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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근 Jul 04. 2024

남은인생을 송두리째 걸고 벌이는 청춘들의 성장게임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로써의 탈주라니 -  영화 <탈주> 리뷰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탈주>는 육로를 이용해 남으로 귀순하려는 의지 밖에 남지 않은 북한 중사, 곧 10년의 의무 복무를 마치지만 전역을 해도 북한 권력자들의 손아귀에서 놀아날 수 밖에 없는 그의 탈출기입니다. 

이종필 감독은 북한 병사의 탈주를 다루지만 탈주 과정의 긴박한 스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청춘 서사와 브로맨스까지 깔아 놓습니다. 

다소 깊게 파헤쳐 보자면 '서브텍스트'가 있다거나 '북한 고위직의 정체성 분열'이라는 전문가 평도 등장할 정도로 심리드라마적인 측면도 가지고 있습니다. 

네이버영화 스틸

북한 중사 이제훈을 군사분계선까지 뒤쫓는 북한 고위직 후계자이자 보위부 간부 구교환도 실은 정체성 혼동을 겪고 있습니다. 자신 역시 예술가로서의 삶을 현실을 위해 포기했는데 한낱 권력자들의 '애완동물' 주제에 자기 정체성대로 살겠다니, 이제훈의 앞길을 그토록 끈질기게 막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성장을 위한 통과의례로써의 '탈주'라니 너무 가혹하지만 <탈주>는 분명 남은 인생을 송두리째 걸고 벌이는 청춘들의 성장 '게임'입니다. 그래서 주인공 이제훈은 혼자도 하기 힘든 탈주를 다친 동료를 끝까지 데려가려고 어려운 길로 빙빙 돌아가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추격자 구교환 역시 이제훈을 항상 궁지로 몰지만 숨통까지 끊지는 않습니다. 결말도 누구는 멈추고, 누구는 여러 번의 실패가 예정된 새로운 길을 가고, 누구는 진로를 다시 고민하는 등 명확합니다.  

네이버영화 스틸

많은 의미를 담으려 노력한 <탈주>에는 이제는 중견으로 성장하려는 영화배우 겸 감독 이종필의 도전과 야심이 느껴집니다. 

영화 <아저씨>에서 다소 과장되고 우스꽝스런 형사 연기로 관객들의 뇌리에 남았던 배우는 <전국노래자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등을 거치며 쓸만한 영화감독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2020년작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은 최악의 코로나 상황에서도 157만명이라는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 모았고 재미와 의미를 다 잡은 영화로 관객과 평론가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습니다. 

일관성 있게도 "어제의 너 보다 오늘 더 성장했는데?"라는 대사는 4년 뒤 <탈주>에도 딱 들어맞습니다. 감독의 다음 성장도 기대해봅니다. 


PS. 

영화를 탈주자 이제훈과 추격자 구교환의 완벽한 2인 대결 구조로 만들다 보니 공간적 절차적 비약이 더러 발생합니다. 이제훈의 탈주를 막을 수 있는 중요한 위치와 타이밍마다 항상 구교환이 나타나 지시를 하고 독려를 하고 총을 쏘고 몸으로 저지를 합니다.  

마지막에 구교환에게 부가되는 듯한 브로맨스적 면죄부는 영화적 질서에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도 듭니다. 자기 부하의 다리를 날라가게 하고, 이제훈이 동생처럼 아끼던 병사를 쏴 죽이고, 이제훈마저 총알이 여기저기 박힌 채 죽음 직전까지 몰아붙였으면서 엔딩씬에서는 뭔가 훈훈한 여운을 주려는 게 말입니다. 

그리고 영화 <화란>으로 청룡영화상 신인남우상을 수상했던 홍사빈도 인상깊습니다. 이제훈에게 짐이 되는 아둔하면서도 섬세한 부하 병사를 이제훈에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력으로 소화합니다. 

말할 것도 없이 구교환도 '인간 햄스터'다운 악역 연기를 선보입니다. 

네이버영화 스틸 / 하급 병사 '동혁'역의 홍사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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