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사자 편에서 르포를 쓴다는 것

by roads

결혼이주여성과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한 르포가 한 인터넷 뉴스미디어에 실렸다. 내 원고의 제목과는 다른 제목으로 글이 게재되었다. 자극적이었다. 한국인 남편과의 나이차를 부각시킨 제목이었다. 제목에서 보여준 나이 차이는 농촌의 일부 국제결혼의 불평등, 부정의한 성격을 강조하는 징표로 사용되고 있었다.


인터뷰이와 나는 같은 지역에 살고 있지만, 인터뷰 전에 인사를 나눌 정도의 친밀성은 없었다. 때문에 인터뷰가 편안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특히 인터뷰이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인터뷰 글은 남편과 어떻게 만났는가로 시작한다. 결혼중개업체에 의해서 만들어진 단체맞선부터 적고 있다. 그 안에 남편의 나이를 말하고 있다. 나는 나이 차이를 크게 부각시키지 않게 글을 썼다. 편집진은 이 점을 잡아낸 것이었다. 독자들의 눈을 끄는 쌈박한 제목으로 기사 구독수를 늘려야 하는 편집진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르포는 내 글이면서 동시에 르포 속 인물들의 글이다. 르포는 사실을 적시하는 것이지만, 사실이 어느 위치에서 기술되는가가 더 중요하다.


타국의 농촌으로 이주한 결혼이주자의 경우, 남편과의 나이 차이를 부끄러워 한다. 결혼을 통한 경제적 상승의 요구가 있다 하여도 자신들의 결혼을 매매혼이라고 보지 않는다. 특히나 결혼 동기를 현재의 시점까지 지속되는 성격으로 이해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삶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이 있다.


이런 나이 차이를 부각시킨 글은 농촌의 국제결혼이 정상적인(?) 결혼과는 거리가 있다는 편견을 더 강화시킨다. 우리는 연애, 사랑을 매개로 한 결혼을 정상적으로 본다. 이런 사랑과 연애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에는 비슷한 나이, 학력, 계급이 있다. 그러한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의 선택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까?


고백을 하자면, 나도 인터뷰를 하면서 조금은 특별한 내용을 끄집어 내려는 욕구가 있었다. 그가 경험했을지 모르는 가정폭력과 마을에서의 인종 차별적 경험 등이다. 그런데 이것은 국제결혼에 대한 나의 편견에서 출발하고, 그들 결혼이 폭력적 관계일 것이라는 선입견이었다.


무엇을 물을 것인가? 인터뷰 전에 질문지를 만들면서, 내 질문들이 극히 편견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알았다. 내 편견을 솔직히 드러내고 당사자들의 답을 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인터뷰이와의 관계가 친밀하지 않는 이상, 그러한 질문들은 그들에게는 부담이 될 수 있고, 상처가 될 수 있었다. 그러한 생각에 이르자 내 질문은 두리뭉실해졌다. 날카롭지 않았다. 어쩌면 나와 같은 편견을 가진 사람, 독자들에게는 관심을 끌 수 있는 내용이 아닐 수 있다. 그러다보니 나이 차이가 더욱 부각되었을지도.


르포를 게재한 후, 외부인이 르포의 당사자와 상황에 대하여 사실/진실을 얼마나 드러낼 수 있는지, 또 그 밝힘의 의미와 말하는 당사자의 입장에 선다는 점의 허약성을 실감했다. 다음에는 인터뷰이를 만나서 르포와 무관하게 서로 위안이 되는 말을 주고 받을 수 있기를. 그리고 당사자가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할 때까지 기다려주고 싶다.

이전 15화이웃에 관한 글쓰기가 주는 긴장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