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영화는 왜 공포영화가 되는가.

by roads

공포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공포영화는 영화의 완성도와 메시지의 공감 여부를 불문하고 보지 않는 편이다. 온 몸이 쪼그라드는 긴장을 견딜 만큼 내가 강하지 않다. 영화 속 인물에 쉽게 동화되는 성정을 가진 내가 영화 내내 견뎌야 하는 불안이 버겁다. 불안을 가속화시키는 영화적 장치가 짜증이 난다.


짜증은 나지 않지만 불안한 마음으로 보는 영화가 성장영화다. 모든 성장영화가 그렇지 않겠지만 시련을 겪는 청소년들을 보는 것은 마음을 졸이게 한다. 거의 공포영화 수준이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빌려본 영화 DVD ‘문라이트’가 바로 그것이다. 영화의 초반부터 주인공에게 닥칠 시련 때문에 땀이 났다. 마치 안개에 쌓인 낯선 거리에 주인공과 내가 내팽겨친 느낌이었다. 부딪히는 인물, 상황 모두가 갑자기 어린 주인공들에게 위협이 될 것 같았다. 그런 두려움에 노트북 마우스를 움직여 영화 끝 부분을 먼저 보고 돌아와서 영화를 보고 싶었다.


성장영화는 불안함으로 인한 떨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복받치는 슬픔으로 온몸을 떨게 한다. 어린 주인공이 겪는 절망과 좌절이 날카롭다. 이들이 성인이었다면 보는 내내 가슴 졸이고, 서글프게 울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주인공들이 고립된 약자인 마이너이기 때문에 안절부절 마음이 요동을 친다. 자원을 통제할 능력이 없는 약자, 도망치지도 못하는 처지에 있기 때문에 그들을 둘러싼 환경은 순식간에 절벽이 되기도 하고, 낭떠러지가 되기도 한다. 그들은 그저 참고 버틴다. 그들에게 손을 내밀지 못하는 내가 좌절한다.


그들의 좌절과 공포를 온몸으로 받는 나는 왜 그럴까? 이런 내 감정이 평범한 것인지 알고 싶다. 힘없는 어린 생명에 연민의 감정을 갖는 것은 누구나 그런지, 혹시 나의 과잉 감정이 아닌지 궁금하다. 이 몰입은 내 어린 시절 기억과 연관되어 있는 것일까?


내가 기억하는 어린 나는 혼자일 때가 많다. 정말 혼자였는지 모르겠으나, 혼자인 나를 많이 기억한다. 집 마당 땅 바닥에 뭔가 그리고 있는 내가 보인다. 주변에 아무도 없다. 엄마는 일하러 나가고, 세 살 많은 언니는 어디에 있었을까? 언니는 친구와 어디로 놀러갔는지 내 곁에 없었다. 친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 친구들과 친교가 어려웠다. 친구들 사이에서 작아지는 날 견디기 힘들었다. 그저 하늘과 땅을 보며 하루를 지냈던 그 때, 난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을까? 내일에 대한 꿈을 꾸고 있었을까?


기억은 재구성, 재배열되는 것이라고 하던데, 가만히 당시 상황과 관계를 연관시켜 다시 회상해본다. 흩어진 다른 조각을 모아 보면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었다. 멀지 않은 곳에 엄마가 일하는 가게가 있었고, 골목에 언니가 친구들과 놀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작은 방에서 병든 오빠가 책을 보고 있었다. 거동이 불편했던 오빠 때문에 내가 오빠의 잔심부름을 해주었다. 그러니 난 혼자가 아니었다.


그런데 내 기억에는 항상 혼자 있는 그림 그리고 하늘, 땅이 있는 그림 조각만이 강하게 남아 있었을까? 내가 혼자였다는 기억이 강한 것을 보면, 웅크린 내가 너무 커서 날 지켜주던 가족이 포함되지 못했을 것이다. 전체의 그림 속에서 나를 보지 못하고 조각만을 기억하는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네. 지금도 어린 나와 같이, 홀로라는 감정에 파묻혀 있지 않나싶다. 어쩌면 그 당시 난 홀로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친구와 어울려 있었을지 모른다. 지금의 홀로 삶이 어린 홀로를 불러내와 날 연민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성장영화를 보면서 잘 될거야하고 믿고, 어떠한 성장이든 응원하는 담대한 관객이었으면 좋겠다.

-2018.5.31

이전 12화댕댕이와 함께 민폐 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