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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Mar 18. 2019

스카이 캐슐의 미래

    

워킹 여성이 없는 드라마 

드라마 ‘스카이 캐슐’이 종영되었음에도 드라마에 대한 후평은 계속되고 있다. 시청자들 대다수가 자신과 거리가 먼 상황, 상위 1%의 생활에 몰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부는 사교육의 문제점 나아가 현 교육제도의 문제를 비판하는 것에 흥미를 가질 수 있다. 


스카이 캐슐은 주요 소재는 교육이지만 그들의 교육관을 뒷받침하는 문화를 보여준다. 그들의 옷, 거실을 장식하는 도자기 등 사생활의 여러 면에서 규범성과 통일성을 추구한다. 이런 배경을 읽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이수임의 글쓰기를 좌절시키는 것도 바로 이런 집단성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상류층 삶을 여성인물들의 치열함으로 드러낸다는 또한 흥미롭다. 기존 드라마들이 공적 공간, 남성 중심의 상류층을 다루었다면 스카이 캐슐은 달랐다. 이 드라마는  남성과 여성의 성 역할이 완전히 구분되는 구도에서 전개된다. 스카이 캐슐에서는 직장 여성이 나오지 않는다. 직업 공간으로서 병원에서도 여성 의사는 등장하지 않는다. 나는 이런 인물 배치가 신기하고 놀라웠다.      


여성의 역할은 남성 직장이 만들어 준 토대 위에서 자녀를 스카이 캐슐에 맞게 키우는 것이다. 이러한 성역할 구분이란 잣대에 맞지 않아서 이수임의 글쓰기도 차단된 것이 아닐까. 결국 이 드라마에서 보여주는 상류사회는 여성의 역할을 전근대적 인물의 전형을 따르게 할 뿐만 아니라 여성을 모든 골치 아픈 문제의 중심부에 놓는다.     

신분 사회를 사수하기 위한 고투 

스카이 캐슐이란 그들만의 공동체를 유지하는 방법은 세 가지이다. 하나는 명문 대학, 일품 직업을 갖는 것이다. 다음은 공동체에 맞는 인물로의 변신이다. 마지막으로 그 공동체를 계속 유지할 다음 세대의 자발성이다.      


첫 번째 조건, 상류층의 신분제에 대한 욕망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사교육이 필요하다. 공동체의 일원들은 일류 대학을 통하여 현재에 이르렀으며, 다시 그 수단을 통해 자신들의 지위, 신분을 세습하려 한다. 전형적 인물이 ‘강준상’이다. 그가 자신의 어머니에 의해서 그렇게 육성되었듯이 자녀들에게도 그 가치관은 이어진다.      


두 번째는 변신이다. ‘한서진’이 그 예이다. 신분세탁을 통해서 공동체의 주역으로 변모한다. 그런데 한서진은 자신의 출신에 대해서 거짓을 말했을 뿐만 아니라 그 세상과 완전히 결별함으로써 캐슐이란 성에 입주하는 신데렐라가 된다. 드라마에는 한서진의 친가 쪽 가족이 나오지 않는다. 오직 과거 회상을 통해서, 그것도 타인이 불어온 회상을 통해서 가족이 등장할 뿐이다. 한서진은 가족이 수치스러워서 완전히 지워버린다. 이렇게 자신의 수치, 오점과 완전히 결별할 때 스카이 캐슐에서 생존이 가능하다. 한서진은 더 나아가 스카이 캐슐의 자격에 못 미치는 인물을 적극적으로 차단하는 데 앞장선다.      


이 드라마는 스카이 캐슐적 인간들, 사다리 밑을 내려 보고 사다리 상층을 유지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인물들이 대다수를 이룬다. 이러한 인물에는 어른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미성년자들도 등장한다. ‘강예서’다. 강예서는 스카이 캐슐에 최적화된 인물이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소름끼치는 인물을 찾으라면 나는 강예서를 지목하겠다. 김주영도 한서진도 아닌 강예서다. 모든 것을 가졌음에도, 화수분처럼 성취욕이 샘솟는 아이가 성장했을 때 이 사회에서 어떤 성인이 될지 뻔하고, 강고한 성이 더 강해지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이다.      

