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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l 07. 2022

묘적사, 다투고 화해 잘하시나요?

혼자 먹는 술


스물 갓 넘은 나이 때, 혼자서 집 앞 포장마차에 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뭔가 고민거리가 있어서 혼술을 했던 것 같아요. 소주 한 병을 시켜놓고 곰장어 구이가 나올 때까지 두 잔을 마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안주가 나오고, 반 병쯤 술을 마시고 나니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질 않더군요.


그 뒤부터 저는 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혼자 마시는 술은 시간과의 싸움이다. 처음 잠깐 동안은 문제가 없지만, 점점 술병에서 술이 줄어드는 시간이 길어지고, 나중엔 왜 혼자 이런 궁상을 떠는지 후회하게 된다.” 고 말이죠. 그 뒤론 혼자서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때의 2.5배 정도가 되는 나이를 먹고 보니 생각도 행동도 바뀌었습니다. 식탁에 앉아 혼자서 홀짝홀짝 소주 한 병을 너끈하게 비웁니다. 혹시 아내와 다툼이라도 있는 날이면 여기서 그치지 않고 맥주를 또 꺼내 마시곤 하지요. 젊었을 땐 그렇게도 안 줄어들던 술병과 그렇게도 안 가던 시간이 이젠 잘 비워지고, 또 잘 갑니다.


여름, 밤바람도 무더운 어느 금요일 저녁, 정말 별 것도 아닌 일에 아내와 다투고 말았습니다. 한 번만 참으면 웃고 지나갈 인인데, 그걸 못해서 결국 오랜만에 함께하기로 한 외식도 못하고 각자 저녁밥을 먹었습니다.


참치 캔을 하나 따고 냉장고에서 소주 한 병을 꺼냈습니다. 아내는 작은 방에서 혼자 뒤척이고 있습니다. 저는 그냥 모른 척, 그리곤 혼자 병을 다 비우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잠은 오지 않았지만, 도대체 왜 싸웠는지 벌써 기억도 가물가물 해지는 그런 일 때문에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이 이상할 따름입니다.

전날 집안 분위기가 무거운 탓에 아이들도 침울해 있습니다. 어제 그 당당했던 제 행동이, 아침이 되니 미안해지고, 무거운 분위기가 너무 싫어서 아이들에게 나갈 채비를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제 엄마를 부추겨, 나들이에 동참하게 만들었고요. 차 안 분위기는 이상하지만, 아내는 아이들과 재밌게 웃으며 장난을 칩니다. 아직 저에게만 ‘뚱’하고요.


경춘가도에 들어섰습니다. 어디로 갈지는 정하지 않고 그냥 나왔습니다만,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군요. 차가 많이 막힙니다. 


저는 이럴 때 자주 다니는 샛길을 이용해 경춘가도에서 벗어났습니다. 길을 잘 아는 사람들은 다 알겠지만, ‘남양주’에서 ‘화도’로 바로 넘어가는 길이 있습니다. 산을 하나 넘어야 하지만, 차가 막히면 그리로 가는 것이 빠릅니다.


그렇게 길을 가로질러, ‘화도’에 다가갈 때쯤,  ‘묘적사’ 표지판을 발견했습니다. 뒤에서 아이들과 장난치던 아내가 뚱한 소리로 ‘저기나 한 번 가봐!’라는 말을 합니다. 일단 이럴 때는 잽싸게 ‘네’ ‘네’를 연발해야 합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아내는 묘적사 계곡이 좋다는 말을 어디선가 들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곳에 가보자고 한 것이지요.


묘적사 게곡


묘적사에 가기 위해 좁은 길을 달리면, 시원한 계곡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시원한 계곡 물줄기를 따라 위로, 위로 올라가면 절 입구에 도착합니다. 역시 생각처럼 아담합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절의 이력이 적힌 안내문 앞에 먼저 섰습니다.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 로 시작하는 안내문에는 이곳이 국왕 직속 비밀기구가 있었던 곳이라고도 합니다. 왕실 산하 비밀요원을 훈련시키던 곳이라는 것이지요. 안내문을 지나쳐 절집 구경을 하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와! 정말, 생각보다 예쁜 절입니다. 아담하고, 소박해 보이고, 사람 손길도 별로 타지 않은 그런 느낌의 절.



묘적사 대웅전과 팔각 다층석탑. 저 석탑은 2013년,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7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조선시대 석탑이지요.


대웅전 좌우로는 요사체가 있습니다. 기둥이 통나무를 그대로 써서 자연미를 살린 하나의 작품입니다. 이 모습은 마치 ‘개심사의 신검당’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런 절이 사람들의 입 소문을 타지 않았다니. 아니, 참! 저만 몰랐던 것일 수도 있군요. 정말, 나무의 멋을 제대로 살렸습니다.


묘적사 요사체의 나무기둥


절집은 단출합니다. 딱 보기엔, 대웅전과 승방, 요사체 2채가 전부인데, 대웅전 뒤로 언덕길이 하나 있군요.  위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졌습니다. 높이 않은 계단길을 조심조심 올라가봅니다. 

 

산령각


언덕길을 오르자, 산령각의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옆에는 석굴암이 있습니다. 석굴암에는 어느 여인이 치성을 드리고 있더군요. 방해 안되게 조용히 돌아 나왔습니다.


석굴암

묘적사에서 내려오는 길. 아내와 무슨 말을 건넸는지 지금은 기억나지 않지만, 그동안 무거웠던 분위기는 싹 사라지고, 즐거운 마음으로 차에 올랐습니다. 싸우고 화해하고, 또 다투고 화해하는 일이 부부 사이 일상입니다. 다투면 최대한 빨리 화해하는 길이 부부 사이를 건강하게 만드는 것이겠지요. 


사실 결혼 후 한 번도 싸우지 않았다는 부부의 말을 들으면, 어찌 보면 불쌍해 보이기도 합니다만, 살면서 어찌 싸우지 않을 수 있습니까? 서로에게 관심이 없다면 모르지만 말이죠. 이날 이후로, 지금껏 꾸준히 다투고 있습니다. 아마 평생 이렇게 살겠지요?  죽을 때까지.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다투고 잘 화해하시나요. 모든 가정에 평안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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