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방부는 올해 초 업무보고에서 △우주, 사이버, 전자기 등 新영역 작전수행능력 강화 △AI 기반 유/무인 복합체계 구축 가속화 △北 무인기 대응능력 강화 등을 주요 과제로 거론했습니다. 8대 게임체인저 분야를 중심으로 민간 첨단 기술의 과감한 도입을 추진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것입니다.
2027년까지 R&D 예산의 비중도 국방비의 10% 이상으로 확대한다는 투자계획도 세웠습니다. 약 7조에 달하는 적지 않은 금액입니다. 방산업계에는 정말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시 업계의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1.
대한민국 방위사업법에는 방위산업을 '정부가 지정한 방산물자를 포함한 무기체계 및 주요 비 무기체계를 생산하거나 연구개발하는 사업'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엄격한 절차를 거쳐 80여곳을 상회하는 방위산업체를 지정하고 있습니다. 방위산업체는 특수한 위치를 인정받는 동시에 적절한 보안요건을 구비하고, 경영권 변화 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하는 것은 물론 방산용 원자재 비축, 공급을 보장해야 하는 등 다양한 의무를 지게 됩니다.
이와 함께 약 기계/전자/화학/항공/SW/우주 등 분야를 대상으로 6천~1만개 가량의 방산 관련업체가 존재한다고 합니다. 적지 않은 수치입니다.
그런데 2021년 기준으로 이들 방위산업체가 방산 부문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이 총 15.9조, 영업이익은 7,229억입니다. 근 몇년간 크게 오른 수치입니다만, 같은 해 삼성전자의 연결기준 매출액은 279.6조, 영업이익 51.6조입니다. 현대차도 매출액 117.6조, 영업이익 6.7조네요.
80여개사를 모두 합쳐도 현대자동차 연결 기준 영업이익의 9분의 1에 미치지 못합니다. 생각보다 작죠? 어쩔 수 없습니다. 대부분의 방위산업체가 국방부 예산 중 방위력개선비의 지대한 영향을 받으니까요.
그래서 수출 및 민수사업의 진출, 확대는 全 방산업체의 고민이자 화두입니다.
2.
하지만 국방산업은 가치는 위 매출/영업이익 수치보다 훨씬 높고, 또한 중요합니다. 국방/안보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우선이지만, 앞으로 펼쳐질 무한 혁신의 시대에도 역할을 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바로 국방 분야가 다양한 기술의 '보고'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길고 긴 무기체계 개발주기 덕분입니다. 최근에는 급격히 짧아지고 있는 추세지만, 얼마 전만 해도 무기체계 하나 개발하는데 십 년 가까이 걸리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해당 무기/장비에 필요한 기반 기술들을 하나하나 개발해야 했으니까요. 그게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시기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성숙된 기술들이 대한민국 기술혁신에 적지 않게 기여할 '촉매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긴 개발 프로세스 덕분에, 방위산업에는 다양한 원천 기술이 있습니다.
시장성이 없어도 '국가 안보'를 위해 필요하면 개발해야 하니까요.
국방기술진흥연구소에서 발간하는 국방기술기획서만 살펴봐도 개발이 완료됐거나 예정된 기술목록이 책 한 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여기에 반짝이는 '원석'들이 숨어 있습니다.
레이시온사의 레이더 기술이 전자레인지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은 워낙 잘 알려진 이야기죠. 국내에서도 LIG넥스원이 유도무기 등에 사용되는 항법기술을 기반으로 대한민국 최초의 차량용 내비게이션을 개발한 적이 있습니다. (다만 당시에는 지나치게 혁신적인 기술이었고, 하필 외환위기 직전인 1994년이었다는 게 아쉽습니다.) 최근에는 우주항공, UAM을 비롯한 뉴스페이스 시대가 본격화되며 항법, 광학, 안테나, 데이터링크, SAR, 레이더 등 국방산업에서 성숙되어 온 기술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국방과학연구소 소속의 민군협력진흥원에서도 민 · 군이 기 보유한 기술을 상호이전하여, 선순환시키는 위한 민/군 기술이전 사업 등을 추진 중이지요.
레이시온의 전자레인지
3.
국방-민수 기술은 개발주체가 다르면서도 상호 보완적인 관계입니다. 각 분야의 기반기술이 고도화되며, 서로의 기술을 필요하는 경우는 더욱 증가할 것입니다. 특히 소프트웨어의 발전에 힘입어 이러한 '통합'과 '융합'은 대세가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에 '방위산업'이 주인공이 되려면 절실한 각오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4.
다행스럽게도 대한민국에는 열정과 전문성을 갖춘 정부와 기업들 그리고 인프라가 갖추어져 있는 만큼 좋은 결실이 기대됩니다. 이미 정부에서는 산학연 중심의 R&D 프로세스를 중점적으로 육성 중입니다.
5.
마지막으로 기술 스타트업의 육성입니다. 국방산업의 호흡은 깁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듯 국방이 필요로 하면 시장성과 별도로 개발을 해야 하죠. 그만큼, 기술력이 있는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안정적인 영역으로 제격입니다. 이미 너무 잘하고 계시지만, 국방 생태계 조성에 정부 및 체계업체들이 더 높은 관심을 가져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 요약하자면,
1. 방위산업의 규모는 생각보다 크지 않다. 많은 방산업체들이 수출, 민수산업 확대 등 수익성 개선을 고민 중이다.
2. 하지만 긴 호흡의 무기체계 개발과정을 거치며 다양한 기술을 축적해 온 저력이 있다. 특히 첨단기술 중심의 뉴스페이스 시대가 본격화되며 국방 분야에서 성숙되어 온 기술들이 주목받고 있다.
3. 앞으로 소프트웨어를 비롯한 기반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국방-민수 분야의 '통합'과 융합'은 대세가 될 것이다. 방산업계도 절실한 각오로 '오픈 이노베이션'을 준비해야 한다.
4. 다행스럽게도 국내에는 열정과 정부가 갖춰진 정부와 기업, 그리고 인프라가 있어 좋은 결실이 기대된다.
5. 마지막으로 기술 스타트업 육성을 위한 인큐베이터로서 가치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조금 길었지만, 어쩐지 국방산업은 원소스-멀티 유즈로 진화하는 느낌입니다.
정말 많은 분들이 국방R&D 활성화를 위해 헌신 중입니다. 아무쪼록 군/관/산/학/연을 비롯해 더 많은 분들이 방위산업의 발전에 따스한 관심을 가져 주시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