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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Apr 14. 2021

다시 글을 쓰고 있지만

3월 월간 일기

# 글쓰기와 운동


 해가 바뀌면서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눈에 보이는 것과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을 그대로 글에 옮겨 담았던  조금씩 쌓이고 무언가를 쓰는 게 손에 익기 시작했다.


 비슷한 시기에 운동도 재개했다. 매일 적어도 30분, 길게는 2시간 넘게 몸을 움직인다. 도수치료와 병행한 덕분에 허리와 어깨의 통증이 줄어들어 스트레칭이나 웨이트를 할 때 자극에 집중하며 할 수 있게 되었다. 운동을 하면서 자극과 통증을 구분할 수 있게 된 건 나름 큰 발견이다. 통증과 달리 자극은 운동 후의 시원함으로 남는. 그 시원함이 다음 운동을 위한 원동력이 된다. 30년 넘게 쓰면서 녹이 슨 몸에 이제야 기름칠을 하는 느낌이다. 덕분에 친구들에게 운동을 하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는 운동 예찬론자가 되었다.



 러닝 역시 꾸준히 하고 있다. 아직은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는 비중이 더 높지만 날이 풀리면서 야외 러닝도 늘리고 있다. 러닝머신 위에 휴대폰을 놓으면 화면이 작아서 자막이 없는 한국 드라마를 보는데 요즘엔 '미스터 선샤인'에 푹 빠졌다. 예전에 짤로 띄엄띄엄 보던 걸 정주행을 시작했고 완결까지 4화 정도밖에 안 남았다. 결말은 이미 고 있어서 예상되는 비극을 보는 건 쉽지 않지만 그래도 달리면서 보면  조금 가벼운 마음으로 볼 수 있다. 다음은 아마 '나의 아저씨'가 될 것 같다. 요즘 넷플릭스는 집보다 헬스장에서 더 유용하다. 핸드폰은 아무래도 화면이 작아서 손바닥 정도 크기의 작은 태블릿 PC를 살까 고민 중이다.


 운동을 한다는 건 어떤 면에서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계속하던 운동도 며칠만 쉬면 근손실이 오고 유연성이 떨어져 다시 시작할 때 힘이 드는 것처럼 글도 안 쓰는 기간이 길어지면 다시 쓰기가 쉽지 않다. 내용이 잡스러워지고 문장은 깔끔하지 못하다. 생각이 손을 통해 글로 전달되는 과정이 뻑뻑해진다. 그러니 풀어진 글쓰기 근육을 다시 키우기 위해서는 무리하게 증량하기보다 워밍업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두 달간의 워밍업이 효과가 있었는지 이제는 일상생활 속에서 글감이 하나 둘 떠오르기 시작한다. 그런 와중에 오랜 시간 접어두었던 이야기 하나를 최근 재개했다.


 한 때 잠시 가깝게 지내던 한 사람이 있었다. 이십 대 초반의 그는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다. 이후 연락이 끊겼다가 얼마 전 여전히 글을 쓰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처럼 취미보다는 약간 진지한 수준이 아닌, 삶의 목표로써 글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5년이 넘은 시간이 지났기에 지금은 이십 대 중후반이 되었을 그가 여전히 글을 쓴다는데 묘한 동지 의식이 느껴졌다. 어떤 글을 쓰고 있을지 궁금하지만 연락하기엔 애매한 상대라 그의 모습을 상상하며 쓰던 이야기를 다시 쓰기 시작했다.


 글을 위해 삶을 포기한 사람과 삶을 위해 글을 포기하려는 사람이 만나는 이야기다. 내면의 독백이 주를 이뤄 지루할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글을 쓴다는 것, 혹은 꿈을 향해 삶의 일부분을 포기하는 것이 어떤 건지 이야기에 담고 싶었다. 조심스럽지만 이번에는 끝을 제대로 내고 싶기에 7월 말에 마감 예정인 공모전 제출을 목표로 쓰고 있다. 그렇게 일상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계속 생각한다. 일 하다가, 친구를 만나다가, 운동을 하다가도 떠오르는 게 있으면 짧게라도 메모를 남기고 글을 쓴다. 매주 일정분의 시간을 하나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투자한다. 몰입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았다는 것만으로 무기력한 일상에 활기가 돈다. 그렇게 나는 운동을 하고 글을 쓴다.


