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까미노 21. 라떼스 ~ 타멜
• 구간 : 라떼스 Rates ~ 타멜 Tamel S. Pedro Fins
• 거리 : 27.1km
• 난이도 : ★★★☆☆
• 숙소 : 공립 알베르게 Casa da Recoleta (5유로)
동틀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그야말로 깜깜한 새벽에 알베르게 문을 열고 나온 건 순전히 이 파랑색 티셔츠 프랑스 할배 때문이다. #포르투갈1호알베르게 라는, #라떼스 지역 #공립알베르게 는 '이것이 알베르게' 라는 막연한 환상을 얼추 충족하는 곳이다. 변기 중간 커버가 없고, 마룻바닥 나무를 디딜 때마다 삐걱이는 소리가 나는 몇 가지 불편을 제외하면 '알베르게'라는 공간을 떠올렸을 때 어렴풋 떠오르는 어떤 낭만과 노마드가 머무는 날것의 공간, 같은 이미지에 부합한다.
그런 곳에서 여러 사람들과 함께 저녁 먹고, 와인 마시며 늦도록 수다 떨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밤새 잠을 설쳤다. 한번 잠들면 옆에서 누가 코핀 댄스를 춰도 모르는 내가 밤새 삐걱이는 바닥 소릴 얼마나 들었는지... 그 주범이 이 사람이었다. 피곤하지도 않는지 밤새 그렇게 복도를 왔다갔다하더니 새벽 4시쯤엔가는 일찍 출발하려는지 아예 배낭과 소지품을 들고 나와 복도에서 끊임없이 작은 소음을 만들며 패킹에 열중하는 거다. 대충 꾸려 얼른 떠날 줄 알았더니 그도 아니고, 또 한참을 부스럭부스럭.
새벽에 출발하려면 배낭 쯤은 전날 미리 싸둬야 한다. 기본 매너다. 도저히 견딜 수 없어 결국 잠자기를 포기하고, 전날 이미 다 꾸려둔 배낭과 잠자던 침낭만 복도로 들고 나왔다. 늦봄-초여름부터 이미 해가 뜨거운 포르투갈에서는 새벽잠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걷는 게 그새 버릇이 되었다. 현관 앞에 선 채로 침낭만 휘릭 접어서 배낭에 걸곤 출발. 세수도 하지 않은 채 말이다.
빛은 커녕 정말 동틀 기미가 없는 새벽 거리.
그래도 마을 가로등 덕에 #노란화살표 는 보인다.
문제는 마을 테두리를 벗어나면서부터...
하늘 저끝에 여명이 드는가 싶기도 하지만 마을을 벗어나면 가로등이 없다;
그저 암흑천지다.
그렇게나 좋아하던 #유칼립투스 군락이 그저 시커먼 한덩이 오브제로만 보이고,
포효하며 달려나올 무엇 같기도 해 보이는 새벽길.
물론 바닥도 비포장길이어서 혹시 잔돌을 밟고 자빠질까 발끝에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고 걷는다.
4km쯤 컴컴한 길을 발끝으로 더듬어 걸었을까...
그제야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불과 30분 전이었음 깨나 무서웠을, 그러나 빛이 있는 순간엔 마냥 좋은 유칼립투스 숲길.
숲 외곽에 이르니 멀리 마을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화살표는 오른쪽으로 향한다. #포르투갈길 뿐 아니라 다른 #까미노루트 에서도 종종 보게 되는 일. 어차피 천년 전 그 순례길과 완전히 같지는 않다. 근래 새로 구간을 정비하며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 까지 연결은 하되, 어떤 마을에서건 마을을 두루 한바퀴 돌아지나치도록 코스가 연결된다.
"이왕 왔으니 많이 좀 돌아보고 가." 라고 읽힌다.
"우리 동네 바bar와 레스토랑에 들러 돈 쓰고 가."는 아니겠지 설마 ㅋ
서울도 아닌데 시니컬하지 말자, 라고 마인드콘트롤.
화살표를 따라 오른쪽으로 직진하면,
그 담엔 좌회전.
다시 좌회전.
원점이다.
원점에 오면 다시 직진.
