐습니다. 이곳의 10대 대왕은 우리가 죽은 후 7일부터 49일까지 , 그리고 100일 후, 또 1년 후, 마지막으로 3년까지 세상을 살면서 지은 죄를 심판하게 된다고 합니다.


명부전을 돌아보고 나오니, 제 아이가 무량수각 앞마당에서 나무 막대기로 장난을 치고 있습니다. 아까부터 아내에게 나무 막대기를 주워달라고 조르더니 이제야 하나 찾았나 봅니다.


사실 아이가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아빠가 가보자고 조르니 마지못해 따라온 아이. 그나마 저 장난감이라도 있으니 조금 위안이 됩니다.


이제 해가 점점 길어지고 있습니다. 저희 가족도 다음 일정을 찾아 부지런히 절집을 벗어났습니다. 이제 제 친구에게 개심사에 다녀왔노라고 말할 수 있어 괜히 마음이 뿌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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