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22일 #7
코소보를 제외한 발칸반도의 7개국 20개 도시를 22일 만에 둘러보려면 현실적으로 한 도시에서 하루 이상을 머무를 수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좋아하지 않는 패키지 투어처럼 주마간산식 여행이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일정을 조정하여 방문국 수를 줄여서 한 곳에서 며칠씩 여유롭게 지낼 수도 있지만, 한번 마음먹고 나선 김에 좀 더 많이 돌아보자는 욕심과, 길게 머무를 곳과 짧게 머무를 곳을 선별하기에는 내 사전 지식도 부족하고 또 그런 부분을 보완해줄 기존의 정보들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방문하는 도시들이 소피아나 부쿠레슈티를 제외하곤 대도시라고 할만한 곳이 없고, 대부분이 아담한 중소규모의 도시들이라 굳이 이틀씩 묶을 만큼의 볼거리들이 없다는 것도 하나의 이유가 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소피아는 하루 반, 그리고 부쿠레슈티는 이틀을 그리고 나머지 도시들은 하루씩만 머물려고 일정을 잡았습니다.
플로브디프도 무엇을 보고, 어떻게 동선을 짜느냐에 따라 사흘 나흘도 모자랄 수 있을 만큼 다양한 문화적 유물과 미술관 및 박물관들이 구도심과 신도심에 산재해 있습니다. 그렇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30분이나 한 시간만에 후딱 둘러보고 나올 수는 없기 때문에 하루의 일정으로 움직이려면 그런 곳들은 과감히 방문 예정 목록에서 지워버려야 되고, 또 그렇기 때문에 동시에 아쉬움이 남는 것 또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다음 방문지로 떠날 때마다 한아름의 미련을 남기고, 한 움큼의 아쉬움을 뿌리고 떠나는 겁니다. 다음번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말입니다.
구시가지의 골목들에 자리한 신기하고, 인상적인 주택과 조형물을 보면서 언덕을 올라가니 교회가 보입니다.
- 성모 마리아를 기리기 위해 지어진 성모 가정 성당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9-10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오토만이 불가리아를 침공하여 1371년에 플로브디프를 정복한 후에 교회 옆의 수도원은 완전히 파괴되어 르네상스 시기에는 고풍의 위풍당당한 교회의 흔적이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다가 1844 년에서 1845 사이에 Bratzigovo 출신의 장인들이 돌만을 사용하여 완전히 새로운 교회를 건축하였다. http://www.visitplovdiv.com/en
터키와의 독립전쟁 기간 중에 이 교회는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1859년 12월 25일 크리스마스에 여기서 최초로 불가리아어로 성대한 미사가 집전되고, 대주교는 그들의 신도들이 콘스탄티노플의 지배를 받기를 거부한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러시아 - 터키 전쟁과 불가리아의 오토만 지배에 대한 독립전쟁 후 1881년에 교회 옆에 종탑이 세워졌다. 교회의 가장 높은 부분은 32m이고, 중앙 부분은 화려한 바로크 스타일의 주두 형식을 갖춘 열주들이 아치 형태로 연결되어, 세 부분의 신도석을 분할하고 있는 바실리카 양식이다. -
내가 가 본 대부분의 유럽의 중소 도시들은 기본적으로 강을 끼고 있고, 올드 타운과 신시가지가 분리되어 있으며, 구 시가지의 중앙에는 광장이 있고, 그 중앙이나 주변에는 교회, 그리고 동상이 노천 카페들과 어울려 있습니다. 플로브디프는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라 그런지 구 도심에 넓은 광장은 보이질 않습니다(있는데 내가 못 봤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역사적 볼거리들은 모두 구시가지에 모여 있어 찾아다니는데 큰 힘이 들지는 않습니다. 고대 극장에서 몇 개의 골목길을 돌아 나가면 성모 가정 성당이 있고, 그 조금 떨어진 곳에 예배당(Nikolay Chapel)이 보입니다.
이 아담하고 고졸한 멋이 풍기는 예배당은 원래 대성당에 부속된 건물로 1355년 경 니콜라이 성인(Saint Nikolay)을 기리기 위해 불가리아의 이반 알렉산더(Ivan Alexander) 왕의 치세 때 건설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고, 현재의 예배당 건물은 1935년에 건설되었습니다. 여기서 아래로 좀 더 내려가면 돌산을 등에 지고 또 하나의 교회가 나오는데, Sveta Paraskeva Church입니다. 플로브디프의 구시가지에만 해도 8개의 정교 교회에 가톨릭 성당과 아르메니아 교회까지 10개의 있답니다. 터키의 지배를 받아서 모스크가 많을 줄 알았는데, 정교 교회 건물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인적이 드문 거리와, 관광객을 찾아볼 수 없는 관광지 및 유적지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돌아다니다 보니 아침도 못 먹었습니다. 시간상으로는 벌써 뭔가를 먹어야 했지만 그러지 못한 건 긴장 탓인지 별로 배도 고프지 않았고, 문을 연 식당이나 패스트푸드점이 이 시간까지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아 식욕이 자극되지 않은 탓도 있을 겁니다. 이쪽 지방은 케밥이 유명하다던데 마침 문을 열고 영업을 하는 케밥집이 보입니다. 주문을 하고 돈을 지불하고 주문한 메뉴를 건네받는 동안 몇 마디가 오갔지만, 서로 간에 한 마디도 알아듣지 못하고, 그림과 사진을 보고 그냥 손가락으로 주문하고, 고개를 끄덕이고, 웃어주고 그뿐이었습니다. 2천 원 조금 넘는 가격인데 살짝 구운 식빵 속에 든 내용물이 다양하고 충실합니다. 거기다 요구르트의 나라답게 시큼하지만 단맛이 나지 않는 요구르트까지 듬뿍 끼얹어서 간단한 아침식사로 먹기에는 양이 너무 많습니다. 나무 밑 돌 벤치에 앉아 주체하지 못할 만큼의 풍성한 양 때문에 많이도 흘리면서 단정하지 못하게 겨우 다 먹었습니다. 되네르(döner) 또는 되네르 케밥(döner kebap)은 케밥의 일종으로 터키어로 "회전 케밥"이라는 뜻입니다. 일반적으로 양고기가 쓰이지만, 내가 먹은 건 닭고기 같았습니다. 나름 맛도 괜찮았고, 불가리아의 물가가 싸 다는걸 처음 알았던 순간입니다.
