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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미역 Jun 18. 2018

플로브디프,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곳

발칸, 22일  #6

프로브디프 시청사와 Stefan Stambolov 광장의 분수


원형경기장에서 남북으로 길게 뻗은 보행자 거리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 아름다운 건물의 시청이 나옵니다. 그 앞은 Stefan Stambolov 광장으로 과거에는 거주지역이었다가, 19세기 중반에 허물어지고 지금의 광장이 들어섰다고 합니다. 현재는 축제나 다양한 행사들이 열리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고, 시청 앞 광장 주위에는 아이스크림 전문점과 카페들이 모여 있어 시민들의 쉼터가 되고 있는  듯합니다.


이른 아침의 시청사 주위의 가게들오후에 호텔에 짐을 풀어 놓고 나와서 이 자리에서 맥주와 펜케이크를 먹었다. 비도 피할 겸.


하지만 지금은 이른 시간이라 대부분의 가게들은 아직 문을 안 열었고 지나다니는 사람들도 거의 없습니다. 청소하는 분들의 고마움을  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도시 규모에 비해 너무 커 보이는 우체국 옆 골목으로 가다 보면 오데온(Odeon)과 포럼(Forum complex)이 있습니다. 여기는 불가리아 내에서 가장 큰 고대의 광장터로 고대 도시의 경제, 문화, 행정 및 종교 생활이 밀집되어 있었던 곳입니다. 모에시아와 트라키아의 보물과도 같은 첫 번째 도시가 여기에 위치했답니다, 광장의 북서쪽 모퉁이에 자리 잡은 오데온은 300-350석의 규모로 고대 극장 건물들이 가지고 있던  모든 요소들이 발굴되었습니다. 당시에는 귀했던 대리석 조각들, 황제의 동상 기판에 새겨진 글자(銘文)들, 대리석의 반 열주들(marble semi-columns), 그리고 87개의 은화 등의 유물들이 발견되었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저기 열주들이 있는 곳에 입구도 있고 더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장소도 있었는데 그 아침 시간에는 미처 몰랐더랩습니다. 아쉽게도.


오데온(Odeon)과 포럼(Forum complex)


걷다 보니 낮게 깔린 구름 사이로 햇빛이 삐져나와 빛 내림이 생긴 거리 위로는 점차 도시의 삶이 정상적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부쩍 늘어난 길 위를 달리는 승용차와 버스들, 그리고 그것들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 한 옆으로는 심야버스를 타고 국경을 넘어와 새벽에 낯선 곳에  내려서, 인터넷이 불통이 된 나름 최신형 휴대폰만을 들고, 지도 한 장 없이 막연히 길을 따라 걷기만 하는 나이 많은 홀로 여행객과 어우러져서 만들어지는 그림이 어제와는 분명 다를 플로브디프의 아침 모습입니다.


아침이 시작되는 프로브디프


어떻게 어느 길로 접어들었는지 유명한 정교회가 나타납니다. 관련된 자료에 따르면,

313년 밀라노 공의회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고 나서 플로브디프에서도 주교들이 거처하는 바실리카가 세워집니다. 여기 Sveta Marina 교회는 5세기경에 건축되어서,  6세기 말 슬라브족의 침공 때 파괴됩니다. 학자들에 따르면 이 교회는 원래 성 바울에게 바쳐졌고, 그 후 여러 번 파괴되었던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18세기 중엽에 이 교회는 다시 한번 화재로 완전히 소실되었고 오늘날의 교회는 19세기 중엽, 정확히 말하자면 1851년에 세워진 것입니다. 교회의 건축양식은 전형적인 르네상스 스타일의 바실리카로, 세 구역으로 나눠진  신도석은 각각 주두와 반원형 아치를 가진 기둥들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교회 입구의 신도들이 대기하는 넓은 홀의 기둥에는 성서 속의 다양한 장면들이 새겨져 있는데, 총 29개의 장면 중 24개가 구약의 내용들입니다. 교회 건물 옆에는 1870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17m 높이의 목재 종탑이 있는데, 이 곳에는 플로브디프 내에서 가장 많은 종들이 있다고 합니다. http://www.visitplovdiv.com/en/node/573 




아쉽게도 나는 이 교회에 대한 사전 지식이 부족한 관계로 앞에 언급된 교회의 특징들을 제대로 보지도, 감상하지도 못한 채 그냥 건성으로 지나쳤습니다. 아침 시간의 고요한 분위기 속에 적막에 휩싸인 정교회의 너무도 엄숙한 분위기에 압도되기도 하고, 태생적으로 숫기가 없어 망설이고 무릅쓸 줄 모르는 성격 탓에 감히 교회 안을 들여다볼 엄두도 못 내고(그 시간에 관람이 허용되었는지는 알 수가 없지만) 그냥 서성대다 사진만 몇 장 찍고 발걸음을 돌린 게 몹시 아쉽습니다.



