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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Feb 28. 2021

자유한국당만 아니라면

정치와 연애

자유한국당만 아니면 돼


연애 상대에 단 한 가지 조건만 붙인다면 어떤 걸 하겠냐는 물음에 이렇게 답한 적이 있다. 지금은 다른 이름으로 바뀐 당이 그 이름이었을 시절 했던 말이다. 지금에 와서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면 다른 답을 할 것 같다. 물론 정치적인 스탠스가 바뀐 건 아니다. 삶이 덜 정치적이 되었을 뿐.


 저 말을 한 뒤 몇 달쯤 지났을 때였을까? 똑같은 말을 소개팅 상대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당시 술을 마신 상태였고 대화 주제는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아니 것보다 만난 지 한 시간도 안 되었을 때라 어색함을 풀기 위해 입에서 나오는대로 이런 저런 얘기나 하던 때였다. 저 말을 들었을 때는 마치 동네 개울에서 낚시를 하다가 50cm가 넘는 참돔을 낚은 기분이었다. 소개팅만 열 번도 넘게 했는데 내가 했던 말이 상대의 입에서 나오는 건 처음이었다.


 이 후의 대화는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흘러갔다. 호흡의 속도를 맞추듯 주고 받는 대화에는 호감이 담겨 있었다. 꽤 신기한 경험이었다. 부끄럽지만 어쩌면 운명이란 걸까 싶기도 했다. 운명은 술기운에 찾아오고 다음 날 아침에 침대에서 달아난다. 한 달도 안 되서 스치듯 달아난 그 인연에서 나는 그녀가 두 번째 만남에서 상대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쿨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란 것도 알았고, 걷는 걸 좋아하는 것도 알았고, 예쁜 손글씨로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것도 알았고, 이목구비가 선명해 고등학교 때 별명이 러시아 사람이란 것도 알았다. 쿨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헤어지는 것도 쿨했다.


 어찌 되었든 정치라는 이슈는 연인 관계에 있어서든 친교 관계에 있어서든 보통은 피하는 이슈다. 가끔씩 그런 경험이 있다. 직장 상사나 친구의 친구 정도를 만날 때 상대가 정치적인 소재의 얘기를 꺼내고 그 관점이 나와 너무나도 다를 때. 좀 더 어렸을 때는 신경 안 쓰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는 편이었지만 지금은 깊게 이야기를 끌고 들어가지 않는다. 그저 그 사람의 관점 중에 동의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서 대화를 진행한다. 가끔 상대가 드는 근거의 취약점이나 정보의 오류가 확인되면 정정해주긴 한다. 예를 들면 정부의 복지 지출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생겼다 이런 말을 하면 비슷한 경제 규모의 다른 국가들이 어느 정도의 복지비를 지출하는지 알려주거나 나라의 공산화를 걱정하면 현정부 들어 높은 비율로 증가하는 국방비를 언급한다든지 말이다. 모든 통계가 객관성을 담보하지는 않지만 가벼운 수준의 정치적 대화에서는 꽤 효과적이다.


 자본주의의 신봉자는 아니지만 정치를 소비의 관점으로 본다. 나의 기호에 따라 표를 던지고 의견을 표하는 방식으로 정치를 대한다. 어떤 개인이나 정당을 지지하기 보다는 내가 원하는 정책을 내놓고, 그 정책을 실현할 수 있는 과거의 행적이 뒷받침되는 사람에게 표를 던진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성장보다는 분배를 중시하고, 법적 질서가 모두에게 동등하고, 개인의 자유의 영역을 넓히는 방향으로 한 표를 행사한다. 대체로 진보 쪽에 표를 던지지만 반대 진영에서 내가 원하는 주장을 한다면 표를 던지기 주저하지 않는다.


 헤어진 지 2년이 넘었고 소식조차 들을 수 없는 사람이지만 가끔씩 그 말 한 마디가 머릿 속에 멤돈다.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알 길이 없지만 그 단호한 눈빛으로 짐작컨데 여전히 '국민의 힘만 아니면 된다'라고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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