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생활을 연재하는 이유
인터넷 신문에 기고한 ‘시골생활’ 연재가 7회를 넘었다. 시골생활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내가 D면으로 이주를 한 직후였다. 시골에서 생활한 시간이 연재와 함께 흘렀다. 어느새 6개월이다. 그러나 새로운 생활에 적응하기에는 아직 긴 시간이 필요하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란 나는 시골에 친지도 없어서 명절에도 도시를 벗어난 적이 없고, 명절마다 겪는 교통지옥을 경험하지도 못했다. 내가 시골생활을 제일 길게 한 것은 대학 때 농활이었는데, 1주일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다. 그러니 이곳에서의 생활이 내게 시골생활의 첫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내가 시골생활 연재를 결심한 것은 지극히 개인적 이유 때문이다. 시골생활 그자체보다는 자기를 단련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훈련 수단으로 글쓰기를 택한 것이었다. 그 소재가 시골 생활이었을 뿐이었다. 시골에서 적응하는 과정, 좌충우돌하는 과정을 솔직하게 써서 나를 기록하고, 글을 통해 내 헝클어진 머리와 마음을 정리하여 나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목격하길 원했다.
시골생활을 매체에 연재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도시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 즉 내가 여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골에서 살겠다는 의지를 다지기 위한 결의의 표시였다. 이렇게 밖으로 외치면, 외침을 지키기 위해서 내가 조금 더 내 시골 삶을 잘 살려고 노력하지 않을까하는 저의가 있었다. 이러한 두 가지 글쓰기 동기는 독자와의 공감, 소통이라는 목표보다 더 큰 것이었다.
글쓰기에 대한 극히 개인적 동기 때문인지, 내 글이 주로 시골생활에서 겪는 낯설음과 불편함을 털어놓는 장이 되어버렸다. 혼자서 구시렁거리는, 중얼거리는 성격의 글이 되어 버렸다. 구시렁거리는 글의 소재는 사소한 일상사의 경험과 감정이었다. 시골에서의 경험이 완전히 생소하고 예측하지 못한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실제로 경험을 통해 들어와서 온 몸의 감각에 깊숙이 배기는 감정, 느낌을 글에서 전하고 싶었다.
선주민이나 귀촌귀농한지 오래된 사람에게 내 이야기가 별로 화제가 될 만한 소재도 아닐 수 있다. 언젠가 나도 내 글을 다시 보면, 나의 투덜거림이 유치하고, 내가 경험했던 불편하고 낯설었던 상황이 내 체온처럼 무감각해지는 날이 올 것이다.
이웃을 쓰는 것이 주는 긴장감
나는 내 글의 독자를 구체적으로 상정하거나 고민해 본 적이 없다. 막연하게 인터넷 신문의 독자, 불특정한 독자로만 생각했다. 그럼에도 매체의 진성 독자의 성향이 내 글에 영향을 준 적이 없고, 편집진의 배려 덕분에 매체의 성향에 상관하지 않고 글을 썼다. 내 이런 점이 내 글이 극복해야 할 요소이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 편안함을 제공했다.
그런데 나의 가볍고 편안한 글쓰기 마음이 오래 지속될 수 없을 것 같다. 시골생활 연재가 내가 사는 지역이웃을 소재로 하다 보니, 글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긴장이 마을에서 형성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서로 알고 있는 내용을 쓰는 것이 글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도 하지만 미묘한 갈등을 만들기도 한다. 내 글이 순전히 개인적 감상, 경험을 중심으로 쓰다 보니, 매회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내가 보지 못하거나 놓친 점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나의 시골생활 글쓰기가 조심스러워 지고, 글을 쓰는 데 조금씩 고려해야 하는 것들이 늘고 있다. 막연한 독자가 아닌 구체적인 이웃, 얼굴을 가진 독자가 생긴 것이다.
나를 풀어내고 나를 지키기 위한 순전한 이기심으로 글쓰기를 시작한 내가 글을 쓰다가 주춤거린다. 글의 어떤 부분에서 불만을 보일 사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솔직한 내 심정이 드러나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써지거나 구체적인 인물을 고려한 타협적인 글쓰기가 되어 버릴 위험을 내포하고, 내 감정과 경험에 솔직하지 못하고 착하게 글을 쓰려는 위험한 글쓰기에 직면한다.
대상화가 아니고 마주 보기
이번 연재 글에서는 시골생활 반년을 경과하면서 나의 글쓰기를 반추해 본다. 이런 글쓰기 반추는 시골 생활을 되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편안함보다는 위기를 느낀다. 위기의 실체는 무엇인가?
나는 글쓰기 공부를 한 적도 없을뿐더러, 일생 동안 글쓰기를 계속 하고 싶다는 마음을 먹은 지도 얼마 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내 글이 부끄럽다. 매체에 기고를 하고는 있지만 그 글을 스스로 내 주변에 알리는 데 소극적이다. 그렇다고 내 글에 대한 조회 수에 무덤덤하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다. 내 글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 쑥스러울 뿐이다.
최근 내 글에 대한 마을에서의 호기심이 생기면서, 마을과 마을 사람들이 내 글 속에서 대상화되고 있지 않는지 조심스럽게 내 글쓰기를 되돌아본다. 이웃에 대한 존중 없이 이웃을 대상화하는 글쓰기 때문에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그러면서 왜 글을 쓰는가라는 질문을 다시 하게 되었다. 특히 시골생활을 써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물어본다. 아직도 시골생활을 연재를 시작할 때의 동기와 변함이 없다.
내 동기가 변하지 않았다 해서 내 태도가 달라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시간이 갈수록 예민해지는 내 모습을 보게 된다. 이것은 단순히 글쓰기의 태도만이 아니라 생활 모습에서도 나타난다. 처음에는 마을 사람, 마을 일이 하나의 그룹, 덩어리로 보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하나 하나, 한 사람 한 사람이 개별로 눈에 들어오고 나에게 말을 걸고 있다. 그러면서 나는 세상에 대한 해석이 복잡해져가는 것을 느낀다.
이러한 엉킨 복잡한 실타래 같은 관계의 과정을 경과하는 글쓰기를 하게 된 것이 7회 연재의 시간이 나에게 준 선물이다. 다양한 사람과 일이 빚어내는 긴장 속에서 글을 쓰는 것은 내가 그들을 의식하는 과정이며, 글쓰기의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즉 시골마을 연재는 내 마을과 이웃을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그들과 감응하는 과정이 되어야 함을 깨닫게 했다. 또한 성찰하는 글쓰기 동기에 내가 충실한지 조심히 묻는 과정이 되었다.
-2016년 5월 2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