최근에 이렇게 배부르게 아침을 먹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것도 아주 저렴한 가격에 적당한 맛까지 겸비한, 한국에서는 좀처럼 먹기 힘든 케밥을 말입니다. 아직 10시도 안된 시각이라 입실(체크인)이 가능한 2시까지는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습니다. 발걸음을 돌려 신시가지의 보행자 거리를 다시 걸어내려가니 시메온 공원이 나옵니다. 그 앞 작은 광장의 문을 연 지 얼마 안 되는 노천카페에는 아직 손님들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과감히 한 자리 잡고서 커피 한잔을 주문합니다. 메뉴를 보니 다른 케이크류도 가격이 아주 착합니다. 지금은 배가 부르니까 나중에 와서 커피랑 케이크를 먹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커피만 한 잔 시켜 마시는데 맛도 있고, 역시 가격도 저렴합니다. 새벽에 버스와 기차역에서 느꼈던 불쾌한 기억들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시메온의 정원(Tsar Simeon’s Garden)은 1892년 터키 술탄의 궁중 정원사였던 스위스 조경학자 Lucien Chevalas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901년 대대적인 재건축이 시행되었는데, 정원의 건설 이념은 위대한 불가리아의 정신을 되살리자는 것이었습니다. 데메트라 분수는 1892년 바로 이 장소에서 열렸던 불가리아 만국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형물입니다. https://plovdivbg.info/objects/tzar-simeons-park/?lang=en
또한 상승상군(常勝將軍)이라 불리던 시메온 황제는 893년 형을 대신하여 왕위를 물려받은 후, 927년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수많은 전투에서 패한 기록이 거의 없어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죽기 전까지 비잔틴 제국과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하며 비잔틴 제국을 무던히도 괴롭히며, 불가리아의 초기 전성기를 이끌었던 왕입니다.
지금은 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휴식터가 되었고, 공원 곳곳에는 어린이들의 놀이터, 동상과 여러 개의 크고 작은 분수들이 있고, 공원 안쪽의 연못에는 유명한 노래하는 분수(Singing Fountains)가 있어 여름철 목, 금, 토요일 밤 9시부터 화려한 조명을 곁들인 분수쇼가 벌어진답니다.
공원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느 한편에 눈에 익은, 하지만 이 장소에는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동상이 눈에 띄길래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일본의 모모다로 동상입니다. 놀라서 자세히 보니 일본 오카야마시와의 자매결연 2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워진 동상입니다. 조금 뒷맛이 씁니다. 어느새, 20년 전에 일본은..., 물론 그 당시는 우리랑은 체제가 달라 교류가 원활하지 못했겠습니다만. 역시 일본은 빠릅니다.
시메온 공원 내의 모라도 바(Morado Bar & Dinner) 뒤편에 서 있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의 동상입니다. 2004년 그리스 테살로니키 시의 후원을 받아 건립된 동상은 처음에는 신시가지 입구의 로마 스타디움 앞에 있었으나, 2012년 스타디움의 대대적인 개보수 때문에 시의회 앞으로 옮겨졌습니다.
필리포스 2세는 기원전 359년부터 기원전 336년 암살당할 때까지 마케도니아 왕국의 왕이었습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아버지로 치세 동안 그리스에 대한 마케도니아의 지배권을 강화하고 국력을 키워서 아들 알렉산드로스가 대제국을 건설할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위키백과)
공원을 나와 조금 걷다 보니 문화회관이 나옵니다. 불가리아 출신의 20세기 가장 위대한 베이스 오페라 가수로 인정받고 있는 Boris Hristov의 두상(頭像)이 인상적입니다. 옆에는 극장도 있고 쇼핑몰이 있어서 면도기와 치약 등을 사고 ATM에서 불가리아 화폐 레브도 좀 더 인출합니다.
아! 이제는 호텔에 가서 좀 쉬고 싶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시계는 11시를 조금 넘은 시간.
어떡할까 망설이다가 일단 호텔로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