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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드 Jun 26. 2023

하조대, 벼랑 끝 바위에 뿌리내린 소나무

강원도 양양 하조대

7번 국도를 따라, 속초에서 강릉 방면으로 가는 이 길은 누구나 인정하듯 정말 아름답습니다. 특히 파도가 거세게 일렁이는 바다는, 보는 이로 하여금 시 한 구절 떠오르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지금 차 안에는, 민우네 가족이 타고 있습니다. 그는, 다행스럽게도 오랜 시간 동안 차 안에 있어도 지루해하지 않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참 고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덕에 장거리 여행도 가능했지요. 다 아이들 덕입니다.


그런데 민우는 가끔, 먼저 애들을 키워본 선배들이 했던 말을 기억합니다.


오래전 이야기지만,  아내가 임신하자 사람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얘기했습니다. 여행 좋아하는 그들 부부에게, 이젠 '적어도 5년 안에 지금처럼 여행 다니기는 힘들 것' 이라고요.


​임신 기간이라 장거리 여행은 힘들 것이고, 아기를 낳아도 몇 년은 돌아다니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지요.


아내 임신기간에는 선배들 말처럼, 여행 다니기 힘들었습니다. 항상 조심해야 했으니까요. 하지만 얘를 낳고서는 상황이 그들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한 달이 지났을까요? 아내가 몸을 풀고 나니, 지난 1년 동안 갑갑하게 집과 병원을 오간 게 안타까워, 머리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는 아이를 데리고 강릉에 살고 있는 친구 집엘 찾아갔습니다.


민우부부는, 그때 그 친구 어머니께 혼나기도 했지요. 이런 갓난애를 데리고 돌아다닌다고, 철없는 부부라고 말이죠.


하지만 그 뒤로도 아이를 데리고 열심히 돌아다녔습니다. 물론 제약이 많이 있지요. 대중교통은 이용할 수 없고, 오래 걷는 여행지도 피해야 했기 때문에 쉽게 다가설 수 있는 바다가 제일 적당했습니다.


주말이면 동해, 서해, 남해바다를 휘젓고 다녔지요. 그래서 그런지 아이는 차 안에서도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아니, 오히려 차 타는 것을 좋아하지요.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차는 하조대에 다 와갑니다. 이곳 해수욕장은 자주 와봤지만, 정작 하조대 정자는 아직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 가보려고요.


해안가 좁은 길을 달려 하조대에 도착하니 그 옆으로는 무인등대도 보입니다. 우선 정자에 올랐다가 등대에도 가보렵니다.


아이가 느린 우체통에 넣을 편지를 씁니다.


주차장에는 벌써 십 여대 정도의 차가 서있습니다. 주차장이 그리 넓지는 않지만 차들이 금방 금방 순환이 되니까 비교적 자리는 넉넉할 것 같습니다.


바다를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나무 계단을 타고 정자에 올랐습니다. 아이는 뭔가를 줍느라고 열심입니다. 벌써 한쪽 주머니에 가득 뭔가를 집어넣었습니다.


다가가서 보니 땅에 떨어진 솔방울을 줍고 있었습니다. 이 솔방울이 자라서 소나무가 된다는 아빠  말을 듣고 나서부터 줍기 시작했나 봅니다. 아마 시골집, 앞마당에 묻으려나 봅니다.


하조대 정자

정자로 올라갔습니다. 정말 망망대해,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푸르름에 할 말을 잊고 말았습니다.


이곳 하조대는 조선의 개국공신인 하륜과 조준이 이곳에서 잠시 은거하였다 하여 두 사람의 성을 따서 ‘하조대’라 칭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조선 정종 때 정자를 건립하였으나 퇴락하여 철폐되었으며, 수차례의 증수를 거듭하여 1940년에 8 각정을 건립하였으나 아쉽게도 한국전쟁 때 불에 탔습니다.


그 후 1955년과 1968년에 각각 제건 되었다고 합니다. 이 정자도 정말 파란 만장한 역사를 가지고 있네요.


그런데 안내문을 살펴보니 현재의 건물도 1998년에 해체복원한 건물이랍니다. ​



이 정자 앞에는 바위가 하나 든든하게 버티고 있습니다. 그 바위 윗부분에는 “河趙臺”라고 음각되어 있습니다. 이 글씨는 조선 숙종 때 참판 벼슬을 지낸 ‘이세근’이라는 사람이 썼다고 합니다.


민우는 다시, 거센 파도가 바위에 부딪쳐 하얀 포말을 끊임없이 만들어내는 바다와 함께 기암절벽을 바라보고 섰습니다.



그때 그 절벽 위에 기묘하게 서있는 소나무 한 그루의 당당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흙에서 자라야 할 나무가 어찌하여 바위에서 자라고 있는지 신가 할 따름입니다.​


‘나무는 숲을 이루고 숲에서 살아야 하거늘 당신은 어찌하여 그곳에 홀로 외로이 서 있는가요?’


사물은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다고 하더니만 저 나무는 자신의 자리에 있지 않고서도 저리 아름다울 수 있다니, 뭐든 남들과 똑같아선 특출하게 보이기 어렵다는 것일까요?​


등대 가는 길, 시선을 사로잡는 멋진 풍경


대답 없는 나무를 뒤로하고 바로 옆에 있는 하얀 등대로 가기 위해 길을 내려갔습니다. 아이의 주머니는 어느새 두 곳 다 불룩해졌습니다. 자꾸 줍느라고 걸음이 늦어집니다.


벼랑사이에 만들어 놓은 계단에서도 아까 보았던 소나무가 살짝 보이네요. 아이디어 좋네요. ​
하조대 등대

등대에 서서 하조대 정자를 바라보는데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소나무 한그루의 모습이 보입니다.



보호하기 위해 쳐놓은 철망 안에서 바닷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세찬 비바람과 눈보라를 홀로 견뎌야 하는 여린 나무의 모습이 가여워 보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묵묵히 견뎌나가는 어린 생명에게 마음속으로나마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부디 역경 속에서도 잘 자라길 바란다.’


후에 이곳을 다시 찾을 목적이 생겨서 그런지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습니다.


“아빠! 이 솔방울 좀 아빠 주머니에 넣어줘요!”


두 손에 가득 솔방울을 들고 뒤따라오는 아이 손을 잡으니 그렇게 따뜻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중에 꼭 한 번 더 오자꾸나!


그리고 뒤돌아 가는 아이를 보며 생각했지요.


'내가, 너의 울타리가 되어주마! 어떤 역경 속에서도 잘 자라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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