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

입양 1년

by roads


동거 1년

7월 1일이 되면 튼튼이가 나와 산 지 1년이 된다. 나에게 온 날을 튼튼이 생일로 정했다. 다음 주면 5세가 된다. 생일상을 차려주어야겠다. 이름은 ‘몸도 튼튼, 마음도 튼튼’에서 왔다. 튼튼이가 건강하게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을 지었다. 이 이름에는 나의 건강도 같이 무럭무럭 커지길 바라는 마음이 들어가 있다.

입양단체에서 요구해온 입양 후기라는 글을 어디에서부터 쓸 지 막연하여, 페이스북의 포스팅을 보았다. 첫날, 7월 1일 이동가방에서 얼굴만 삐찍이 내밀어 날 불만스럽게 보는 사진과 함께 올린 글, “삐삐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후 다시는 댕댕이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나, 새 식구를 입양했다. 2년 4개월만이다. 아직은 어색한 것 같네. 임보가 제 가족일거라 생각했을텐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 절망한 것은 아닐까.”


페이스북의 프로필 사진이었던 삐삐가 이제는 하얀 얼굴과 검은 코와 눈동자, 붉은 혀를 보여주는 튼튼이 얼굴로 바뀌었다. 동거 몇 개월간은 나도 모르게 튼튼이를 삐삐로 부르곤 했다. 급하면 튼튼이보다 삐삐라는 이름이 먼저 튀어나왔다. 그런데 지금은 자동적으로 나오는 이름이 되었다.


페이스북을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런지 1년 동안 올린 튼튼이 사진이 11개밖에 되지 않는다. 6월 30일에 1장을 올려 12장을 채워야겠다. 평균 1개월 한번 포스팅. 그렇게 해야 되는 규칙은 없으나 무언가 빠진 듯한 홀수보다 낫지 않은가. 그런데 사진 모두가 산책중에 뛰어가는 모습이다. 주인의 일상이 버러이어티하지 못하니 튼튼이 생활도 단조롭구나. 불쌍한 튼튼이. 내가 1년 동안 튼튼이에게 해준 것은 살을 찌게 한 것뿐인 것 같아 안타깝다. 1년 동안 몸무게가 거의 2배가 되었다. 뒷다리 위 허리가 잘룩하지 않다. 내가 뭘 먹을 때마다 바라보는 눈을 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튼튼하게 살기 위해서 과감해질 필요가 있다. 나도 다이어트를 실행하고.


아직도 우리는 싸움중

빌라 건물 입구에 “4층에 사는 분, 개 좀 통제하세요. 개가 너무 짖어요”라는 메모가 붙었다. 난 음찔했다. 우리 튼튼이가 아니라 아래층 개다. 그 개도 튼튼이와 마찬가지로 말티즈다. 공교롭게 튼튼이가 집으로 오는 즈음에 4층이 이사를 왔다. 작은 빌라 한 동에 말티즈 두 마리가 살고 있다. 말티즈라는 견종이 소리에 민감하고 잘 짖나보다. 우리 튼튼이도 마찬가지다. 지은 지 20년이 넘은 허술한 빌라에서 살고 있는 나로서는 매일 고민이다. 내일은 이런 경고장이 붙이면 어쩌나. “5층 개 좀 잘 단속하세요.” 튼튼이는 밖의 소리에 민감하다. 3-4층부터 발소리가 나면 짖기 시작한다. 5층으로 올라오지 않는데도 짖는다. 튼튼이는 문 쪽으로 다가가 짖으면서 날 쳐다본다. 그리고 왜 내가 반응을 안하냐는 듯 다구치는 표정을 짖는다. 짖는 튼튼이를 막기 위해서 유튜브를 보면서 어떻게 훈련시키는지 공부도 했다. 그러나 매번 실패한다. 문제는 전적으로 나에게 있다. 내가 끈기 있게, 단호하게 하지 못한 잘못이다. 그리고 짖는 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멈추게 하려는 나를 향해서도 짖는다. 이제는 산책가려고 줄을 매어도 흥분되어 짖는다.