# 2박 3일의 망원동 살이


 천안에서의 23층 아파트에서 사는 삶은 만족스럽지만 그럼에도 지난 서울에서의 원룸살이가 가끔씩 그리울 때가 있다. 건물은 낡았고 건물 사이 간격이 좁아서 햇빛은 정오쯤 되서야 창가에 비치곤 했지만 그때의 불편함마저 이제는 추억이 되었다.


 

서울 동대문구 회기동 원룸 시절


 3월 중순쯤 4일짜리 휴가가 생겨 무얼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떠올린 게 2박 3일의 망원동 살이었다. 그곳에는 몇 시간 동안 글을 쓸 수 있는 카페가 있었고 혼술하기 좋은 아담한 술집도 많았다. 무엇보다 서울 중심부에 없는 한적한 느낌이 그곳에 있었다. 예전에 살았던 원룸촌의 느낌이 남아 있는 한 편 시장이 가깝거나 10분만 걸어가면 한강공원에 갈 수 있는 동네이기도 했다. 휴가 이틀 전 에어비엔비로 숙소를 찾았고 그 느낌에 딱 맞는 숙소를 찾았다. 아다리가 딱딱 맞아떨어지는 게 느낌이 좋았다.


 2박 3일 동안 매일 한 명씩 친구들을 만났다. 미리 약속을 잡지는 않았고 당일에 단톡방에서 얘기하다가 서울에 있다 망원으로 와 주었다. 마치 우리 동네로 친구가 놀러 온 느낌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한동안 만나지 못했기에 묵은 얘깃거리를 술술 풀어냈다. 쉽지 않은 시기에 30대로 살아가는 소회를 풀어내니 살면서 나도 모르게 어깨에 쌓인 짐들이 가벼워진 시간이었다. 소의 테라스에 있는 널찍한 의자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전날 먹다 남은 와인을 마셨다. 담배와 술이라는 조합은 같이 할 때 느껴지는 묘한 매력이 있다. 연기를 내뱉으며 건조해진 입과 목에 술을 들이부으면 다시 축축해진다. 거기에 다시 연기를 들이마시면 시원함이 느껴진다. 건강에는 좋지 않지만 그 감각을 좋아한다.


  

망원동 빈티지하우스

  1박에 3만 원이 조금 넘는 가격에 묵은 숙소는 꽤 좋았다. 역에서 10-15분 정도 걸어야 있는 곳인데 굴다리 같은 입구에 들어서면 6개 방이 있는 오래된 복도식 빌라 같은 곳이었다. 터프한 모습의 외관과 달리 방 내부는 생각보다 깔끔하며 커다란 짙은 남색의 침대, 방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스탠드 인테리어가 좋았다. 망원동 골목길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다음에 같은 숙소를 이용한다면 테라스에 앉아 괜찮은 와인과 함께 책을 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싶었다.


  10분 정도 걸어가면 한강공원이 있는 점도 좋았다. 이틀 뛰었는데 첫날은 8키로, 둘째 날엔 3키로를 조금 넘게 뛰었다. 2박 3일은 결코 긴 기간은 아니지만 목적 없이 일상의 한가로움을 만끽하며 보내니 다시금 서울러가 된 것 같았다. 스물 하나부터 스물아홉까지, 군대에 있던 시간을 빼면 대부분의 20대를 함께 했던 도시를 30대의 나는 돌아올 수 있을까? 솔직히 반반이다. 서울이라는 도시만이 가진 역동성이 그립지만 동시에 여유가 부족해서 쉽게 지칠 것 같다. 과연 나는 출퇴근 시간의 번잡스러운 행렬에 동참할 수 있을까? 채광과 공간이 부족한 주거환경에 만족할 수 있을까? 지금 하는 일을 그만두고 다음 일을 생각하는 요즘 이 시기에 서울로의 복귀는 분명 눈이 가지만 아직은 확실히 결정하지 못했다. 상반기 중에는 결정을 내리고 싶다.


