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soon Jul 20. 2019

3인칭의 거리감

1년이 넘어 끝을 맺게 된 여행기

 게하 로비에서 마신 위스키는 맛이 없었고 셋이 나눴던 대화는 기억에 남지 않았다. 이번 여행도 쏘쏘한 걸까 생각하며 테이블을 정리하고 잔을 씻은 뒤 밖에서 담배 한 대 피고 들어왔다.


 그런데 각자의 방에서 씻고 잘 준비를 하고 있을 예정인 친구와 여자는 외투를 입은 채 로비에 나와 있었다. 웃긴 건 여자가 입은  내 코트였다는 점이다. 그녀의 코트로는 제주도의 겨울바람을 막기 힘들어서인지 친구는 지 멋대로 내 코트를 그녀에게 덮어줬다. 180이 넘는 나한테도 무릎 아래로 내려올 정도의 길이라 코트는 마치 보자기처럼 그녀의 전신을 덮었다. 빈티지 매장에서 산 거라 살짝 냄새가 날 거라 생각했지만 별 상관없었다. 내가 빌려준 것도 아니고. 나는 따로 챙겨 온 패딩을 입고 셋이 밤 산책을 나갔다.


 숙소에 들어올 때만큼 바람이 차진 않았지만 외투가 없었으면 추웠을 날씨였다. 이 여행을 한 편의 영화로 본다면 사실 그 시간이 제일 로맨틱한 장면이었다. 친구는 애 같은 면이 있어서 가끔씩 무모한 행동을 한다. 예를 들면 주인이 없어 관리가 안된 밭에 들어가 당근 서리를 하거나 모래사장에서 큼직한 조개를 주워온다든지. 여자는 그런 의외의 친구의 행동을 보고 쉬지 않고 웃으면서 뽑아온 무나 당근에 구멍이 많이 뚫린 걸 보고 신기한 듯 웃었다. 꽤 진심으로 우러난 웃음 같았다. 뭔가 조금씩 맞지 않았던 둘이었지만 그 시간만큼은 서로의 합이 잘 맞는 것 같았다. 역시나 3인칭 관찰자 시점인 나는 혹시나 밭의 주인이 달려오지 않을지 긴장하면서 보고 있었다. 다행히 주인은 달려오지 않았다. 로맨틱한 것들은 지들이 민폐가 될 수 있다는 걸 생각 못 하는 걸까. 3인칭인 나만 고생한다.


 시간이 지난 후 떠올린다면 마치 파노라마 같이 흘러갈 것 같은 그 장면은 영화로 치면 대사나 지문보다는 그냥 배경에 깔린 음악에 둘의 모습만 나오면 될 것 같았다. 마치 <성월동화>나 <중경삼림>의 한 장면 같이 말이다. 영화 속에선 그대로 시간을 스킵하고 둘이 사귀거나 결혼하는 장면을 보여주던데. 스포일러를 살짝 뿌리면 둘은 돌아간 뒤에 한 달 조금 더 썸을 타다가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끝났다. 현실은 영화같이 안 되는 법이다.


 나는 둘보다 훨씬 두꺼운 패딩을 입고 있었지만 밤의 바닷바람에 이내 추워졌다. 바닷바람은 아랑곳 않고 모래사장에서 뛰어 댕기는 암컷과 수컷은 몸에 열기가 는지 그대로 밤을 새도 될 것 같았다. 나는 구멍이 뚫린 무를 5초 정도 지긋이 보다가 집어던지고 숙소에 돌아가자고 했다.



 다음 날 그 여행에서 기억에 남는 유일한 식당인 'Saturday Island'라는 식당에 갔다. 바닷가 구석에 있는 작은 식당이지만 오픈한 뒤 10분만 지나면 줄을 서기 시작하는 꽤 유명한 맛집이었다. 바깥 유리를 작은 사각형으로 나누어 햇빛이 그림자를 형성하면서 목재 테이블을 비췄다. 그런 배경을 뒤로한 뒤 둘은 전복리조또와 시칠리아 파스타를 시킨 뒤 나눠 먹고 있었다. 내가 먹은 판체타 파스타도 맛있었지만 눈 앞에 알콩달콩한 둘을 보고 있자니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지 않았다. 어차피 한 달 뒤에 헤어지는 주제에. 결말을 아는 관찰자의 눈은 냉정한 법이다.




 여행에서의 추억은 일상을 거쳐 희석되고 선명하게 남는 건 사진뿐이다. 1년이 넘은 지금 식당 앞 벤치에서 찍힌 둘의 사진을 바라보며 잠시 회상에 잠겼다. 사진 속 왼쪽에 위치한 제주도에서 밖에 볼 수 없는 열대 식물과 대조적으로 검정 롱코트를 입은 여자와 얇은 재킷에 목도리를 맨 친구가 보였다. 우연히 같은 흰색의 스니커즈는 풋풋함이 느껴졌다. 사진 속에서 조차 살짝 긴장감이 도는 썸남썸녀의 모습은 이제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헤어진 뒤에도 몇 달 정도 친구의 입을 통해서 여자의 소식을 들었지만 여름이 지나자 친구는 더 이상 그 여자의 얘기를 하지 않았다. 내가 모르는 둘의 이야기가 더 있는 것 같았지만 굳이 캐묻진 았았다. 친구는 이듬해 만난 다른 여자와 사귀었다. 나는 그저 그때 있었던 제 3자로서 여행의 기억이 담긴 사진을 바라보고 있다. 결국 3인칭이란 건 타인의 관계를 깊은 부분까진 알 수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마음 한 켠에 쓸쓸함이 멤돈다.


 결국 3인칭 관점이란 딱 그 정도라는 걸까. 사진 속 친구와 여자는 그때의 나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매거진의 이전글 제주도와 겨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