고만고만한 마을길을 걷는다.
그제서야 해가 돋는다.
화살표가 두 개다. 직진 코스, 그리고 왼쪽 골목길을 가리키는 또다른 코스. 이럴 때 필요한 게 #존브라이어리 #가이드북 .
정식? 까미노 루트는 직진, 왼쪽 방향은 산을 거쳐가는 #얼터너티브루트 다. 웬만해선 당연히 #직선 루트를 택하겠지만 오전이라 에너지가 가득한 상태. 게다가 아직 태양이 기세가 오르지 않아 시원했고, #유칼립투스 가 가득하다는데 가지 않을 리가.
오르막을 잠깐 오르면 곧바로 유칼립투스가 빼곡-
숲은 그리 길지 않다. 지도엔 4km 정도로 표기해두었지만 체감 거리는 2km 남짓.
숲을 벗어나면 곧 다시 인가.
그렇게나 영리하다는 흑돼지를 마당에 방목하는 어느 집 앞에 한참 서 있었다. 깨끗한 상태로, 이렇게나 넓은 공간에서 자유로운 돼지라니. 묘하게 어색한 느낌. 비돼지적인 풍경을 당연시하며 살아 그런가?
마치 성북동인양 싶은 산골 동네를 구비구비 걸어내려간다.
#리스본을 출발해 #파티마 에서 일단락한 게 엊그젠데 벌써 #산티아고 까지 199km 이정표.
한걸음한걸음 집중하며 진지하게 걸어야지, 한다.
좀 덜 복작이는 성북동 같은 풍경이 이어지고,
산을 내려와서부터 이어지던 돌이 타일마냥 다닥다닥 붙은 거리가 이어지는 골목을 나서면
바르셀로스를 상징하는 화려한 수탉이 먼저 반긴다.
이곳에서 다리를 건너면 #바르셀로스 . 이편은 아직 #바르셀리뇨스 다.
캄캄한 새벽에 걷기 시작해 걸으며 일출을 맞이하고, 오전 11시 즈음 바르셀로스에 닿았다.
제법 폭이 넓고 웅장한데 클래식하게 예쁘기까지 한 #까바도강 . 강 저편 구도심 풍경에 이미 설렌다.
그러나 현실은...
이렇게 폭이 좁은 인도를 조심조심 걸어야하는 순례자.
옆으로 가까이 지나가는 자동차에 팔꿈치라도 닿을까 어깨를 잔뜩 움츠린다.
강 건너편에서 보이던 성터에 오르면 바르셀로스 강변 풍경이 한번에 펼쳐진다.
지붕도 없이 거의 빈 벽만 남았지만 방 중앙에 무심하게, 하지만 묵직한 존재감을 발하는 석관 하나.
옆으로 바싹 다가가본다.
1284년부터 1322년까지. 그리 길지 않은 생을 살다간 어느 젊은 수도사의 일생이 손바닥 사이즈 흰 대리석에 새긴 기록으로 흔적만 남았다.
성을 나와 바르셀로스 구도심을 가로지르다가 긴 골목 끝에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바르셀로스관광안내소 .
도심 정중앙에 있어 쉽게 눈에 띈다.
관광안내소 정면으로 펼쳐지는 4월25일 혁명 광장.
1974년4월25일.
포르투갈에서 일어난 #카네이션혁명 .
1974년 언저리 포르투갈을 살던 사람들은 40여년간 이어온 살라자르 정권의 독재와 아프리카 식민지들을 상대로 한 전쟁에 지쳐 있었다. 독재와 전쟁에 반대하는 젊은이들이 전면에 나섰고 이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이 총구에 카네이션을 꽂으며 화답했다.
결국 평화로운 무혈 쿠데타로 해피엔딩을 맞은 4.25혁명의 진짜 배경은 이미 까미노 초반에 지나쳤던 #산타렝 이지만, 포르투갈 곳곳에 기념탑과 장소 등이 존재한다.
이렇게 큰 도시에서 하루쯤 머무르며 구석구석 돌아보고 싶지만, 다음날 걸을 거리가 35km나 되는 걸 감안해 조금 더 걷기로 한다.
