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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l 12. 2022

범어사, 달팽이는 풀 숲에 잘 도착했을까?

부산 범어사

잠깐 눈을 붙인 것 같은데, 벌써 3시간이 지나버렸습니다. 그새 차는 부산까지 다 와버렸고요. 집에서 전날 저녁 8시 30분에 출발한 차는 결국 새벽 4시, 부산에 도착했습니다.

중간에 몇 번을 휴게소에서 잤는지 모르겠네요. 처음 운전대를 잡은 저는 칠곡 휴게소에서 쓰러져 버렸고, 그 후로는 아내가 운전을 했습니다.


부산에는 아내의 친구가 살고 있답니다. 아주 절친한 친구이기에, 아내는 그전부터 한번 오자고 했었죠. 그러다 결국 이렇게 갑작스럽게 부산에 오게 되었습니다. 아직 아내 친구는 저희가 이곳에 온지도 모르고 있답니다.




조금씩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자, 곳곳에 ‘범어사’ 이정표가 상당히 눈에 많이 보입니다.


새벽에 산사를 찾는 기분은 어떨지 한번 경험해 보고 싶어 졌지요. 망설임 없이 길에 들어섰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이른 새벽 시간에 저희 말고 누가 또 있을까 싶었는데, 저희만 부지런한 게 아닌가 봅니다. 등산복 차림의 사람들은 벌써 어디를 다녀오는지 그 길을 따라 걸어 내려오고 있으니 말이죠.


그들은 저희보고 뭐라고 하겠지요? 새벽의 조용한 산길을 시끄러운 자동차가 다 망친다고요.


범어사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6시부터 요금을 받는다니까 그전에 빨리 다녀와야겠습니다. 그런데 승용차들이 주차장에 차를 세우지 않고 절을 향해 더 올라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려는 저는 갑자기 불안해졌습니다. 혹시 걸어서 꽤 올라가는 것은 아닌가? 하고요


“아저씨. 범어사가 여기서 먼가요?”


이른 새벽부터 매표소에는 직원이 나와 있습니다. 그 사람은 질문하는 저를 위에서 아래로 두 번을 쭉 훑어봅니다.


그리고는 어디서 왔냐고 묻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왔고, 차들이 올라가기에 혹시 꽤 먼 거리인지 궁금해서 물어보는 것이라고 자세하게 설명을 했습니다.  그는 바로 위가 절이라고 했습니다. 한 5분만 걸으면 대웅전에 도착할 것이라고도 했죠.


부산의 금정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범어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4교구 본사로 해인사, 통도사와 더불어 영남의 3대 사찰로 불립니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해동의 화엄십찰 중의 하나로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요.


매표소를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자마자 삼거리가 나왔습니다. 대웅전으로 가는 길은 왼쪽이라고 표시가 되어 있어 왼쪽으로 접어들었는데, 그 길에 서서 바라보니 정면에 기둥 4개의 일주문이 버티고 서있는 모습이 보입니다. 정말 저런 일주문은 처음 보네요

범어사 일주문, 이름이 있네요. "조계문" 이라고 합니다.

일주문 앞에 섰습니다. 이 범어사 일주문은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돼 있었다가  지금은 보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문을 처음으로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614년(광해군 6) 묘전화상이 사찰 안에 여러 건물을 중수할 때 함께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네요.


1718년(숙종 44)에 명흡대사가 석주로 바꾸고 1781년(정조 5) 백암선사가 지금의 건물로 중수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일주문부터 천왕문과 불이문 그리고 보제루가 일직선으로 곧게 배치되어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걸어 올라가면 옆으로 시원스럽게 뻗은 대나무들의 모습도 볼 수 있고요.


불이문을 막 지나 보제루의 계단을 오르려는데 달팽이 한 마리가 꼼지락거리며 돌계단을 지나 숲으로 기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래서 아내가 한참을 이 계단에서 움직이지도 않고 바라보고 있었나 봅니다.


"달팽이야! 힘내라! 조금만 더 가면 풀숲에 닿는단다."


천왕문을 통해 불이문이 보이고 보제루 계단이 보입니다.

보제루를 지나 대웅전이 보이는 마당에 들어섰습니다. 이 마당에 서면 정면에 대웅전과 오른쪽에 삼층석탑, 왼쪽에 석등이 보입니다.

범어사 대웅전과 3층 석탑

대웅전(보물 제434호)을 보기 위해 3층 석탑을 지나 계단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막 계단을 오르려는 순간 제 뒤통수에 뜨거운 시선이 집중됨을 느꼈습니다. 보제루 안에서 많은 사람들이 새벽 참선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죠. 대웅전을 바라보고요.


순간 걸음을 멈추고 슬금슬금 뒤로 물러났습니다. 감히 그 계단을 올라 대웅전 앞으로 갈 용기가 나지 않았고, 또 그래선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보제루 뒤를 돌아 반대편 석등이 있는 마당으로 갔습니다. 이 석등도 범어사 3층 석탑과 마찬가지로 9세기경의 작품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재, 범어사 석등

3층 석탑에서 석등까지 가로질러오지 못하고 보제루 뒤를 빙 돌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단, 10걸음에 올 거리를 한참을 빙 돌았죠.

대웅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너무 많아, 차마 가까이 다가가 둘러보지 못하고, 그냥 발길을 돌려 밑으로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보제루 계단을 기어가던 아까 그 달팽이는 아직도 그곳을 빠져나가지 못했습니다.


설마 누가 모르고 밟지는 않겠지? 걱정이 앞섰지만 아직은 인적이 없는 길이라서, 곧 숲에 도착할 달팽이를 놔두고 주차장으로 내려왔습니다.


어느새 동네 사람들의 운동장으로 변해버린 주차장 앞산으로 해가 떠오르고 있네요.


아내의 친구를 만나다.


아내는 친구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덤덤하게 지금 부산이라고 말하고, 잠깐 얼굴 좀 보자며, 집이 어디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마 이쪽으로 나온다고 했나 봅니다. 광안리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잡았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아내의 모습은 들떠있었습니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보고 싶었던 친구가, 저 해변을 지나 우리 쪽으로 달려올 것이기 때문이지요.

광안리 해수욕장

그렇게 아내는 몇 년 만에 그리워하던 친구를 만났습니다. 미리 연통도 없이 달려온 아내나, 만사를 제치고 달려온 친구나, 저는 이해가 안 됐죠. 왜? 미리 약속을 잡지 않았는지?


나중에 아내에게 물어보니 대답은 간단했습니다.


"저 년은 내가 보고 싶어서 온다고 했으면, 그 먼 거리를 뭐 하러 오냐고, 다른 핑계를 대서라도 못 오게 했을 거야. 이렇게 갑자기 와야 만나지"


아내와 친구, 둘의 우정에 브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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