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살이 Nov 18. 2023

LG UX디자이너로서 첫 프로젝트(2)

퇴사 기념, 잊지 않게 기록하기

UI 설계와 GUI 디자인 담당자들끼리 모여 와이어프레임을 구축하단계였다.

사실상, 시간이 없어 나랑 UI 설계 담당자가 실시간으로 얘기하며 화면을 쳐내고 있었다.


우리의 메인 컨셉은 모바일 앱을 통해 IPTV를 제어하고, IPTV를 보면서 모바일로 고객들 간의 실시간 소통과 공유를 하는 기능을 도입하는 것이었다.


메인 화면을 설계하면서 한 주제에 대한 의견 충돌이 있었다.

그리고 이때 나는 선배들에게 수준 미달이라는 발언을 듣게 되었다.




인턴 생활을 하면서 단순히 내가 말하고 있는 프로젝트만 신경 쓸 수 없었다.

당시 센터에 5개의 팀이 있었는데 팀과 사람들과의 교류도 놓칠 수 없었다.


목적은 UX센터에서 분야별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어떤 분위기인지, 또 서로 얼굴을 트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첫 직장 생활이다 보니 모든 게 불편했고 나는 항상 점심을 먹고 나면 체했다.


그리고 업무시간에 각 팀의 팀장님과 책임급의 팀원  분이 들어와 팀의 목표, R&R 등등을 알려주셨다.


LG화 되어있는 보고 문서 양식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당시 꼰대라고 소문난 팀장이 있었다.

선배들은 우리에게 말했다. 출근, 퇴근 때마다 센터 전체를 돌면서 인사를 해야 한다고.

아니면 좋게 보지 않을 것이라고.


고등학교 때부터 꼰대 문화를 거친 나로서는 솔직히 그 이야기가 달갑지는 않았다.

'인사'라는 것은 인간 대 인간으로서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권력을 이용한 억 누름 같았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나는 이제 막 들어온 신입. 동기들과 나란히 손을 잡고 출근, 퇴근마다 센터 전체를 돌면서 안녕하십니까,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를 외쳤다.




매일 아침 5 반에 기상해서 회사 셔틀버스를 타고 8시에 도착하면 출근시간인 8 반까지 책상에 앉아 기다렸다.


아침잠이 많아 학교 다닐 때 오전 수업은 절대 듣지 않았던 나에게는 고역이었다.

버스에서 잠을 잘 못 자는 스타일이라 뜬 눈으로 풍경을 바라보며 한 시간 반을 달려갔다.


모든 직장인들에게 경이로운 나날들이었다.

돈을 벌기 위해 이런 고통과 힘듦을 뚫고 다닌다니.

하지만 여기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인정받지 못 한 나였다.


모바일로 IPTV를 제어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큰 목표였고

그 안에서 실시간으로 고객이 보고 있는 프로그램 명, 채널 이동 등의 기능이 들어가길 원했다.


또, IPTV를 볼 때에 대부분의 고객들이 원하는 카테고리에서만 채널 탐색을 하고 시청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래서 모바일 앱 내에 고객이 직접 카테고리를 만들어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넣고 해당 프로그램이 방영하면 바로 안내 및 이동할 수 있게 했다.


채널 이동이야 TV를 보면서 가장 메인 행동이니 모바일로 제어하고자 의도했으면 당연지사 들어가야 했고 UI에서 가장 이슈가 됐던 것은 바로 공간 활용이었다.


매번 UI 설계를 할 때마다 겪는 그 순간!

휴리스틱의 법칙, 시선의 흐름 등을 고려해서 인지 더 어려운 순서와 배치.


당시 동기들과 논쟁이 일어난 것은 바로

방영하는 프로그램으로 바로 이동하는 버튼을 프로그램 명 옆에 둘 것인가, 아님 밖으로 뺄 것인가’였다.


위에 말했던 것처럼 사용자가 원하는 카테고리를 만들 수 있게 기능을 제안했다.

각각의 카테고리는 하나의 블록 영역으로 묶어놨다.


UI 설계하는 동기와 GUI 디자인하는 동기는 프로그램 명 옆에 버튼을 넣길 원했다. 공간 활용이 목적이었다.

버튼을 블록 밖으로 빼면 버튼의 영역을 따로 만들어야 했다.


나는 달랐다. 버튼은 블록 밖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동기들이 그 이유를 묻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밖에 있어야 할 것 같아”


아, 이 얼마나 무책임한 말인가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정말 과거의 나를 때리고 싶지만 그땐 그랬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각 동기들의 멘토(사수)와 같이 있었다.

처음은 나도 무엇이 잘못됐는지 몰랐다.

며칠 뒤에 사수가 나를 불러서 얘기해 줬다. 근거 없는 의견은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설득력이 떨어지는 말, 그리고 UX디자이너라면 가져야 할 자질이 없어 보인다는 뉘앙스로 말씀하셨다.


나는 너무 부끄럽고 창피했다.

그리고 다시 느꼈다. 이곳은 내가 실력으로 온 자리가 아니구나.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어서 혼자 끙끙 앓았다.


자책도 했다가 내가 거기서 무엇을 얘기했어야지 회고도 해보고 울기도 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100% 합격이었겠지만 나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얘기를 들었다는 것만으로 이 회사를 다니기 싫어졌다.


그 이후로 회의할 때마다 나는 위축됐다.

사수가 들어오면 말을 아꼈다.

그리고 버튼은 프로그램 명 옆에 자리 잡았다.





작가의 이전글 LG UX디자이너로서 첫 프로젝트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