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일영
인생의 목표가 ‘선’인 사람이 있을까? 지구 어딘가에 있겠지만 일단 나는 아니다.
새해를 맞아 경건한 자세로 주름 없이 빳빳한 다이어리를 펼친다. 그리고 올해, 이번주, 아니면 내일 단 하루의 목표를 적는다고 생각해 보자. 올해의 목표로는 옷장에 묵혀있는 옷들처럼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목표들을 적고, 가까운 목표로는 마감기한이 코앞인 투두 리스트를 적으면 적었지, ‘착하게 살기’라는 다섯 글자를 적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당연히 ‘선’이라는 목표가 없다고 해서 악한 사람인 것은 아니다. 나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 다만 피해를 주지 않는 0의 상태를 넘어 +로 향하는 삶을 특별히 지향하지도 않는다. 나에게 선행은 우연한 것, 복잡한 지하철역에서 길을 물으시는 할머니께 지도를 뒤적여 방향을 알려드리고는 하루종일 뿌듯함을 느끼는 그런 것이었다.
그러니 <굿 플레이스>를 보면 저 문턱이나 밟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고고해 보였던 인물들도 사실 배드플레이스에 속한다는 비밀이 밝혀졌으니 말이다. 대규모의 선행을 실천한 타하니는 의도가 불순해서, 윤리적인 선택을 하려던 치디는 우유부단함 때문에 주변을 고통스럽게 해 굿 플레이스에 가지 못했다. 설상가상으로 현대사회에서는 선행으로 보이는 행동들의 이면에 수많은 감점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장미꽃 한 송이를 사더라도 그 꽃을 다듬은 노동자의 노동환경, 꽃을 주문한 휴대폰을 생산한 노동자의 노동환경, 배송과정에서의 탄소발자국까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부작용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사례에서 추론해 보면 참된 선행은 의도와 결과가 모두 선하며 선이 마이너스되는 부작용이 없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그래서 일주일 간 실험해 보기로 했다. 배드플레이스 낙점이었던 내가 선행 마일리지를 어디까지 쌓을 수 있을지를.
하지만 등골이 싸늘해지는 질문이 스쳐 지나간다. 이 글을 쓰기 위해 선행을 한다면 내 의도는 올바른 것일까?
선행을 하려면 흐릿해진 내 선의 기준부터 바로잡아야 했다. 역사적으로 선에 관하여 의도와 결과 중 무엇이 선을 판가름하는지 열렬히 논의되어 왔다. 이 구도는 비단 선행만이 아니라 연인 간의 다툼을 비롯해 삶의 크고 작은 일에서 좁히기 힘든 가치관의 차이를 만드는데, 나는 의도가 훨씬 중요하다는 입장이다. 인간은 불완전하고 미래는 예측 불가하기 때문에 결과는 의도한 대로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치디처럼 윤리적인 선택을 하려다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다른 사람들을 곤란하게 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행동의 출발점이다. ‘의도’라는 것에는 이 사람이 어떤 성별인지, 막내인지 맏이인지, 대전 출신인지 서울 출신인지, 급박한 상황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포기하는지 등 생각보다 많은 정보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의도에 상관없이 뒷걸음질하다 좋은 결과가 얻어걸렸다면 그건 선행이 아니라 수많은 우연의 가능성 중 하나일 뿐이지 않을까.
하지만 이번 챌린지의 취지는 일주일 간 선이란 무엇인가를 몸소 느껴보는 것이기 때문에 이런 전제에서 벗어나 최대한 귀납적으로 접근하려고 한다. 먼저 그동안 내가 실행했던 선행과 악행을 나열해 보았다.
