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 베트남 쌀국수>.
오늘 이 곳에서 점심을 먹었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었다. 첫 번째 왔을 때는 내 몸 상태가 안 좋아서 어떤 음식도 입에 들어오지 않을 때였다. 내 건강을 걱정한 희정이 데려간 곳이었다. 없어진 내 식욕을 당길 수는 없었다. 그저 가게의 위생상태만이 눈에 들어왔었다. 가장 눈에 거슬리는 것은 천 펼침막 두장이다. 가게 벽 한 면을 가득히 채운 펼침막에는 쌀국수 맛있게 먹는 법이 적혀 있다. 그리고 다른 한 장은 주방위에 펼쳐져 있는데, 메인 음식 외에 반찬은 셀프라는 안내가 적혀 있었다. 개업을 했을 때 걸어두었을 듯한데, 그대로 걸려 있었다. 한 번도 세탁을 안 한 듯했다. 기름기와 먼지가 오랫동안 내려앉아서 손 세탁으로는 거무직직한 때가 없어질 것 같지 않았다. 한국 밥집처럼 온돌 바닥에 놓인 식탁도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등받이가 없이 앉는 것이 허리가 약한 나에게는 불편했다.
베트남 여성이 직접 운영하는 이 곳은, 점심시간이라 그랬는지 손님이 많았다. 골목안에 위치한 가게임에도 불구하고 희정 말대로 맛집으로 소문난 곳인가 보다. 온돌 방에는 식탁이 8개가 있었는데 빈 곳이 없었다. 손님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었다. 희정은 맛이 괜찮은데 하며 계속 내가 많이 먹을 것을 바랬다. 희정은 일부러 맛집이라고 검색을 해서 나를 위해서 찾아왔는데, 내가 시큰둥하니 자신도 맛있게 먹지 못하고 있었다. 가게를 나오는 데 주인 남자인 듯한 사람이 문 쪽에서 서성이리는 것이 보였다. 바쁜 식당 분위기와 사뭇 다른 한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비슷한 시간에 갔는데, 손님이 전처럼 많지는 않았다. 아마도 코로나 19사태로 인해서 손님이 줄어든 것 같았다. 나는 주방이 들여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의자가 있는 식탁이 있어서 거기에 앉았다. 누군가의 정장 상의가 의자 등받이에 걸려 있었다. 주방을 정면으로 쳐다보는 곳이었다. 주방 안이 훤히 들여다보였다. 주방에는 5명의 베트남 여자들이 서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이들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이 곳에 놀러 온 듯했다. 한 명만이 앞치마를 두르고 불 앞에서 음식을 준비하고 있었다. 앉은 위치 때문인지 자꾸 주방 쪽으로 눈이 갔다.
주방 안에서 앞치마를 안 한 여성들은 나름 멋을 부린 차림이었다. 분홍색깔의 짧은 치마, 어깨까지 내려오는 귀걸이, 봄을 닮은 하늘거리는 원피스가 예뻤다. 저렇게 멋지게 차려입고 친구들을 만나고 있었다. 그들은 핸드폰을 보며 웃고 있었다. 그 중 한명은 이곳에서 서빙을 하는 여자였다. 나머지는 모두 일과 관계없어 보였다. 아마도 이곳이 그들의 아지트인 듯했다. 멋지게 차려입고 외출을 하여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를 하는 곳. 사실 점심시간을 제외하면 한가한 식당에서 밥도 먹고,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으리라.
홀 서빙을 하던 여자가 전화를 한다. “나야. 엄마. 엄마 뭐해?.... 엄마 3시까지 올께.” '갈께'가 아니라 '올께'다. 이 사람이 한국어가 서투르다는 점보다는 말의 습관에 대해서 의문이 들었다. 영어도 I’m coming.이라고 한다. going이 아니라. 베트남어도 그렇게 하나? 화자가 아니라 청자의 입장에서 말하는 습관이 혹시 보편적이지 않은지 생각해본다. 그래서 갈께가 아니라 올께로 말하지 않을까? 다른 베트남 여성도 그녀의 한국어, '올께'에 익숙한 듯하다.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루고 열심히 움직이는 여성이 이 곳 주인인 듯했다. 이 여성은 주방에서 제일 많이 일을 했고, 손님들이 계산을 할 때면 계산대로 나왔다. 그녀가 한 손님이 내민 카드를 받아서 카드 등록기에 넣을 때 그 손님이 이렇게 말했다. “개업 초기에는 이 맛이 아니었어요. 그 때는 베트남 국수처럼 시원한 맛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맛이 변했어요.” 그녀는 불만을 드러냈다. 그런데 계산대에 있는 그녀는 손님의 이야기를 못 알아듣는 듯했다. 카드를 건네주면 “안녕히 가세요”하고 인사한다. 손님은 머쓱해하면 돌아섰다.
저 베트남 여성은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곳에서 살았을까? 아직도 서튼 한국말을 들으면서 그들이 어떻게 적응해 가는지 상상해본다. 한국어 교육을 정식으로 배우지 못한 이들. 집에서는 농사 등으로 열심히 노동을 하고 육아와 가사일을 하면서 그들이 배우는 한국어 수준은 서바이벌 한국어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 한국어만 배울 뿐이다. 오다, 가다처럼 그들의 실수를 누구도 친절하게 고쳐주지도 않는다. 그저 눈치껏 서로 알아들으면서 산다. 한국에 오래 살면 자동적으로 한국어를 잘하게 되지 않는다. 외국어 공부는 시간 투자가 중요하다. 그런데 이들에게 학습에 집중할 시간을 가질 여유가 있었을까? 어쩌면 한국의 가족들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조건을 주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국인 가족들이 베트남 며느리, 부인이 한국어를 능숙하게 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한다. 한국어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지는 것이니.
어쨋든 그들을 응원한다. 가게 문을 닫고 멋진 옷을 입고 친구들과 놀러도 갈 수 있는 시간이 많아지길. 서튼 한국어지만 자신감을 뿜뿜 풍기는 생활을 갖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