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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Mar 02. 2021

쓴 약과 달콤한 사탕

2월 월간 일기

 겨울은 끝날 듯 끝나지 않고 봄은 다가올 듯 거리를 둔다.


 계절감이라는 걸 스마트 워치에서 느끼고 있었다. 워치를 사용하면서 자주 사용하는 기능은 날씨 체크다. 러닝을 주 4-5회 꾸준히 하기에 매일 그날의 기온을 체크한다. 야외에서 달리느냐 헬스장에서 러닝머신 위에서 달리느냐는 섭씨 5도를 기준으로 결정된다. 5도가 넘을 때 3킬로 정도 달리면 몸에 열기가 돌아 땀도 적당히 나와 개운한 느낌이 든다. 그 이하로 떨어지면 근육을 풀기 위한 스트레칭 시간도 많이 소요되고 달리고 나서도 땀이 금방 식어 개운한 느낌이 부족하다. 달리기의 매력은 흐르는 땀에서 느껴지는 성취감이다. 1월에는 섭씨 5도가 넘는 때가 거의 없었고 있어도 보통은 오후 3시 정도인데 집에 없을 때가 많았다. 덕분헬스장 러닝머신을 자주 사용했다. 2월이 되어서는 간간이 최고 기온이 15도가 넘는 날도 있어서 미리 기온을 체크하고 야외 러닝을 즐겼다. 그렇게 달리기를 하면서 느끼는 공기의 따뜻함에서 봄이 다가옴을 느낀다.


 <소울>을 봤다. 리뷰를 남기고 싶었지만 영화가 표현해낸 상상력을 글로 남기기엔 표현력이 부족다. 그저 누군가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 하나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소울>을 보라고 할 수밖에. '영화를 보고난 뒤  바라보는 시각이 바뀔 수 있다' 그 말 한마디 더 하는 게 다 였다. 그리고는 티켓까지 줘가면서 보라고 해도 다들 볼 생각을 안 한다. 내 부족한 말솜씨 때문이려나. 그래도 한 달이 넘게 줄어들지 않고 꾸준히 오는 관객들을 보고 있으면 언젠간 한 명쯤 보러 가겠지 싶다. 그나마 2월의 마지막 날에 형이 보고 나서 남겨준 너무 좋다는 짧은 평에 보람을 느꼈다.


 여기서 어김없이 떠오르는 건 평소에는 안 그러는데 애니메이션 영화를 볼 때 이상하게 눈물이 나온다는 한 사람. 나는 끝내 그녀가 영화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지 못 했다. 물론  말고 많은 것을 알지 못한 채 관계가 끝났을 때 어떠한 감정보다 제일 큰 건 아쉬움이었다. 헤어질 때의 미련은 분명 그런 것이었다. 그 사람을 충분하 알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 나는 이상하게 누군가의 눈물을 보면 호기심이 생긴다. 영상물을 통한 간접 체험으로 눈물이 흐를 수 있다는 일이 그저 신기해서 옆에서 멍하니 바라본다.  시선이 자뭇 소시오패스스러울 수 있을까? 어떤 감정이 마음속에서 발현했기에 눈물이라는 물리적 형태로 나타날 수 있냐고. 물론 이런 말을 실제로 했다간 상대방이 한 발짝 뒤로 물러설 것을 안다. 그러니 하지 않는다. 말을 바꾼다. 나는 네가 눈물을 흐르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내가 알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본질은 같지만 표현을 달리한다. 별 거 아닌 것 같다가도 생각보다 효과적일 때가 있다. 그녀와의 관계에서도 이런 표현의 변화가 필요했을까? 돌이켜 봤지만 결말이 바뀌는  상상할 수 없었다. 연애에 있어 만약이 얼마나 무의미한지 알면서도 만약이라는 단어는 가끔씩 머리를 툭하고 치고 지나간다. 머릿속에 남은 만약들을 어딘가 한 군데 모아 놓으면 더 이상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 편지에 담아봤지만 그 편지는 우체통에 넣을 수 없었다.