항상 걷기와 대중교통 이용
철저한 분리수거
대나무 칫솔 사용
음식 남기지 않기
길거리 전단지를 받지 않음
지하철역에서 치고 지나가는 사람이나 새치기하는 사람 마스크 속에서 욕하기
노동환경이 열악한 걸 알면서도 쿠팡에서 물 주문
플라스틱 잔에 든 커피가 맛있다는 이유로 잦은 일회용 컵 테이크아웃
쓰고 보니 선행이라 할 만한 것들이 참 없다. 나름 올바르게 살았다고 자부해 왔는데, 그저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도리만 지킨 것일지도 모르겠다. 미디엄 플레이스의 민디와 한 살림을 차리기 직전이다. 선행 챌린지가 시급하다.
나에게 마이클의 점수 시스템은 없으므로 챌린지는 철저하게 아날로그 수기 방식과 기억력에 의존해 진행된다. 하루하루 나의 행동들을 아래의 선행 채점표로 채점한 뒤, 일주일 간의 점수 합산결과가 +이면 굿 플레이스행, -이면 배드플레이스행이 결정된다. 아래는 다사다난했던 7일간의 기록이다.
3월 6일(월)
개강 날 함께 강의실을 헤매다가 찾아준 분께 수업이 끝나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올렸다. 평소에는 민망해서 굳이 다시 감사인사를 하지 않지만 그분에게도 작은 기쁨이 될 수 있으니 덕분에 강의실에 잘 올 수 있었다고 말씀드렸다.
저녁에는 친구가 안 쓰는 식탁을 만원에 중고거래했다. 새로운 자원을 소비하지 않았다는 뿌듯함이 꽤 컸다. 그러나… 최근에 이사를 해서 그 외 다른 모든 집안살림을 정말 많이 배송시켰다. 사는 데 굳이 필요하지 않지만 있으면 좋은 것들도 많이 시켰다. 사진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공교로운 이사 타이밍으로 위태로운 챌린지가 시작되었다.
3월 7일(화)
나의 작은 악행 리스트에 ‘전단지 무시하기’가 있었는데, 받지 않을 때마다 추운 날씨에 저분의 노동시간을 연장시킨다는 생각에 죄책감을 느꼈었다. 이번에는 길거리 헬스장 전단지를 덥석 받아왔고, 마땅히 버릴 데가 없어 집까지 와서 분리수거를 했다. 헐벗은 PT 선생님들이 대문짝만 하게 있어 조금 감추고 싶었지만 무사히 들고 왔다.
오늘의 위기는 홍대입구역 9번 출구 앞에서 찾아왔다. 사람이 가뜩이나 많은데 한 택시가 사람이 있는데도 슬금슬금 지나가려고 해서 가벼운 욕을 날려버렸다. 인간의 생존본능이었다고 합리화하고 싶다. 순간의 화를 참는 수련이 필요하다.
3월 8일(수)
쇼핑몰에 가서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는데 비닐봉지 하나가 걸려 있었다. 틈새에 끼어있진 않았지만 안전사고가 날 수 있어 봉지를 집어 바로 앞 쓰레기통에 넣었다. 평소에 하지 않았을 행동이라서 나를 칭찬해주고 싶지만.. 봉지를 집으러 가는 순간 “헐 나 선행해야 돼!”라고 말하며 챌린지를 과하게 의식했다는 점을 양심고백한다.
3월 9일(목)
필름을 현상하러 을지로에 갔다가 이 표지판을 발견하고는 집에 붙이고 싶은 욕망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것까진 괜찮은데 가방 사이즈가 표지판보다 작아서 어쩔 수 없이(?) 검은 비닐봉지를 받았다. 이 비닐을 내가 오래오래 잘 쓴다면 조금이나마 환경적인 영향을 줄일 수 있을까..?
3월 10일(금)
학교에서 수업을 듣고 프린트를 하러 캠퍼스를 뺑뺑 돌아다니느라 몸이 고되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편리함을 핑계로 나의 점심식사가 죄다 일회용품에 담겨 있었다. 스타벅스 샌드위치, 물, 그리고 물티슈… 텀블러를 가지고 다니자고 백번 다짐했는데 오늘도 놓고 왔다.
