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성축농증

엄마는 아프면 안된다

by 로아레테


오늘 나는 급성축농증 진단을 받았다.


아이가 크게 감기를 앓았다. 마이코플라즈마 폐렴의 경계까지 갈 정도로 콧물이 가득 차서 숨을 쉬지 못하고, 눕기만 하면 터져 나오는 기침 때문에 매번 아이는 앉아서 쪽잠을 잤다. 올해 어린이집을 다니면서 단 한 번도 입맛이 떨어진 적 없던 애가 처음으로 밥을 거부했다. 40도까지 찍는 고열에 끙끙 앓아대니 자다 일어나서 수시로 열을 재고 미지근한 물을 적신 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었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수준의 감기였다.


지난주는 나랑 남편에게 매우 중요한 주였다.


남편은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사가 있던 시즌이었고, 나는 외국에서 오는 고객사를 맞이하며 하루에 2~3건씩 있는 미팅을 조율해야 하는 시즌이었다. 혼자 참석하는 미팅이라면 차라리 미루기라도 할 텐데, 상사를 모시고 참석해야 하는 미팅이다 보니 일정 조율도 여의치 않았다. 결국 남편과 나는 번갈아가며 휴가를 썼고,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은 반차를 쓰고 남편과 회사에서 아이를 맞교대했다. 집에서 교대하기엔 회사까지 오는 출근 시간이 너무 걸렸다. 교대하며 출근하는 날은 밀린 업무를 급하게 해치우고 부랴부랴 퇴근했다.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한 주를 보냈으니, 사고가 안 난 게 용할 정도였다.


열흘을 꼬박 앓고서 아이의 몸상태가 그나마 '정상'에 가까워졌다. 그 사이 나랑 남편은 감기에 옮았는지 골골거리기 시작했다. 첫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건 나였는데, 몸살과 콧물로 끙끙 앓았다. 살면서 콧물을 이렇게 많이 흘린 적이 없었는데 뇌까지 콧물이 가득 찬 기분. 하루에 반 통 가까이 휴지를 쓰면서 코를 풀었고 자다가도 콧물 때매 숨이 막히니 계속 깨서 코를 풀었다.







단순 감기겠지, 안일하게 넘겼다가 냄새를 맡지 못하자 심각함을 깨달았다. 아파트 정화조 청소한다고 아침에 냄새 때문에 난리였는데, 출근하는 내내 그 '구린내'조차도 맡질 못했다. 지독한 정화조 청소 냄새도 맡을 수가 없다고? 코로나 때 미각이 마비되었던 경험을 떠올리며 혹시나 싶어 허둥지둥 병원에 방문했다.


- 콧물이 뇌까지 찬 거 같아요. 무엇보다 냄새를 맡을 수가 없어요.


내 설명을 가만히 듣던 의사는 축농증 증세가 의심되니 X-ray를 찍어보자고 하셨다.


축농증? 비염?

살면서 한 번도 겪어본 적도 없는 질병이 언급되자 다소 당혹스러웠다. 설마 하겠지 하는 마음은 X-ray 사진을 마주하는 순간 눈 녹듯 사라져 버렸다. 30대 중반에 적나라하게 마주한 내 골격 사진은 당황스러웠다.

X-ray 사진에 드러난 오른쪽 뺨과 비강에는 염증이 가득 차서 검은 공간이 보이질 않았다. 원래 안구와 뇌를 제외한 공간은 비어있으니 검게 보여야 정상인데, 농이 가득 차니 검은 공간 자체가 사라졌다. 확실히 정상은 아니네. 시각적으로 납득이 되니 그동안 힘들었던 이유를 알았다.


- 급성 축농증이니 1~2개월은 약을 먹으면서 치료해야 합니다. 우선 5일 치 약 드셔보시고, 금요일에 다시 내원해 주세요.


약을 받고 터덜터덜 병원에 나오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라서 인 걸까, 아니면 30대 중반에 접어들어서인 걸까.

젊을 때보다 몸은 계속 아픈데 병원은 그만큼 덜 가게 된다.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는 것조차 일이고(아이러니하게 회사를 다니는 평일에는 차라리 점심시간이나 반반차를 써서 가기 편하다) 내 몸이 아프더라도 휴가를 내고 애를 아예 안 볼 수도 없다. 농이 가득 차서 숨을 못 쉬더라도 애는 돌봐야 한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연령이 아니니 밥도 먹이고 목욕도 씻겨야 하지. 아이 있는 삶과 없는 삶의 차이인가 싶어 한숨이 나온다.


어릴 때 엄마는 아프더라도 병원에 잘 가질 않았다. 매일 골골거리면서 병원에 안 가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엄마가 병원에 자주 가지 않았는지 이해가 된다. 연년생 딸 둘을 데리고 병원에 가는건 엄마입장에서는 상당히 큰 일이었을 거다. 그나마 병원에 그나마 들락날락한건 어느정도 말귀를 알아먹는 중학교 시절이었다는 것도.


아프니 그제서야 어릴때 엄마와의 추억을 다시 떠올려본다.


딸은 엄마와 살았던 삶의 궤적을 평생 그리워하며 밟아간다고 한다.

잊어버렸던 낡고 희미한 기억을 다시 끄집어내며,

'엄마는 아프면 안된다'라는 낡은 격언을 되새기며,

엄마가 되서야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엄마의 행적을 조금씩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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