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급 엄마고 싶었는데

실상은 아이와 정신과 다녀온 이야기

by 그냥 엄마

지난 세월은 잊고 브런치를 먹으러 다닐 줄만 알던 대한민국 서울에 사는 직장인, 21년 차 디자이너, 대치동 한복판에 정글과 같은 고등학교 3학년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살고 있었다.

06년 12월이 다 가기 전에 3.85킬로 건장한 천사로 찾아왔다. 잠도 잘 자고 밥도 잘 먹고 순둥 하게 잘 울지도 않고 무엇보다도 아이는 이뻤다. 산후조리원에서부터 모델로 발탁되었고 조리원 창문 너머로 다른 산모들은 혼혈 아기가 들어온 것 같다고 할 때 엄마는 아들이 1등급의 삶을 살아주길 바란 시작이었는지도 모른다(몸무게만 봐도.. 상위에 속한다)


순하고 잘생긴 아이 7세 의도치 않게 영유로 옮겨 a.b.c 알고 갔지만 곧 월반을 했다. 오랫동안 다닌 다른 학부모의 시기 질투가 느껴졌다. 하지만 그분들이 영유 끝나고 커피 마시러 다닐 때 아들은 영유에 엄마는 직장에 있었다.


엄마가 치맛바람을 일으키지 않아도 먼저 모델을 하자는 제의도 오고 (근데 끼가 없었다.. 두 번은 안 부르시더라.) 초등학교 때는 모 어린이 1년 모델도 하고 내성적이었지만 매년 꼬박꼬박 학급 임원을 하고 상은 빠지지 않고 받아오고 초등학교의 하이라이트 전교 회장도 하게 되었다.

축구를 안 하는(못하는이 할 수 없는 게 한 번도 안 했다) 남자아이가 학교 전교 회장이 되는 일은 흔치 않았다.


이런 시간들이 흐르면서 부모 특히 엄마는 직장맘의 초라한 어깨에 완장 같은 기분을 느꼈는지도 모른다. 대치동 언저리 살면서 남들이 유명한 학원들에서 아이들을 교육시킬 때 그런 거 없이도 우리 아들은 잘할 거라고 믿고 믿었다.


사실 근거는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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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 2 때 한 검사와 초 5 때 한검사가 그것이었다.

상위 0.7%, 상위 0% 라는 숫자에 남편은 (비) 웃었지만

엄마 어깨는 힘이 잔뜩 들어가게 되었고 우리 아이는 다른 집 아이처럼 열심히 안 시켜도 1등급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생각하는 오만과 잘못의 시작이었던 것 같다.


중등도 초등과 별반 다르지 않게

초등의 위상이 중학교까지 아이를 따라다녔고 3년 내내 학급 임원을 하고 중요한 상은 다 받아왔다

상을 방에 걸지 않았다. 그건 가끔 받아오는 애에게 하는 거라 생각했던 걸까?

(이때의 교만.. 어쩔까... ㅠㅠ 부끄럽고 부끄럽다.)


하지만

서론이 이렇게 길다는 건... 뒤에 나올 이야기가 더 반전이라는 거... 겠지?


아이는 사교육 1번의 제일 좋은 학교를 1 지망을 써냈고 안될 때를 대비해 2 지망도 썼다.


하지만.

결과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그러나 좋은 학교였다.) 집에서 조금 먼....

학교로 아이가 다니는 중학교에서 딱 2명이 배정되었는데 그중 한 명이 아이였다.


그래.. 괜찮아..라고 읊조렸지만

사실 괜찮지 않았다. 나도, 아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