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피안사의 철불
"만일 깊은 산 속에 옹달샘이 없다면 산에서 길을 잃은 나그네가 어떻게 목을 축이고 길을 찾아 살아 돌아올 수 있겠는가. (중략) 어느 나라 어느 사회나 어디엔가 높은 정신이 살아 있어야 그 사회가 살아 있는 것과 다름없는 이치라고 생각한다." - 박완서, <세상에 예쁜 것들>
'깊은 산 속 옹달샘'은 박완서 선생님의 마지막 산문집이란 부제가 달린 <세상에 예쁜 것> 에 있는 한 꼭지의 이름이다. 깊은 산 속 옹달샘은 법정스님을 가리킨다. 박완서 선생님은 법정스님을 도피안사의 철불(철조비로자나불좌상)과 닮았다고 회상한다. 강원도 철원에 위치한 작은 사찰의 철불을 보며, 선생님은 이렇게 적었다. "눈부시지 않아서 마음 놓고 쳐다볼 수 있었다. 내 나름으로 본 철불은 인자함보다는 당당함이, 초월적이기보다는 현세적인 인상이었다." "부처님이라기보다는 당시의 신라인이 이상으로 삼았던 인간상을 구현한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신라시대와 신라인에게 친근감까지 느껴졌다."
박완서 선생님은 법정스님이 입적하신 후, 스님이 거처였던 작은 오두막 벽에 붙어 있는 철불 사진을 본다. 그러면서 법정스님과 신라시대의 철불과 서로 닮아 있다고 생각한다. 위선과 세속의 헛된 욕망의 군살이 붙는 걸 철저하게 경계한 수도자의 얼굴을 본 것이다. 스님의 거처는 산 속 옹달샘이라고 말한다. 산 속 옹달샘 같은 수도자 생활은 자신만 더럽히지 않으면 그만이라는 고립되고, 이기적 존재적 삶이 아니다. "생과 사의 임계점이라는 것이 있듯이 죽어가는 강에도 그런 것이 있을 것이다. (중략) 아직은 강이 죽지 않고 살아날 가망이 있는 건 작지만 어디선가 졸졸 흘러드는 맑은 물이 아슬아슬하게 임계점을 지켜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철불, 법정스님 그리고 옹달샘으로 이어지는 글을 읽다가, 초록창에서 도피안사의 철불을 찾아봤다. 사진을 본 순간 갑자기 울컥해졌다. 그 사진 속 철불이 힘들어하는 날 가만히 본다. 마치 날 안아주는 듯한 인상을 받았다. 그 속에서 나의 현재와 종교에 의존하는 마음을 봤다. 내가 오염되어 가는 중에도, 매일 좌절 하며 흔들거리면서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것은 종교의 힘이 아닐까? 절대적 존재에 의존하려는 마음은 내세보다는 현세에서 평화로운 삶을 갈구하는 것이다. 번뇌를 벗어나 평화롭게 살고 싶은 나날을 갈구하는. 욕심이 없다면 겁도 없다는 가르침, 겁 내지 말고 신에게 의지하라는 그 말씀에 기대고 싶다.
현세에 내가 짊어진 것들은 무엇이며. 그것들을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짊어질 것이라면 짊어져야 한다. 그러나 대부분 내가 만든 족쇄다. 내 안의 평화의 힘을 믿지 않고 있다. 미리 걱정하지 말자. 온다면 그때 걱정하고, 걱정한 것들이 왔을 때도 담담하게 대하자. 날 둘러싼 상대방, 환경이 내가 제어할 수 있건없건 담대하게 수용하자. 그것은 상대를 살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날 살리기 위해서이다. 마음의 번뇌는 작은 나를 인정하지 않고 크게 부풀려 보는 데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나는 작은 나를 인정하고, 내가 이 삶에 벅차게 많은 것을 가지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철불을 한번 찾아가 봐야겠다. 법정 스님의 글도 다시 보고 싶다. 성당에 가서 항상 그렇듯이 기도도 올려야겠다. 내 평화는 내가 찾아야 한다. 내가 산 속 옹달샘이 될 수는 없다해도, 적어도 옹달샘을 귀히 여기고 감사하는 마음이 필요하지 않을까.
성당 입구에 있는 말씀, "내가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요한 14: 27) 내가 항상 찾는 말씀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말라. 이 얼마나 큰 위안인가. 이 말을 믿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