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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Jun 15. 2018

동물과의 관계에서 모든 사람들은 나치이다.

리뷰, 찰스 패터슨의 <동물홀로코스트>

 

불편한 채식주의자 


나는 한동안 부분 채식을 했다. 생선, 달걀, 우유를 먹는 페스코 베지터리언이었다. 처음에는 네다리 가진 동물을 섭취하지 않다가 점점 조류로 넓혔다. 식탐이 많고, 먹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유달리 강했던 내가 육식을 제한하는 식습관을 가지게 된 것은 나름 노력의 결과였다.     


식습관이란 것이 남이 아닌 자신 입으로 들어가는 음식에 대한 것이기 때문에 타인과 관계에 영향이 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고기를 먹지 않게 되면서 사회생활에 불편한 점이 많다. 사람들은 대부분 채식주의자를 예민하다, 유난스럽다, 자연스럽지 않다고 본다. 그런 사람을 위해 나는 건강상 이유로 육식하지 않는다고 설명해야 했고, 그들은 그런 설명 후에야 불편한 눈길을 걷었고, 어색했던 분위기가 풀렸다. 오죽하면 채식주의자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커밍아웃’에 빗대어 '채밍아웃'이라고 하겠는가.     


그러다가 나는 다시 육식을 하게 되었다. 5-6년 지켜온 내 식습관이 무너진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라 건강상의 이유였다.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체력을 기르기 위해서 가리지 말고 많이 먹으라는 의사의 당부가 있어서였다. 빠르고 쉽게 내 식습관이 다시 돌아왔다. 아마도 채식하는 것이 힘들었었나보다.     


육식을 다시 하게 되면서 나는 사람들과 어울려 외식을 자주 하게 되었다. 외식에는 주로 고기가 있다. 그러면서 육식에 대한 이야기도 자유롭게 하게 되었다. 누군가 개고기를 먹은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개고기에 대해서 이런저런 말이 이어졌다. 개고기를 먹는 것이 꺼림칙하기는 하나 “소, 돼지는 되고 개는 안 되는 이유가 뭐야?” “식용견과 애완견이 분류해서 키우면 되잖아” 등의 의견이 있었다.     


가끔은 이런 말을 듣는다. “동물만 생명이 있냐? 식물도 생명체다. 채식은 윤리적인가?”, “육식도 인간 진화의 결과이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자”, “자연스러운 게 좋은 거야”라면서 채식주의자를 무시하고 폄하한다. 나는 ‘자연스럽다’라는 말이 은폐하는 폭력성, 양육강식의 논리를 받아들이는 자리가 불편했다.     


인종차별주의의 기원은 종차별주의 


다른 종의 생명을 취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을 종차별주의(Speciesism)라고 피터 싱거(Peter Singer)는 불렀다. '인간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의식이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분 짓고 다른 생명체를 노예화하고 억압하고 살생하는 것을 가능하게 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종차별주의가 홀로코스트로 발전했다고 주장하는 책이 ‘동물홀로코스트’이다. 책은 사람과 동물에 대한 제도화된 폭력이 어떻게 연관되는가를 밝힌다. 동물에 대한 우월의식이 인간 약자를 동물처럼 비하하는 관행으로 발전하고, 결국에는 약자에 대한 착취와 학살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로 탈바꿈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동물 차별과 인간 차별은 공통의 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 찰스 패터슨은 여러 연구 자료를 참조하여, 미국의 도축시스템이 홀로코스트의 정신적·실제적 지주라는 증거를 제시한다. 홀로코스트에 영향을 준 것은 분업화, 대형화된 도축장과 그와 함께 발전한 미국의 육종학이었다. “아우슈비츠는 사람들이 도살장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곳에서 시작된다. 거기서 사람들은 동물일 뿐이다.”(아도르노)    


동물의 유전적 형질을 이용해 개량하는 육종학은 인종개량적인 우생학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우생학 운동의 주요 목적은 단종이었다. 생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동물을 거세하듯이 사람에게 행해졌다. 이렇게 미국의 제도는 히틀러와 나치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히틀러, 나치의 홀로코스트는 인류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가. 책은 동물을 포함한 생명에 대한 존중과 그에 따른 실천으로서 채식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나치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작가 에드가 쿠퍼-코페르비츠는 자신이 채식주의자가 된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인간이 동물을 학대하고 살생하는 한, 같은 인간을 학대하고 살인할 것이고, 전쟁을 치를 것이라고 나는 믿어. 살생이란 연습이 필요하고 작은 차원에서 학습이 필요하기 때문이야. 이를 피하고 극복하려면 우리 자신이 사소하고 무심한 잔인함을 극복해야만 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아이작 싱어도 이렇게 말했다. “동물과의 관계에서 모든 사람들은 나치이다.” “인도주의, 더 나은 미래일, 아름다운 미래에 대한 인간들의 모든 좋은 얘기는, 인간들이 쾌락을 위해 누군가를 죽이거나 먹는 한 아무 의미가 없다.”    

다시 불편한 사람으로 살아가기  


나는 인간은 다른 종을 억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만, 만물과 공감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갖고 있다고 믿는다. 인간은 사물을 의인화하고 자신의 감정을 투사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이런 성질 또한 진화로 인하여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인간의 특성을 축산업계는 알고 있다. 그래서 세상을 직시하지 못하게 하는 장치를 만든다. 정육점 고기와 동물 죽임을 연결하는 상상력을 가로막는 장치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도축장이 분업화, 기계화되면서 도축장 노동자들이 정서적으로 불안한 상태에 놓여있지만 유혈상황으로부터 상당 부분 분리되었다. 소비자는 더욱 멀리 있다. 고기를 요리하며 즐기는 다양한 행복한 그림이 우리를 에워싸고 있다. 이런 환경은 관습적 식습관에서 벗어나기 힘들게 한다.     


건강을 위해서 채식을 선택할 수 있고, 육식보다 채식이 더 맛이 있어서 선택할 수 있다. 어떤 이유로 선택되었든, 채식을 하면 새로운 방식으로 세상을 느끼고 보게 된다. 예전보다 비인간 종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동물홀로코스트’는 나에게 다시 세상을 다르게 보는 방식을 선택하라고 한다. 나는 완전한 채식주의자, 비건이 될 수는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부분 채식주의자로 시작할 수는 있다. 그러면 나는 다시 불편하고 유난스러운 사람으로 취급될 수 있다. 이번에는 유난스럽게 주위에 채식을 권해볼까 한다. “일주일에 한번 고기 없는 날, 돈도 절약하고 좋죠.” 그러면서 나도 피하고 싶은 동물도살과 학대의 현장이 담긴 그림을 함께 보자고 청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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