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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l 08. 2022

구룡사, 함께하기에 더 행복한 여행길!

구룡사 대웅전 처마 밑

장맛비가 잠시 그친 하늘은 꼭 가을처럼 높기만 합니다. 대웅전 처마 밑, 장맛비가 그친 하늘을 올려다보았습니다.


무더운 날씨만 아니었다면 가을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하늘은 높아 보였지요. 


하지만 이제 겨우 여름의 시작일 뿐이라는 사실에 그저 한숨만 내쉬었답니다. 왜 여름은 자꾸 길어만 지는지요?  다시 시선을 먼 산등성이로 돌렸다가 고개를 돌려 보광루 쪽을 바라보았습니다.


같은 색깔의 등산복을 입고, 다정하게 손을 맞잡은 중년부부. 그들이 보광루 밑을 통과해 대웅전으로 올라오고 있는 모습이 참 아름답게 보입니다.


그 순간, 어제 일이 떠올랐습니다.


해질 무렵 바닷가 포구에서, 소주 서너 잔과 바다에 취해 몸조차 제대로 가누지 못하며, 친구들의 부축을 받고, 어디론가 사라지던 중년 아낙의 모습이 지금 떠오르는 건 무슨 까닭일까요?


동해안 작은 포구에 자리 잡은 횟집은 장마 탓인지 한산했습니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이런 얘기를 했답니다. 남편도 잊고, 자식도 잊고, 그저 고속버스에 무작정 몸을 싣고 3시간 여를 달려 바닷가에 왔니라고요. 


바다가 이렇게 가까운 줄 알았더라면 진즉에 달려왔을 터인데, 남편만을 조르고 조르다가 시간만 이렇게 흘렀다고. 그리고는 쓴 소주를 입에 탁 털어 넣었습니다.


서울에서 3시간이면 동해바다 푸른 파도를 만날 수 있는데, 그리고 그 바다에 원망을 실컷 내 던지고 돌아가면 그만인데, 왜 그동안 모르고 지냈는지 한심하다는 말을 되풀이했습니다. 


지금 구룡사 절집을 둘러보는 저 부부의 모습과 대조되는 바닷가 아낙을 생각하니, 괜히 안쓰럽기만 하네요. 자세한 내막도 모르면서 말이죠.

끊임없이 흐르는 세찬 물줄기가 이 산이 얼마나 깊고 높은지 알려주는 듯합니다.

저희 가족이 함께 치악산을 찾은 기억은 이번이 3번째입니다. 하지만 정작 산 밑자락이라도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네요.


한 번은 너무 늦게 찾아와,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매표소까지 걸어 올라오다가 날이 다 저물어 돌아갔고, 또 한 번은 폭설에 길이 막혀 차를 돌렸었죠.


하지만 이번에는 매표소까지 차를 타고 올라와 아내와 아이를 내려놓고, 는 다시 돌아가 밑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헉헉대며 걸어올라 왔습니다.


아이와 함께 걸어올라 왔다면 1시간도 더 걸렸을 길임을 알기에 그렇게 시간을 벌어야 했죠.


표를 끊고 구룡사까지만 가보기로 했답니다. 어른 걸음으로 15~20분 정도 거리이기에, 아이와 함께 걷기엔 부담 없는 길이라 생각했죠.


하지만 역시 아이는 걷다가 멈춰 이것저것 들쳐보고, 주워보고 하느라 진도가 나가질 않네요.

강원도 기념물 제30호 학곡리 황장금표, 이 표석은 조선시대 설치된 것으로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일반인의 벌채를 금지하는 표식을 돌에 새겨 둔 것입니다.
원주 구룡사 일주문 격인 원통문

이래서 언제 구룡사까지 갈까요? 걱정이 앞서는데, 아내가 아이를 맡고 있을 테니, 보고 빨리 다녀오라고 합니다.


는 재빨리 구룡사까지 걸었습니다. 아내에겐 미안했지만 구룡사가 처음이 아니라는 말에 그렇게 하기로 했죠.


역시 혼자 걸으니 가까웠습니다. 원통문을 지나고, 부도 밭을 지나 금방 절 앞에 도착했습니다.


구룡사는 강원도 지방문화재 제24호로 신라 문무왕 6년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전설에 의하면 지금의 대웅전 터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그곳에 청룡 아홉 마리가 살고 있었고, 의상대사가 불도로 용을 쫓아내고 연못을 메워 절을 세웠으며, 아홉 마리 용이 살았다 하여 구룡사(九龍寺)라 이름 지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지금 절의 이름을 보면 거북이 구(龜), 용 용(龍)을 써서 ‘龜龍寺’라고 합니다.


이 연유를 알아보니 절이 퇴락의 길을 걷던 중 절 입구에 있는 거북바위의 혈을 끊었다가 또 나중에 살리는 과정에서 지금의 절 이름이 되었다고 합니다.

보광루(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45호), 구룡사 출입은 사천왕문을 통과하여 보광루 밑을 통로로 삼아 대웅전 앞에 이르도록 설계되어 있답니다.

대웅전 계단을 따라 밑으로 내려가는 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아이가 빨리 오라며 전화를 건 것이죠.


지금 구룡사 바로 밑 계곡에는 아내와 아이가 를 기다리며 물장난을 치고 있답니다. 전화를 끊고 서둘러 계곡으로 달려갔습니다.


계곡 물이 어찌나 차가운지 발을 담가놓고 5초를 참지 못했습니다.

둘은 구룡사 바로 밑 계곡 물에 자리를 잡고 놀고 있었습니다. 아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있다가 얼마를 참지 못하고 나오고, 또 들어가고를 반복하고 있네요. 까르르거리면서.


“뭐! 볼만한 것 있었어?”

"어! 좋았는데, 같이 갔으면 더 좋았을 같았어"


혼자 다녀온 것이 맘에 걸려 이렇게 한마디 던지고는 다시 신발을 벗고 계곡 물에 발을 담가봅니다.


하지만 하나, 둘, 셋, 넷, 다섯을 세고는 다시 물 밖으로 뛰쳐나왔습니다. 발 끝 감각이 없어지고 온 몸이 얼얼할 정도로 물이 차가웠기 때문이죠.


한여름 무더위를 날려버리기에는 아무래도 계곡이 가장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울창한 나무가 햇빛도 막아주고, 시원한 물줄기가 더위를 막아주니 말이죠.


한참을 놀다가 저녁 무렵이 돼서야 짐을 챙겨 들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울창한 소나무 길을 따라 부도 밭을 지나고 원통문을 통과해 다시 세상으로 돌아왔죠.


옆으로 시끄럽게 흐르는 계곡 물을 바라보니, 산이 얼마나 높고 깊기에 저토록 끊임없이 물이 꽐꽐 흐르는지 경이로운 따름입니다.


내려오는 길에 주막에 들러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매표소에서부터 다시 20여분을 걸어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올라올 때는 멀게만 느껴지던 길이, 내려갈 때는 이렇게 가깝게 느껴지니 웬일일까요? 아마 손을 맞잡고 걷는 아내가, 또 아이가 옆에 있기 때문일 테죠?


그리고, 바다가 보고 싶다면, 언제든지 같이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함께여서 더 행복한 여행임엔 틀림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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