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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ads Dec 24. 2020

탁, 억, 퍽

외마디 부사가 주는 공명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일일 단식 동참합니다.'


12월 들어 시작된 단식 소식을 펫북을 통해 알았다. 그 소식은 여의도 앞 농성장에서 왔다. 연말 임시국회에 생명을 살리자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를 하고 있다. 사실 이 법안은 조금만 노동자들의 생명에 관심을 가진 사람에게는 새로운 이슈도 아니다. 보수적인 미디어도 피할 수 없이 노동자들이 쓰러지는 소식을 전하고 있다. 김훈의 말처럼 '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 ...노동자의 생명이 부서진다.' '퍽퍽'이 아니라 '퍽퍽퍽'으로 적은 작가의 마음이 전해진다. 퍽퍽으로는 부족했다.  마지막 퍽은 수많은 퍽을 싣고서 울린다.  퍽은 저항을 할 수 없이 속절없이 마구 당한다, 또한 쌓인다는 이미지가 소리가 함께 온다. “인간의 살아 있는 몸이 한 덩이의 물체로 변해서 돌멩이처럼 떨어진다. 땅에 부딪쳐서 퍽퍽퍽 깨진다. 오늘도 퍽퍽퍽, 내일도 퍽퍽퍽.”


나는 퍽퍽퍽을 들을 때, '탁'과 '억'이 연상되었다. 대한민국 성인이면 누구나 기억하는 부사. 1987년 고문치사사건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경찰측의 말에서 나왔다. “수사관이 책상을 탁치니 박종철이 억하고 쓰러졌다.” 누구도 납득시킬 수 없는 말. 황당한 거짓이 판치던 세상을 전적으로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어가 탁과 억이다. 탁과 악은 거짓이지만, 거짓 속에 감추어진 많은 소리와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퍽'은 거짓이 아니다. 인간이 인간이 아니라 부속품이 될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나오는 절망과 비탄의 소리며 모습이다. 노동자들에게 1987년은 언제 올 것인가. 1987년이 민주주의의 완성이 아니라, 그를 향한 디딛은 첫발이었듯이, 노동자들의 안전을 위해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첫 발걸음이 되지 않을까. 


동조 단식 소식을 봤다. 내 주변에서 이런 소식을 같이 공유할 사람, 작지만 동조단식에 같이 할 사람을 그려보았다. 마땅히 떠오르지 않았다.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내 네트워크, 내 사회적 관계가 만든 한계일 것이다. 이 사안에 동의할 사람들 중 일부는 모두 자신이 소속된 조직 안에서 결정했을 것이다. 나와 같은 무소속 인간은 누구로부터 제안을 받지 못했다.  같이 독서모임을 하는 친구들에게 제안할까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그들이 부담스러워한다면, 이 일로 그들과 가진 친화적 상태가 어색하게 되지않을까 조심스러워진다. 결국 내 안위 걱정이다. 난 이 캠페인을 확산하는데 일조를 못하지만 조용히 동참하기로 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촉구 일일 단식 동참합니다.' 어제 오후,  펫북에 동참소식을 올렸다. 당연해야 일을 당연하게 만드는는 사람들 안으로 한발을 들여놓고 싶다. 보름 넘게 단식을 하는 여의도 농성장 사람들에게 보내는 작은 소리가 되길 바란다. 


‘탁’과 ‘억’이 우리의 한 시대를 보여주는 것처럼, '퍽'은 우리의 현재를 재현하는 외마디이다. 이제는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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