도시 외곽으로 향하는 화살표를 따라서 바르셀로나 중심가를 벗어난다. 옮기는 걸음걸음 아쉬움이 가득하지만, 다음날 34.9km를 한번에 걷기는 싫어서.
마치 당산 발전소 인근 한적한 지대를 걸어 상수에서 합정으로 옮겨간 듯 건축 밀도가 낮은, 다소 한적한 거리를 잠시 걸으면 다음 마을 빌라보아 .
들판과 모던한 주택이 대치하는 한낮 소도시.
오가는 사람은 없고, 오로지 더운 공기만 빈 거리를 가득 메운다.
마을을 벗어날 무렵. 역시 문 활짝 열린 세메터리를 지난다. 마을 안팎 경계 어느 지점, 혹은 성당 안뜰이나 지하실 등. 유해를 안치해둔 곳이 많아 그런지 유럽에선 유독 이런 공간들이 낯설지 않다.
삶과 죽음간 경계가 옅어지고 죽음 역시 삶의 일부란 걸 자연스레 받아들여지는 이상한 효과.
어디서부터 걸었는지 갑자기 나타난 무리. #까미노루트 공사중이었는지, 진행 방향에 대한 표기가 명확치 않고 이 사람들은 그 근처를 돌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다행히 길눈은 밝은 편이어서 지도 꺼내 방향 살피고, 길 진행 방향을 보려니... 그냥 쭉 가도 될 것 같다. 자신있게 앞장서며 할배들을 불렀고, 다행히 방향이 맞다.
이곳 역시 도로 정비 작업에 박차를 가하는지 길에 나뒹구는 돌덩이를 피해
주위를 살피며 걷다 보면
#산티아고까지 189km를 알리는 표지석 .
이제 아마도 이날 마지막 코스. 오르막이다.
산으로 오르도록 방향을 안내하는 #노란화살표.
가이드북에서 제시한 것보다 훨씬 빠르네? 했더니 표지판 아래에 알베르게까지 2.8km 남았다는 수치가 뜬다. ;
2.8km면 거의 45분 소요 . 갈 길이 멀다, 아직-.
농번기에 한창 바쁜 농부를 지나
잘 닦인 산옆길을 오르면
마저, 더, 계속 올라가야 한다.
이 즈음에서 2km 구간 내 고도가 100m 가량 높아지기 때문.
마침내 따멜에 닿으면
국도 옆 좁은 보도로 1km쯤 걸어야
비로소 알베르게에 닿는다.
#따멜공식알베르게 #레꼴레따알베르게
아직 오픈시간이 되지 않은 관계로 배낭으로 줄을 세우고,
사람들은 옆 벤치 혹은 잔디밭에 누워 시간을 번다.
누군 책 읽고, 누군 가이드북 확인하고, 또 누군가는 가족과 통화도 하다보면 어느덧 오후 2시.
#알베르게공식오픈시간 이다. 물론 늦어지는 곳은 오후 4시쯤 오픈하기도 한다.
후다닥 씻고 나와 알베르게 곳곳을 기웃기웃 살핀다.
알베르게에서 가장 좋아하는 코너. #트레이드박스.
안 입는 옷이나 안 쓰는 소지품을 놓고, 필요한 무언갈 가져오면 된다. 간혹 둘 게 없어도 필요한 물건을 가져갔다가 다음 기회에 또 뭔갈 나눠도 된다. 무려 25일이나 배낭에 넣고만 다니다가 한번도 입지 않은 스포츠웨어 팬츠 하나를 결국 이곳에 털었다.
볕에 빨래는 말라가고 있고,,
밖으로 나와 동네 한 바퀴.
내일 걸어갈 루트가 어디로 연결되는지 미리 화살표 위치를 챙겨보는 것도 좋다.
산 중에 있는 작은 마을 알베르게여서 10분 채 걷지 않아 마을구경을 끝내고, 마을에 딱 하나 있던 레스토랑 메뉴는 그리 솔깃하지 않아 포기하고 일찍 자기로.
마을 성당 뒷뜰에 알베르게가 위치한 터라 성당 종탑 위치만 확인하면 된다.
따멜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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