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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Jul 17. 2023

책에 기대어 꿈꾸는 여행

여행의 색깔 

난 일상이 조금은 무기력해질 때, 여행을 떠나고 싶다. 내가 TV에서 여행 프로그램을 즐겨보게 되는 이유이다. 여행에 대한 갈망은 바로 내 현재의 무기력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여행이 주는 효과에 대하여 낭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행이 나의 상태를 변화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익히 알고 있다. 뼈 속 깊이 알면서도 그저 환영처럼 여행을 상상한다. 마치 마약 중독과 같다. 약 중독자들이 그 약이 줄 효과와 결과를 모를 리 없겠지만, 현실 도피 수단으로 약을 선택하고, 그 짧은 시간이 지나면 쓸쓸함이 더 깊다.


여행 프로만이 아니라 책 선택도 그렇다. 해외 지명이름이 나온 작품을 읽으면서 갈증을 풀기를 희망한다. 이후 가게 될지 모르는 여행에 대한 막연한 준비가 되길 바란다. 내가 읽는 작품, 특히 문학작품이 직접적으로 작품의 배경이 되는 장소에 대한 실용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주지는 않지만, 그 곳의 작가나 관련된 문학작품을 읽는 것은 또 하나의 여행이다.


최근에 <포르투갈의 높은 산>과 <리스본행 야간열차>이 바로 그 목적에 부합하는 독서였다. 두 책은 포르투갈과 리스본에 대한 어떠한 여행정보도 제공하지 않는다. 포르투갈과 리스본의 풍광, 음식,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책과는 거리가 멀다. 두 책은 그저 유럽 어느 나라, 지역에서든 볼 수 있는 인간과 고민을 다룬다. 종교와 개인의 실존적 고민이 두 작품의 주제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 책들을 읽으면서 책의 주제와 달리, 유럽적 분위기를 잠시나마 느낄 수 있었다. 아시아적 문화, 분위기와는 다르다.


얀 마텔이 작품의 배경으로 포르투갈을 왜 선택했는지 모를 정도로, 작품은 특별히 포르투갈이 가진 독특한 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물론 이 작품이 종교적 이미지와 관련된 것이므로, 가톨릭이란 종교적 색채가 강하고, 선교를 열정적으로 했던 구제국주의 국가가 필요했을 것이란 정도이다. 파스칼 메르시아의 작품도 마찬가지이다. 그 배경이 그지 포르투갈이 아니어도 될 정도이다. 라틴어와 고전문학을 가르치는 그레고리라는 인물이 자기 찾기 여정을 그린 책이다. 포르투갈의 천재의사의 명상 메모를 통하여 자기를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그 여정이 리스본인 것은 우연이다.


포르투갈은 두 작가의 출생지도 자란 곳도 아니다. 유럽적 정서가 있는 작가들에게 포르투갈은 어떤 상징과 은유를 갖고 있는 것일까? 스페인처럼 강렬한 문화적 색깔도 없는 곳, 옛 영광도 이제는 사그라진 곳, 유럽에서도 선진국이 아닌 곳이 그들의 문학 배경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사는 나에게 포르투갈은 어쩌면 그래서 매력이 있다. 유럽의 제도 안에 있지만 주변부인 나라, 격정적이지도 열정적이지도 않지만 미스터리함과 소박함이 함께 하는 나라로 다가온다.


두 책이 보여주는 포루투칼은 즐거움을 만끽해야 하는 여행과 맞닿아있지 않다. 휴식, 휴양이란 여행과도 거리가 먼 책들이었다. 어쩌면 이 작품들이 내 여행의 색깔을 알려주는 듯하다. 열정적인 떨림이 일도 없는 여행이지만, 떠나게 되는 여행. 내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사는 것인지 막연해서 더 막연함을 찾아 떠나는 여행.


독서는 여행의 갈증을 해소해주면서, 동시에 여행을 더 꿈꾸게 한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 그 위에 있는 십자가를 찾아 떠나는 여행. 현재의 상실을 이기기 위해서 새로운 위로를 찾아 떠나는 여행의 여정에 있는지 모른다. 우연히 만난 다른 사람의 일기를 통해서 나를 찾아가고 싶은지 모른다.


독서는 현재 여행을 하는 것이며, 미래의 여행을 준비하는 것이며, 여행 후 나를 정리하는 것이 될 듯하다. 작품을 따라서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이 더 깊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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