강예서가 받아온 상장, 상패를 한서진이 강예서에게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 한서진은 “이것들은 너와 내가 만든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상장 전시는 과거의 성취를 통해서 딸에게 힘을 주려 할 뿐만 아니라, 딸의 성공의 일정 지분은 자신의 것이라는 점을 의미하기도 한다. 또한 자신에게도 그 훈장은 욕망이란 전차를 질주하게 하는 자극이 된다. 바로 이렇게 신분제와 욕망의 세습이 이루어진다.     


사실 이러한 신분제는 새로울 것이 없다. 전근대적 사회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신분 이동이 제한적이나 가능했던 시기가 있었으나, IMF 사태 이후 지금 우리는 또 다시 성벽이 두터운 신분제 사회를 이루며 살고 있다.     


스카이 캐슐의 미래 

여성을 중심으로 상류 사회의 내부를 비판적으로 다룬 드라마는 전에도 있었다. 대표적인 드라마가 정성주 작가의 ‘아내의 자격’이다. 그런데 전 드라마에 비해 스카이 캐슐은 스릴러적 요소와 조금 더 자극적인 인물들의 배치로 대중의 호응을 많이 받은 듯하다. 스릴러의 중심축에는 김주영과 혜나가 있다. 두 인물은 한서진 가족과 대척관계에 있으면서, 이 드라마에서 적나라하게 스카이 캐슐의 문제를 드러나게 만드는 인물이다.      


약자를 중심으로 응원을 보내는 시청자는 아마도 혜나를 응원했을 것이다. 혜나는 한서진 가족을 실제적으로 위협할 수 있는 서울대 의대 입학 가능성이 높은 인물이었다. 그런데 이런 가능성을 실제화하기 위해서는 공정성이 필요했다. 공정성의 문제를 제기한 혜나는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공정성은 현행 제도상 불법인가 아닌가로 축소되어, 공정성을 깨뜨린 자로 김주영이 지목된다.       


드라마에서 김주영은 문제를 일으키는 장본인이 아니다. 김주영은 다만 근본 문제를 환하게 바라보게 하는 빔프로젝터와 같은 역할을 했다. 스카이 캐슐의 이질적인 인물이었던 김주영과 혜나는 제거된다. 그리고 스카이 캐슐은 무너지지 않는다. 한서진 가족이 떠나지만 그들은 돌아올 것이다. 강예서는 부모들의 지원을 받아 원하는 대학과 직업을 가지고 다시 스카이 캐슐로 돌아올 것이다. 아니면 다른 스카이 캐슐로 진입할 것이다. 현실적 조건에서 이런 경로를 벗어나는 것이 이상한 일일 것이다.      


이 드라마의 치명적인 문제이며 매력은 감정이입할 수 있는 인물, 나아가 상황에 균열을 낼 수 있는 인물이 없다는 점이다. 응원하고 싶은 인물이 없다. 이수임은 교과서적 인물이어서 감정이입하기 힘들다. 바로 이런 인물의 부재가 시청자 대다수에게는 스카이 캐슐이 난공불락의 성으로 유지될 것이란 확신을 준다. 나의 리뷰는 마지막 회를 반영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마지막 회의 인물이 앞에 등장했던 인물들과 동일 인물로 보길 힘들 정도로 간극이 컸기 때문이다. 어떤 인물이 진짜인가. 가면놀이를 하고 있는가. 아니면 마지막 회는 앞의 이야기가 전부 상상일 뿐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이 드라마는 사회의 어두운 이슈를 드러내지만 그 대안은 없다. 드라마가 진행되는 동안 언론이 주목한 지역은 대치동 등 사교육의 메카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안타깝게 현재 입시제도 아니 사교육 관련 이슈에 대해서 토론되지 않았다. 이는 무엇을 반증하는가. 증상은 있으나 그 진단에는 의견이 난무하고, 어딜 손대야 할지 몰라 매스를 들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스카이 캐슐은 증상을 한번 더 자극적으로 보여준 셈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의 전반적 문제가 이와 같지 않을까. 철옹성으로서 스카이 캐슐은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뿐더러, 그 미래는 더 강고해질 것이다. 이 성을 무너뜨리는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성 밖의 우리는 어떤 눈으로 캐슐을 보는가. 우리도 작은 캐슐을 만들고 있지는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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