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함을 가시는 데엔 별 도움 안 되는 책

알랭 드 보통, <불안>

by Robinsoon


이렇게 인간성을 통찰력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유용하기는 하지만, 한 가지 불리한 점은 이런 관점을 따를 경우 친구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요즘 들어 '나는 참 마음 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가 없구나.'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그런 친구를 찾지 못해서 일까 아님 상대가 누구든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없는 내 특질 탓인 걸까. 우울해지는 밤에 무작정 전화를 걸 수 있는 상대가 없다. 쇼펜하우어는 "이 세상에서는 외로움이냐 천박함이냐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했지만 나는 속물적이고 천박한 기질을 가졌음에도 외로움에 몸부림치고 있다. 나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닌갑다.


근 몇 년 동안 자주 접하게 된 알랭 드 보통은 단어나 문장에 일상적인 요소를 넣으려 노력하는 작가다.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할 때는 돌려 말하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언어에서도 좀 더 직설적으로 번역할 여지는 있다. 위에 보이는 예시의 경우, '인간성을 통찰력 있는 눈으로 바라보는 것'은 '사람을 가린다' 정도로 의역이 가능할 게다. 그렇게 되면 문장의 전후 연관성이 좀 더 견고해진다. '사람을 가리면, 친구가 줄어든다.'


사람을 가리는 건 나쁜 걸까? 여기서 생각해볼 건 그 기준의 문제다. 상대의 지위나, 재산 정도, 혹은 학력 따위로 구분해서 사귀는 건 일반적으로 부정적으로 인식된다. 거기에 대해서는 일단 차치해 두고 좀 더 다른 방향에서 해석해 볼 때 상대의 개성, 혹은 나의 성향에 따라 사람을 가리는 건 어찌 보면 나에게 맞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불안이 인간만의 감정은 아닐게다.


같이 밥을 먹거나, 영화를 보거나, 술 한 잔 하거나, 하루 종일 말 한마디 나누지 않고 옆에만 붙어 있거나, 아니면 같이 살거나. 누군가와 같이 보내는 시간을 통해 그 사람을 알아가고 나한테 맞는지 재어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그 사람과 같이 있는 게 나은지 아님 그냥 혼자 시간 보내는 게 나은지. 막연한 기준이지만 나한테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그것뿐이다. 같이 있는 게 나은가, 아님 혼자 있는 게 나은가. 혼자 있는 게 낫다고 생각하면 주저 없이 등을 돌린다. 가차 없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나는 나의 시간이 소중하다. 혼자 있으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운동을 할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내 안에서 나라는 농도가 높아진 느낌이 든다.


지금보다 더 나은 모습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때 동등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우리보다 더 나은 모습을 보일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낀다.

혼자가 아님에도 누군가와 같이 있을 때에도 그런 느낌이 종종 들 때가 있다. 입에서는 마음에 있던 말이 필터링 없이 뻗어나오고 어떤 행동을 해도 서로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상대. 서로에 대해 깊게 알고 있기에 이상하다는 말이 오히려 이상해지는 그런 관계. 서로가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들 때 그 관계는 사랑이나 우정으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그런 사람과 사귈 때에도 불안은 시시때때로 엄습한다. 내가 좋아하는 만큼 상대는 날 좋아할까, 같이 있을 때 따분해하던 내 마음이 들킨 것은 아닐까. 컵 속에 담긴 물이 약간의 움직임에도 출렁이듯 관계가 지속될 때 시간이 지나면서 드러나는 불확실함은 느닷없이 나를 엄습하고 그 관계마저 불안하게 만든다.


역사학을 전공한 알랭 드 보통은 대상을 할 때 통시적인 관점을 많이 활용한다. 어떤 책을 읽어도 다양한 문화권의 역사에서 근거를 찾는다. 목차를 보면 철학적이지 않게 요즘 유행하는 사이다스런 방법으로 구성해놨다. 앞부분은 '원인', 뒷부분은 '해결'이다. 다 읽으면 어찌할 수 없는 내 안의 불안을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도 갖게 한다.



하지만 그가 제시한 원인과 해결이 상당히 설득력 있어 보임에도, 내 안의 불안은 가시지 않는다. 삶과 관계의 불확실성은 그 방대함과 다양한 형태 때문에, 몇 가지 공식을 갖고 대입해도 거기서 나온 답은 애매해 보인다. 불안하지 않은 삶을 살고 싶다고, 내 불안함을 덮어줄 누군가를 찾고 싶다고 말도 안되어 보이는 희망을 품어보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희망에 찬 그 시간만큼은 불안이 가신 듯한 느낌이 드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