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칸, 22일 #8
플로브디프에서 소피아까지는 거리가 멀지 않아서 Fast라는 이름과 달리,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느림보 기차를 탔는데도 세 시간이 채 안 걸린 것 같습니다. 원래 도시의 이름이 세르디카였던 탓인지 기차역 내 군데군데 세르디카란 표기가 눈에 많이 띕니다. 일단 배를 좀 채워야겠고, 또 내일 갈 스코페행 버스표도 예약할 겸 기차역과 붙어 있는 중앙 버스역으로 갑니다. 버스터미널 식당은 깨끗하지만 먹을 수 있는 다양한 옵션은 없습니다. 방금 구운 듯한 피자가 맛있어 보여 야채샐러드 한 접시랑 주문을 했는데 역시 먹는 것은 쌉니다. 저게 다 합쳐서 4,000원 조금 넘으니까 정말 물가는 저렴합니다. 가성비 높은 아점을 맛있게 먹고 스코페행 버스티켓을 예약하기 위해 여러 여행사들을 기웃거립니다.
스코페행 버스표를 예매하러 들어갔던 어느 여행사의 직원이 너무 친절합니다. 불가리아에 와서 하루 남짓 있었지만 이렇게 친절한 나이 많은 여자 직원은 처음입니다. 어제 플로브디프 기차역에서 무뚝뚝한 할머니 역무원들에게 너무 혼이 난 탓인지, 다른 여행기에서 읽었던 불가리아 사람들이 다 친절하더라는 경험담들은 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남의 일이라고 치부하고 있던 터라 그런 친절이 더 고맙게 느껴졌는지도 모릅니다. 유로화도 기꺼이 받고, 출발 30분 전까지는 터미널에 와야 된다는 주의와 함께 내일 버스 타는 시간을 수차례 주지 시켜 주고, 버스를 타는 플랫폼이 보이는 곳까지 나를 데려가서 가서 확인시켜 주고는 굿바이로 진하게 악수까지 하고 헤어졌습니다. 인터넷으로 예매하는 절차가 번거로워 현장에서 직접 구매하기로 한 티켓인데, 조금의 수수료를 더 물고 그보다 훨씬 큰 서비스와 심리적 안정감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20유로짜리 지폐를 주고 2유로를 거슬러 받았습니다.
거기가 어디든 내게 익숙하지 않은 곳에 내려서 낯선 환경에 접하게 되면, 갑자기 막막해지는 경험은 오늘도 어김없습니다. 기차역을 나오자 마자 심호흡을 하고, 주위를 둘러보고,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 그런 다음에 발걸음을 뗍니다. 5월 중순인데도 벌써 여름이 느껴집니다. 그런데 저 멀리 뒤쪽의 해발 2286m의 비토샤산에는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쌓여 있습니다. 아직은 붐비지 않는 횡단보도 건너편에 수심에 가득 찬 표정(잘못 보면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의 검은색 투피스 정장과 검은색 핸드백, 그리고 검은색 구두를 신고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할머니를 보니 더위가 조금 가십니다.
- 소피아는 불가리아 서부 소피아 분지의 해발고도 550m 지점에 위치한다. 도나우강으로 흘러드는 이스쿠르 강의 두 지류가 시내를 흐르며, 배후에 산을 등지고 있어 경치가 아름답고, 푸른 숲이 우거진 공원이 많아 ‘녹색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유럽에서도 가장 오래된 도시의 하나로, 고대에는 트라키아의 식민지였다.
버스 터미널에서 시내 쪽으로 조금 가다 보면 일종의 관문 역할을 하는 라이언 교(Lion Bridge)가 나옵니다. 소피아에서는 가장 중요하고 또 번잡한 교차로로, 도시의 랜드마크 중 하나이며, 세르디카(Serdica) 지역의 상징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다리에는 양쪽에 두 마리씩 네 마리의 사자가 있는데, 이들은 터키인들에 의해 교수형에 처해진 불가리아인들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불가리아 사람들의 터키인에 대한 뿌리 깊은 적대감과 증오심을 웅변해주고 있습니다. 마치 시내로 들어가고 나오는 사람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듯합니다. 고대 그리스 테베의 스핑크스처럼 말입니다.
유럽에 오면 한국에서는 많이 접하지 못하는 색상들로 거리의 다양한 건물과 탈 것들이 채색되어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노란색입니다. 강렬해서 그런지 여기 오면 왠지 노란 보다는 노랑이란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습니다. 언젠가 리스본에서 진한 노란색의 전차를 타 본 경험 때문에 유럽 하면 먼저 연상되는 색으로 내 마음속에 자리매김한 적도 있는 색, 노란색의 전차와 건물들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무식한 문외한의 눈에는 호텔 건물이 마치 오래된 궁궐 건물처럼 보입니다. 우리나라 같았으면 안전진단 시비가 나오고, 심약한 사람들은 불안해서 도저히 못 살 것 같은 건물들도 버젓이 영업시설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게 낡아서 추하다기보다는 비빔밥 위에 얹히는 달걀 고명처럼 주위와 아주 잘 어울린다는 느낌입니다.