그런데 튼튼이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특히 밖으로 나오면 조용하다. 집 밖의 냄새에 정신이 팔려 주변에 신경을 전혀 쓰지 않는다. 그리고 사람들이 많은 시장에서도 문제가 없다. 붐비는 오일장을 가도 얌전히 노점과 사람 사이를 잘 간다. 기특한 것은 시장이나 산책길에 만나는 노인들에 대한 반응이다. 노인들은 튼튼이를 좋아한다. 작고 하얘서 그런가보다. 어떤 할머니는 안아보고 싶어한다. 그러면 안아보게 한다. 낯선 사람이 안으면, 그렇게 좋아하는 표정은 아니나 순하게 안겨 있다. 대견하다. 그래서 지역 요양원에 튼튼이와 자원봉사를 갈까하고 생각도 해보았다. 요양원 시설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가 안아볼 수 있도록. 내가 가지는 행복감을 나누고 싶었다. 돌아가신 엄마가 삐삐를 안고 좋아하셨다. 삐삐는 썩 내키지 않아 했는데, 90이 넘어 힘이 없으신 엄마가 안는 자세가 불편했던 것 같다.


튼튼이는 나에게는 도전이다. 튼튼이가 오기 전에 같이 했던나의 반려견, 테씨와 삐삐와는 다르다. 그 둘은 견종 중 얌전하기로 알려진 시츄였고, 나와 함께 했을 때부터 노견이었다. 둘은 힘이 없어서인지 짖지 않았고, 얌전했다. 내가 가진 개에 대한 지식은 그 둘을 통해서였다. 그런 애들에게 익숙한 나에게 튼튼이는 다른 세상이다. 튼튼이는 활동적이다. 사람 나이로는 청년인 나이라 그런지 산책을 나가면 날 끌고 다닌다. 그래서 나는 매일 다니는 강변 산책길에서는 줄을 놔준다. 그러면 관심이 있는 곳에서는 오래 머물고, 그렇지 않으면 뛰어서 앞으로 나간다. 산책객들이 자유롭게 산책하는 튼튼이를 보고 불평을 한 적은 없다. 위협이 될 정도의 크기가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튼튼이가 알아서 그들의 산책을 방해하지 않게 다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자신이 지치거나 싫증이 나면, 뒤로 돌아서서 집의 방향으로 뛰어간다. 물론 돌아보며 내가 자신을 쫒아오는지 확인하면서. 나는 만보 걷기를 오늘도 실패하고 튼튼이를 따라 들어온다. 또 집에 와서 간식과 짖는 것으로 튼튼이와 실갱이를 한다.


나의 필요에 의한 만남

나는 내 곁에 있을 작은 식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입양을 결심했다. 그러나 튼튼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는지 알 수 없다. 튼튼이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러니 튼튼이가 나보다 손해다. 내 필요에 의해서 한 식구가 되었지만, 견종으로서의 특성과 튼튼이만의 개체로서의 개성도 받아들여야 한다. 튼튼이는 살가운 성격은 아니고, 자기 주장이 확실하다. 그리고 주장만큼 고집도 쎄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 정도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튼튼이는 내 필요 이상을 주고 있다. 보는 것만으로 좋다. 간식을 달라고 애처로운 표정을 지을 때도, 내 무릎 위로 올라와서 자기를 만져달라고 귀찮게 할 때도, 잘 때 자리를 바꾸며 불면증에 시달리는 나를 더욱 뒤척이게 할 때도 좋다. 존재 자체로 기쁨을 준다.


그럼에도 아직도 짖는 것에 신경이 쓰인다. 이웃에 미안하다. 옆집에게 우리 튼튼이를 소개했다. 그들이 아주 기뻐하시지는 않았으나 눈감아 준다는 표정이었다. 어느 유튜브를 보니 주인이 미덥지 않아서 개가 짖는다고 한다. 즉 자신이 집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을 느낀다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견주가 아니라 개라고 한다. 그렇다면, 집의 문은 밖에서 열리지 않을 정도로 튼튼하고, 너의 주인은 네가 지켜줄 정도로 약하지 않다고 어떻게 알려줄까?


루이스 세폴베다의 <자신의 이름을 지킨 개>이라는 아름다운 책이 있다. 이 책은 개가 주인공이며 화자인 이야기이다. 이 책은 개를 통하여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라는 칠레 원주민의 정신을 보여준다. 주인공 개의 이름은 ‘충성심’이다. 그는 이름처럼 주인을 향해 충성스럽게 살다 죽는다. 나도 튼튼이가 자신의 이름을 지켰으면 한다. 이름처럼 튼튼하게 살면 좋겠다. “튼튼아! 나에게 와줘서 고맙고, 나와 같이 튼튼하게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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