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사라마구, 작은 기억들
내가 애정하는 작가, 주제 사라마구의 회고록이다. 좋아한다고 했지만 그의 작품은 단 두 권 읽었다. <눈먼 자들의 도시> 그리고 <예수복음>이다. 이 작가의 작품은 묵직하면서 센세이셔널한 주제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또한 놀라운 점은 파격적인 시선으로 세상을 본다는 점이다. 눈먼 자들의 도시를 보면서 세상을 과감하게 다른 시선으로 볼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은 어떻게 형성되는가를 고민했다. 그것은 단순히 소재의 파격성, 현실을 은유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상상력은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반영한다.
예수복음은 더 파격적이고 용감하다. 그가 이 책으로 인하여 자신의 조국에서 추방되는 시련을 겪었지만, 역으로 가톨릭 국가의 작가만이 가질 수 있는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예수는 정말 사람의 아들로서 설정된다. 사람의 아들, 예수를 형성하는 세상을 신과 악마, 즉 선과 악으로서 보는 이분법적 종교에 대한 반기이다. 신과 악마가 실체로서 등장하고 논쟁을 한다. 그러나 악마는 절대 악이 아닌, 지혜 있는 인간, 고민하는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악마의 역할을 벗어나 세상을 떠나고 싶으나 운명이란 틀 속에서 묶여서 이 세상을 떠나지 못하는 고뇌가 악마에게 있다. 어쩌면 우리가 그런 모습을 하고 있지 모른다.
내가 이 작가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문체 때문이다. 무거운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끊임없이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지만, 독자들이 책을 읽는데 결코 어렵지 않다. 그 이유는 간명한 문체에 있다. 심리적 묘사도 짧고 담담하다. 물론 번역의 힘, 정영목이란 훌륭한 번역가의 힘이라고 생각이 들지만, 본래 원작도 그럴 것 같다. <작은 기억들>은 다른 사람, 박정훈 번역가의 것이긴 하지만 그의 문체 힘은 동일하게 느낄 수 있다.
‘작은 기억’들은 주제 사라마구의 어릴 적 에피소드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는 흩어져 있는 짧은 메모를 정리하듯 어린 시절의 작은 기억들을 이야기한다. 그의 문체는 이 회고록에서도 빛난다. 담백한 그의 문체는 어린 시절 소년을 살아있는 실체로 투명하게 한다.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글은 감상적이기 쉽다. 희미한 기억을 감상으로 채우기 쉽다. 실제 사건 배경보다 그 사건이 만든 인상, 감정이 오래 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글에서는 그런 점을 느끼기 힘들었다. 나는 어떠한가? 내 어린 시절의 작은 기억들에는 지나치게 자기 연민이 덕지덕지 붙어있다. 나는 과도하게 감상적이 되어, 나조차도 기억의 진실이 종종 혼란스럽다. 어쩌면 이런 점을 익히 알고 있는 노작가는 기억에 무거운 감상을 더욱 벗어나려 노력했는지 모른다. 그리고 현재의 반영으로서의 기억 회상에 엄정하려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그런데 80이 넘은 노작가는 왜 굳이 유소년 에피소드만을 회고록에 실었을까? 작가의 회고록, 아주 작은 기억들을 되짚어 보는 것이 작가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을까? 작가는 그 시기가 전 인생에 끼친 영향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일지 모른다. 나도 그렇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더 중요하게 인식되어지는 어린 시절, 현재의 날 많든 많은 부분이 그 어린 마음에 있었음을 새삼 느낀다. 그 어린 나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