 괜찮은 루틴을 일상 속에 만들고 싶었다. 글쓰기, 운동, 영어 공부. 크게 3가지의 루틴을 형성하기 위해 휴일과 퇴근 후의 시간을 살뜰하게 쓰기 위해 노력했다. 결과는 반쯤 성공. 루틴을 어느 정도는 형성했지만 가끔씩 튀어나오는 무기력함과 게으름으로 3일만 쉬면 루틴은 무너진다. 요가 매트 위에서 스트레칭을 하기보다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무던함이 생긴다. 더 늦기 전 한 사람 몫 이상을 하기 위해서는 루틴을 만들어야 다. 지금의 삶은 거꾸로 돌아가는 평행 에스컬레이터 위에 서 있는 것과 같아서 게으름을 피고 서 있다가는 뒤로 갈 뿐이다. 지금 뛰어야 에스컬레이터 끝을 넘어 누울 수 있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 흐르면 쉬는 날 온전히 쉬기보다는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에 빠진다. 그러다 문득 햇살 좋은 날에 캣타워 위에서 잠든 고양이를 보며 대리 만족을 느낀다. 마치 다이어트하는 사람이 먹방을 보는 것과 비슷하게 말이다.


 하루에 한 번, 찰나의 시간에 무언가 쓰고 싶은 의욕이 생긴다. 아쉽지만 그 타이밍은 대부분 다른 무언가를 하고 있을 때라서 놓쳐버린다. 일을 할 때나 친구와 함께 있을 때, 샤워기에서 들이받는 물줄기가 유난히 차가울 때, 그날의 러닝이 힘든 만큼 상쾌한 기분이 함께할 때. 글쓰기를 위한 열의는 그때를 놓치면 이내 사그라진다. 어떻게든 유지하고 싶지만 쉽지 않다.

 

 가끔 멍해지기 위한 연습을 했다. 바닥에 편한 자세로 앉는다. 누우면 잠이 들기 때문에 앉는다. 어깨에 힘을 뺀다. 시선은 45도 정도 위를 바라본다. 벽지를 보고 있으면 약간 들뜬 데가 있다. 어떻게 해서 들떴는지 생각한다. 습기 때문일까, 그 안에 곰팡이라도 슬었을까? 음악을 듣는다. 가급적 가사가 없는 걸로. 멍한 상태에서 떠오르는 상념은 가까운 과거부터 먼 옛날까지 뻗어간다. 멍 때리는 건 일종의 자가 최면과 비슷한 걸까. 맑아진 머리로 다시 모니터 앞에 앉는다


 마지막 주에는 어머니의 병원 진료에 동행다. 한 시간 거리에 살고 있는 어머니는 한 달에 한 번 대학 병원에서 정기 진료를 받는다. 주로 내가 모시고 가는데 진료 자체는 30분 내에 끝나지만 그 시간 전후로 괜찮은 밥집에서 식사를 하거나 영화를 본다. 어렸을 때 알약 대신 가루약을 먹은 뒤에 그 쓴 맛을 입에서 가시기 위해 옆에서 어머니가 사탕을 주었다. 사탕의 단 맛으로 쓴 맛을 잊기 위함이다. 병원에 모시면서 같이 가는 식당이나 영화관이 그 사탕의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소울>을 같이 보고 싶었지만 진료 후 시간이 맞는 극장이 없었다. 나머지 영화의 예고편을 보여줬지만 어머니는 그냥 집으로 가자고 했다.


 벌써 올 해의 두 달이 지나갔다. 6분의 1이다. 올 겨울엔 마스크 때문에 입김을 볼 수 없었다. 입김을 불어 한기를 확인했던 건 오랫동안 봐 왔던 겨울의 장면일 텐데 말이다. 2월이 끝날 무렵 백신 접종이 시작되었다. 다음 달엔 일상이 좀 더 가까이 와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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