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타 뮐러, 숨그네
“라틴어로 진실의 반대말은 허위나 거짓이 아니라 망각(忘却)이라고 해요. 거짓된 것은 망각 속에 다 묻히기 때문에 살아남는 기억만 진실한 것이라는 뜻이지.”
‘진실의 반대말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다,’ 비극적 사건이 회상될 때마다 회자되는 말이다. 나는 김연수의 <시절일기>에서 이 문장을 처음 접했다. <시절일기>에서는 이어령의 말로 인용된다. 그래서 원문을 찾아보니 2016년 <주간조선>에 실린 이어령 교수와의 인터뷰 기사였다. 그런데 내가 관심을 가진 문장은 이 문장 다음에 오는 문장이었다. 두 번째 문장은 이어령의 해석인 듯했다. 이 문장을 볼 때 의문이 들었다. 망각된 것은 모두 거짓인가? 진실한 것은 잊혀지지 않고 살아남는가? 우리 주변의 사회적 비극이 얼마나 빨리 잊혀지는가. 먼 과거가 아니라 최근 10년 동안 일어난 많은 사건들, 세월호, 강남역 사건, 안희정 사건, 김용균 등. 그 일들은 우리의 몸과 마음, 의식을 망치처럼 때렸다. 놀라게 했고, 힘들게 했으나, 곧 다른 사건에 묻혔다.
따라서 ‘거짓된 것은 망각 속에 다 묻히기 때문에 살아남는 기억만 진실한 것’이라는 문장에는 생략된 말이 있거나, 다른 의미를 숨기고 있는 듯하다. 바로 살아남는 기억으로 만들려는 노력이다. 사회적 진실과 거짓을 가르는 기억과 망각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그냥 걸러지는 것이 아니다. 기억에는 다시 비극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식적 활동들이 있었다. 잊지 않으려는 의지가 사건과 무관하게 살아가는 일반 대중을 깨운다. 기억의 구석에 파묻혀 있던 것을 끄집어내어, 비록 잠시일지라도 진실을 문득문득 대면하게 한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활동이 되고 미래에도 진실로 살아있게 한다.
그런데 비극적 진실을 직접 경험한 개인은 이것을 기억하고 싶을까? 그리고 망각하지 못하는 삶은 어떨까를 동시에 생각해본다. 그런 기억과 관련된 대표적인 작품이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일 것이다. 거칠게 분류하자면 이 소설은 수용소 문학이라 부를 수 있다. 헤르타 뮐러는 시적인 감성으로, 몽환적인 분위기로 수용소의 삶을 이야기한다. <숨그네> 속의 화자인 나는 17세 소년이다. 이 소년은 수용소의 정체를 모르고 여행을 떠나듯 수용소로 간다. 수용소 생활 동안에도 수용소를 움직이는 정치가 어떻게 벌어지고 있는지 모른다. 소년의 눈에는 가해자가 보이지 않는다. 가해자보다는 자신을 둘러싼 일상에 천착한다. 화자는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보다 배고픔의 고통이 더 크다. 나는 생존하기 위하여 환각에 의존하기도 한다. 수용소에서 마주치는 물건에 집착하기도 한다. <숨그네> 속의 나는 오년 동안 강제수용소 생활을 한다. 그런데 나의 수용소 생활은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도 중단되지 않는다. 평생 잠을 설친다. 잠을 못 이루게 하는 것은 내 이마 안쪽에 들어있는 검은 트렁크이다. 그 트렁크에는 수용소 물건들이 들어있다. 내 의지와 상관없이 수용소의 물건들이 수용소로 데려간다. 그러면서 나의 숨은 그네처럼 공중에서 한바퀴 돌고, 헉헉거린다.
불면증을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잠자리에 들면 잠 먼저 찾아오는 것들이 있다. 낮에 하지 않은 일이 떠오르기도 하고, 낮에 고민했던 일들이 연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힘든 것은 이마 안쪽에서 깊숙이 잠자던 것들이 기지개를 피면서 선명히 다가오는 현실이다. 그것은 수치심과 후회와 함께 감정을 실어 온다. 검은 연기처럼 스며온 것들은 질서도 없고, 논리도 없다. 이유도 없다. 이런 상황을 경험한 자들은 알고 있다. 종잡을 수 없는 번잡한 잠자리 기억들이 다음날 자신을 더욱 황폐하게 만든다는 것을. 그리고 불면을 만드는 것들은 잊으려해도 잊혀지지 않고 끈질게 찾아온다는 것을. 내일 밤도 잠을 설치리라는 것을.
과거의 일에 의해서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에게, 우리는 “잊으라”고 위로하고 충고한다. 그리고 그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을 무능력, 무의지의 소산으로 말하기도 한다. 정신적 고통에서 머물고 싶은 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럼에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잊혀지지 않기 때문이다. 잊으려 해도 더 굳어지는 기억들 때문이다. 그 기억들은 종종 서로 부딪혀 다른 상처를 만들어내기도 하고, 숨그네의 화자처럼 평생을 벗어나기 힘들게 한다.
한 해가 간다. 항상 연말 국회는 씨끄럽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서로 삿대질하는 정치권을 보는 것이 지겹고 힘에 부쳐 고개를 돌리려 하다가, 국회의사당 밖에서, 영하의 날씨에 진실을 지키려는 이들이 있어 부끄러워 하며 정치에 기대를 걸어본다. 어느날 갑자기 망각할 수 없는 것들에 부딪힌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눈물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한다. 눈물의 샘이 고갈되어버린 건조한 순간에도 그 진실은 살아야 한다. 어디 이들뿐이랴. 팬데믹이란 전세계의 사태 속에서 피해, 고통이라고 하소연도 못하는 개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위로와 격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연말이라 그렇고 고통이 현재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고통의 기억들을 모아서 함께 기억해주고 해석해주고 정리해주는 것이 위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