- 소피아의 원래 이름은 세르디카였으며, 로마시대부터 트라키아 지방 도시 중 필리포폴리스(현재 플로브디프)와 더불어 꽤 중요한 도시 중 하나였다. 6세기경 비잔틴제국의 유스티아누스 황제 때 슬라브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성채를 구축했다. 이후 비잔티움 제국의 지방 도시 중 하나였으나, 1382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점령된 후 500여 년 가까이 그 치하에 있었다. 1878년 러시아-튀르크 전쟁 당시 러시아 제국이 이곳을 점령하면서 비로소 소피아는 오스만 제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듬해인 1879년 4월 3일 독립된 불가리아의 수도로 지정되면서 소피아는 불가리아 근현대사의 중심지로 자리 잡게 된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을 앞둔 1945년 소련군이 소피아를 점령했으며, 이후 불가리아는 공산화된다. 1989년 민주화 시위가 이곳을 중심으로 벌어졌으며 이후 현재까지 소피아는 민주화된 불가리아의 수도이자 중심도시로 남아있다.(나무위키)
길을 걷다가, 보는 순간 나는 이 멋진 건물에 압도되었습니다. 유서 깊은 건물로 현재 국가로부터 보호받고 있는 문화재이겠거니, 아니면 중요한 관공서 건물이겠거니 했습니다. 주위의 모스크를 둘러보면서도 도로 반대편에 있는 저게 무슨 건물일까 궁금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시장이었습니다. 소피아 중심가를 관통하는 마리아 루이자 대로 남쪽에 자리한, 역사가 100년 된 소피아 중앙 실내 시장(Central Sofia Market Hall)입니다.
- 1911년 건설된 이 건물의 건축양식은 네오 르네상스 스타일로 네오 비잔틴과 네오 바로크적인 요소들이 가미되어 있는데, 주 출입구의 파사드 위에 있는 소피아의 문장(the coat of arms)과 3개의 시계판을 가진 시계탑이 유명하다. 여기도 로마시대의 목욕탕 일부였다. http://www.sofia-guide.com
소피아 중앙 실내 시장의 건너편에는 바냐바시라는 아름다운 모스크가 있습니다.
- 바냐바시는 1576년 오스만튀르크 제국의 최고 건축가인 미마르 시난(Mimar Sinan)이 설계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사원이다. “바냐(Banya)”는 목욕을 의미하는 불가리아어로, 바냐바시(Banya Bash i; many bathrooms)는 공중목욕탕을 의미한다. 인근의 Tsentralnata Banya (Central Baths)로부터 그 이름이 유래된 이 사원은 거대한 돔과 하늘까지 치솟은 첨탑으로 유명하다. 소피아에는 과거 70개에 달하는 이슬람 사원이 있었으나, 현재는 바냐 바시 모스크만이 이슬람 사원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https://www.visitsofia.bg
바냐바시 모스크 뒤편에는 반스키 광장(Banski Square)이 있습니다. 광장의 중앙에는 분수가 있고, 작은 정원이 조성되어 시민들이 벤치에 앉아 더위를 피하거나,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나도 마침 빈 벤치가 있어서 앉아서 쉬고 있는데 옆의 벤치에서 누군가 날 불러서 쳐다보니, 배낭객들이 경계를 해야 할 그런 류의 중년 남자입니다. 어느 나라 출신이냐? 재팬? 차이나? 별로 기분이 좋지 않지만 사우스 코리아라고 응답을 해주니, 자기는 미국인이랍니다.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는데. 그쪽은 서투른 영어를 하고, 나는 그런 영어를 잘 못 알아듣고. 결론은 담개 한 개비 달라는 겁니다. 난 담배 안 피운다고 웃으며 말하곤 서둘러 자리를 떴습니다.
분수 뒤로는 컬러풀한 자기로 모자이크 장식이 된 중앙 광천수 목욕탕(Central Mineral Bath)이 있습니다. 과거에는 공중목욕탕으로 대중에게 개방되었다가, 지금은 시립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소피아 중심가의 랜드마크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현지 주민들은 공원 내의 온천에서 솟아나는 따뜻한 광천수를 받으려고 수도꼭지 앞에 줄을 서고 있습니다.
소피아 시내를 걷다 보면 어느 곳에서든 보이는 거대한 동상이 있습니다. 차와 사람들로 붐비는 교차로의 중앙에 우뚝 선 기둥 위에 서 있는 24 m 높이의 청동으로 만든 성 소피아 상(Statue of Saint Sofia)으로, 황금으로 된 그녀의 얼굴은 대통령궁과 정부청사가 있는 Batemberg square을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이 동상은 소피아 성인이 소피아 시의 수호자이기 때문에 소피아의 상징입니다.
소피아(σοφία). 그리스어로 지혜를 뜻하며 소피, 조피, 소니아 등의 이름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지혜'라는 이름이 많은 것처럼 서양에서 여성 이름으로도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그래서 소피아 상의 왼팔 위에는 지혜의 상징인 올빼미가 앉아 있고, 오른손에는 평화, 성공, 그리고 명예와 명성을 상징하는 월계수 화환을 들고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느님을 아는 참된 지혜, 성스러운 지혜라는 의미가 확장되어, 성자 예수 그리스도 자체를 뜻하게 되어서 성당이나 도시의 이름에도, 주 예수께 봉헌한다는 뜻으로 많이 쓰였습니다. 대표적인 건물은 터키 이스탄불의 하기아 소피아를 들 수 있습니다.
본래 세르디카였던 도시의 이름이 소피아로 개명된 계기는 동로마 제국의 황녀인 소피아와 관련이 있습니다. 동로마 제국의 황제인 유스티니아누스 1세에게는 병약한 딸이 있었는데, 그녀가 당대 온천도시로 유명했던 세르디카에서 요양한 후 치유된 것을 계기로 소피아 황녀는 이 도시에 교회를 봉헌했고, 이 도시는 그녀의 이름을 받게 되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