집에 가는 길에 아이스크림 할인점을 들렀다. 점심식사의 죄책감 때문에 이번에는 비닐을 쓰지 않으리라 다짐하며 가방에 아이스크림 8개를 욱여넣고 집에 왔다. 지나가는 분들은 내가 아이스크림 장수인 줄 알았을 것이다. 커피를 사서 들어가려고 했지만 텀블러 사용을 위해 집에 올라가서 텀블러를 챙겨 다시 나왔다. 플라스틱에 먹는 커피가 제일 맛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먹는 커피에서 뿌듯한 고소함이 느껴졌다.
3월 11일(토)
을지로 카페를 갔다가 길을 걷고 있는데 한 할머니께서 명동성당에 가는 길을 물어보셨다. 평소에도 왠지 모르게 나에게 길을 물어보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나는 타고난 길치다. 이번에도 네이버 지도를 뒤적여 두 번째 횡단보도가 나오면 건너지 마시고 왼쪽으로 가시라고 길을 알려 드렸다. 할머니들보다 내가 잘 아는 것이 지도 앱 사용법밖에 없어서 그런지 할머니들께서 고맙다고 해주시면 그렇게 뿌듯하다!
3월 12일(일)
오늘은 챌린지의 마지막 날! 오전에는 버스에 앉아 있다가 다리가 불편하신 분이 타셔서 얼른 자리를 비켜 드렸다. 그리고 오후에는 작은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 2회를 저질렀다. 딱히 급한 상황도 아니었는데 차가 안 와서 급한 성미에 훅 건너버리고는 아차 싶었다.
이렇게 챌린지를 마무리하고 드디어 심판대에 섰다. 일주일 간의 결과는 굿 플레이스를 향할 것인가, 배드플레이스를 향할 것인가. 판사도 나지만 최대한 공정하게 먼발치서 내 행동들을 바라봤다. 특히 ‘의도가 선한가’ 항목에는 챌린지를 하지 않더라도 실천했을 행동들에만 +5점을 매겼다.
뜻밖에 나의 굿 플레이스행이 결정되었다. 그런데 개운하게 굿플레이스에 가기에는 마음에 걸리는 점들이 많다. 첫 번째는 선행이 굉장히 소소하다는 점이다. 작품 초반에 등장하는 가짜 굿 플레이스에는 한평생을 남을 돕는 데에 바친 사람, 단식 투쟁도 불사한 사람들이 나온다. 나의 선행을 실제 시스템에 적용하면 0.0001점 정도만 플러스되거나 심지어 아주 기본적인 윤리여서 카운트조차 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두 번째는 선행의 다양성이다. 일주일 간 실행한 15개의 행동 중 환경에 관한 것이 6개로 거의 반을 차지한다. 평소에 선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해보지 않은 탓도 있지만 요청하지도 않은 도움을 제공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원치 않는 호의는 선행이라고 하기 어렵지 않을까? 하지만 여전히 이것도 핑계다. 유기견 보호소나 복지시설에 일일 봉사활동이라도 다녀왔으면 좋았을 텐데 게으름 때문에 실천하지 못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나 동물들은 많고, 내 생활의 틀 안에서만 생각하면 당연히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일주일을 돌아보면 부족했던 것은 챌린지에 대한 기억력이나 선악이 무엇이냐 하는 관념들이 아니라 상상력이었다. 보이지 않았던 곳을 생각하기 위해서는 큰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력이 선행으로 이어지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나도 나름대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차별 없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고, 모두가 덜 힘든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이상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에서 행동으로 가는 길은 길보다는 점프대에 가깝고, 순간도약을 위해 멀리뛰기 선수에 버금가는 파워와 결단력이 필요하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 매일 하던 행동들을 조금씩 바꾸려고 했던 일주일이었다. 더 적극적으로 선행의 기회를 발굴하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마지막으로 소극적이었던 나와 고민 많은 치디를 동시에 변호하는 듯한 이슬아 작가님의 신작 <날씨와 얼굴>의 한 구절을 소개한다. “자신의 선택이 모두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자아도취적으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보다 나쁜 건 자신의 선택이 아무한테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믿는 자기기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