 2021년 3월의 서울은 밤 10시가 되면 모든 일상이 끝난다. 술집, 밥집, 카페에 있던 사람들은 10시가 되면 마치 점심시간이 끝나고 종이 치면 교실로 돌아가는 학생처럼 지하철 역으로 향한다. 70년대의 통금이 있던 시절이 이런 느낌일까 싶을 정도로 사람들은 알람에 맞 일사불란하게 일상을 마무리한다. 밤 10시의 망원역에서 친구를 배웅한 뒤 아쉬운 마음에 편의점에 들러 와인 한 병을 사서 돌아온다. 숙소의 커다란 침대에 앉아 영화를 보며 잠이 든다.


2박 3일의 마지막 날에는 못 쓴 글을 마저 썼다. 주제는 전 여자 친구들이 선물해준 물건들로 사람은 떠나가도 물건을 담담하게 제 역할을 잘한다는 얘기다. 나는 연애에 있어서 되새김질을 곧잘 한다. 지난 일과 상대가 했던 말들을 다시금 돌이키어 의미를 생각한다. 다가올 다음 관계를 위해 부족했던 자신을 되돌아본다는 순효과도 있지만 어떤 면에서는 앞으로 섣불리 나아가지 못하는 미련이 되기도 한다. 누군가가 말했듯 연애에 있어 과거의 경험은 전혀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니까. 그렇지만 이미 몸에 배어버린 습관이다. 글을 쓰는 것보다 썼던 글을 열 번도 넘게 퇴고하는 걸 좋아하는 것처럼.


# 언젠가 그저 별이 보고 싶다면

충북 음성군 어딘가

 

 친구가 몇 달 전부터 돌아가신 할아버지 시골집을 물려받는다 했을 땐 그저 그런가 싶었다. 그러다 물려받은 뒤 매주 주말에 가서 아지트로 만들기 위해 개조를 하러 간다고 할 때 문득 관심이 간 건 복잡한 마음에 그저 밤에 별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동안 주말 휴무가 없어서 못 갔는데 마침 휴일에 친구도 같이 쉬게 되어서 3월의 마지막 금요일에 갈 수 있었다. 관리가 안 되어 아무렇게나 자란 풀과 정리가 덜 된 창고가 있었지만 친구는 이 공간에 원하는 그림이 있는 것 같았다. 마당을 정리하고 조명도 새로 설치하고 바닥재도 교체할 예정이란다. 물론 나는 그 그림의 구체적인 건 알지 못하고 그저 제초기와 낫을 들고 마당에서 잡초와 갈대를 꺾을 뿐이었다. 아무 생각 없이 두 시간 동안 풀만 베다 보니 복잡한 마음이 개운해졌


 시간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저 멀리 달이 보였다. 달까지의 시야를 방해하는 고층 빌딩이나 전선 같은게 없어서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조금 더 어두워지니 까만 하늘에 점 같은 별들이 하나씩 반짝이기 시작했다. 충북 음성의 불빛이 없는 외딴 마을, 그중에서도 좀 더 외진 곳에 위치한 이 집 마당에서는 밤이 되면 그저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게 된다. 도시의 빛이 없는 어두운 시골마을에서 시야에 잡히는 빛은 그저 별빛뿐이다. 오후 9시쯤 되었을까, 아직은 겨울의 추위가 남아 있어 몸이 으슬으슬해졌다. 집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면서 지금보다 따뜻해진 다음 달에는 좀 더 느긋하게 별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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