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육아휴직. 그 이유.
초등학교 2학년 때쯤인 것으로 기억난다.
집 앞에서 놀고 있는데 저 멀리 아버지가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하려다 아버지를 놀라게 하려고 문 뒤에 숨었다.
아버지가 집으로 들어오는 순간 앞에 뛰어나가 인사를 드렸다.
"아버지 다녀오셨어요?"
잠시 뒤 내 머리에 불꽃이 튀었다.
아버지께서 쇠 도시락으로 내 머리를 후려치신 것이다.
"야! 놀랬잖아."
난 멍하니 있었고 아버지는 집으로 들어가셨다.
아버지는 무서웠다.
해병대, 그것도 그냥 해병대가 아닌 해병대 조교 출신이셨다.
예전 해병대는 구타가 심했는데 맞는 것도 힘들지만 때리는 것도 고역이어서
술을 드시고 때리는 경우가 꽤 있었다고 하셨다.
그래서인지 술을 드시면 난폭해지시는 경우가 많았고
그럴 때마다 난 왜 저러실까 의문을 가질 때도, 두려울 때도 있었다.
성장하면서 모든 감정은 분노로 바뀌었다.
직장생활을 하기 전까지 아버지는 두려움과 분노 외에 그 어떤 감정을 느끼게 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직장 때문에 고향을 떠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또 많은 아버지들을 만난 뒤에 아버지에 대한 감정은 조금 바뀌었다.
아버지보다 더 심한 경우의 아버지들을 많이 접하게 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약간의 이해, 그리고 약간은 측은함이 생겼다.
먹고살기 힘든 시절에 10남매의 장남으로 아버지가 짊어졌을 삶의 무게에 대한 성인으로서 이해였다.
그 이해를 바탕으로 아버지와의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내 삶 어디 한 구석에 아버지가 남겨놓았을지 모를 따뜻한 기억, 행복한 기억, 즐거운 기억이 있을 거란 기대를 가지고.
수십 번, 아니 수백 번을 더듬고 더듬어 보았지만,
단 한 조각의 기억도 찾질 못했다.
자식들 먹여 살리려고 노력했던 아버지의 삶은 행복한가?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자식과 단 한 조각의 좋은 기억을 공유하지 못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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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 언저리에 나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나와의 약속을 했다.
나는 내 자식에게 반드시 아무리 더듬고 더듬어 보아도 끝을 헤아릴 수 없는
좋은 기억, 따뜻한 기억, 행복한 기억, 즐거운 기억들을 남기겠노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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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십수 년 뒤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육아휴직을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