스베타 정교회 위쪽의 필리포폴의 고대 극장(The Ancient theatre of Philipoppol)은 세계에서 가장 잘 보존된 고대 극장의 하나라고 평가받습니다. 이 극장은 플로브디프의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어 20세기 1980년대에 재건축되었고(열주 뒤편으로는 시멘트로 만들어진 인공벽이 버팀목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로마시대의 가장 중요한 발굴물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최근에 발견된 유적지의 기념비에 새겨진 글자들을 해독해 본 결과, 이 극장은 기원후 1세기 90년대에 건축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는 트라키아 왕조의 후계자인  Titus Flavius Cotis의 지배하에 있던 시기입니다.



극장의 야외 관람석은 무대 옆의 오케스트라가 위치하는 공간을 둘러싸고, 28열의 대리석 좌석이며 그 모양은 지름 26.64m의 말발굽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극장은 6세기 말까지 연극 공연뿐만 아니라 여러 원형경기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검투사들의 투기장, 사냥 게임 및 트라키아의 로마 지방 의회로도 사용되었고, 6,000명을 수용할 수 있었습니다. 아치형 입구 위의 두 번째 열의 좌석은 황제와 관리들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오늘날 이 극장은 플로브디프의 상징이며 오페라, 음악회, 연극 등의 공연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거행되는 중요한 이벤트들로는 국제 전통문화 축제, 오페라 축제 "Opera Open", 그리고 록 페스티벌인  "Sounds of Ages" 등이 있습니다.  http://www.visitplovdiv.com/en/node/573 


원형극장 안에 있던 고양이

여기서도 시간이 일러 입장이 안 되는 관계로 철창 담 밖에서 창살 사이로 카메라를 들이밀고 찍은 사진들입니다. 정말 원형은 잘 모르겠지만 거의 이천 년이 지났는데도 저 정도로 보존되고 있다는 게 신기하고, 저런 공간에서 오페라 관람을 할 수 있는 경험을 한다면 아주 인상적일 것 같습니다. 내가 알기로는 여름철 오페라 공연의 관람료가 10유로 정도 한다고 하니 충분히 볼만 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5월 14일입니다. 그리고 오전 8시가 조금 지난 시간입니다.




플로브디프는 불가리아 부흥기의 경제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구도심은 오스만 시대의 주택들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플로브디프는 원래 트리키아에 속해 있다가 후에 그리스에 복속되고 그 뒤에 로마의 중요 도시가 되었습니다. 중세에는  지정학적인 전략적 중요성 때문에 비잔틴과 불가리아 제국 간의 틈바귀에서 시련을 겪다가 14세기에는 오토만 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갔습니다. 1878년 4월에 러시아 군대에 의해 오토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하여 그때부터 불가리아의 영토에 편입되었고,  동루마니아 오토만 자치 지역의 수도가  되었습니다. 지금은 불가리아에서 소피아 다음으로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도시가 되었고, 방문객들에게 깜짝 놀랄 만큼의 다양한 건축양식들을 보여줍니다.  그런  주택들이 올드  타운에 여러 형태의 박물관  및 일반 주택의 형태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http://smarttrans.bg/plovdiv/



심야 버스에서 쪽잠을 자고 새벽에 내려 그때부터 헤매다 보니 조금 피곤하기도 하지만, 그것보다는 인터넷도 안되고 관광안내도도 없이, 여행 계획을 짤 때 알게 되었던 단편적인 지식에만 의존하여 돌아다니니까 과연 내가 제대로 보고 다니는지에 대한 불안감이 더 큽니다. 사실 22일간 방문해야 될 국가와 도시의 수가 많다 보니, 많은 시간을 여행 준비에 쏟아부었지만 그 대부분은 이동 경로와 호텔 및 교통편에 집중되어, 개별 도시의 세부적인 동선에 대해서는 소홀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나마도 현지에서 인터넷에 의존하기로 했던 계획마저 차질이 생기는 바람에  그냥 감 만으로 돌아다니다 보니 뭔가 미진하고, 지나고 보니 많은 것들을 놓친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들 어떻습니까. 이렇게 꿈속에서 조차도 상상 못했던 이국의 낯선 도시를 헤메 다니고 있는데, 다양한 문화적 공간과 깊은 역사적 아취를 자아내는 유서 깊은 도시에서  이렇게 황홀한 경험을 하고 있는데, 뭘 좀 못 보고 지나친 들 뭐가 그렇게 아쉬울까. 그동안 그렇게 수없이 지나쳤던 유럽의 그 어느 교회, 유적지 및 왕궁의 터들을 그렇게 구분해서 기억하고 있었던가. 

낯선 곳에서 걷고 있다는 것만 해도 행복하고, 스치듯 지나친 그 공간과 시간에 대한 기억  자체만으로도 깊이 새겨질 앞으로의 소중한 자산인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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