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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May 21. 2021

온전히

4월 월간 일기

# 꾸준히 나아가는, 그러나 가끔씩 무너지는 다이어터



이십 대 후반부터 쭉 80킬로대 중반을 벗어나지 못했던 체중이 작년 7월에 88이라는 최고점을 찍고 다이어트를 시작해 올해 4월 체중계에 찍힌 76킬로라는 숫자를 볼 수 있었다. 다이어터는 2021년의 나를 표현하는 정체성 중 하나다.


 바나나와 고구마, 냉장고에 쌓아둔 닭가슴살 제품과 샐러드. 그 외의 음식을 먹을 때에도 습관처럼 칼로리를 계산한다. 출근일에는 한 시간, 쉬는 날에는 두 시간 이상 운동한다. 저녁 6시 이후엔 500칼로리 이하로 먹는다. 단, 유산소 운동을 한 시간 이상할 때는 자유롭게 식사 가능, 이런 식이다. 처음엔 억지로 했던 반복이 습관이 되어 지금은 거기에 맞춰 몸이 반응한다. 특히 저녁 식사를 줄이는 게 효과가 좋았다. 과일 이외의 간식은 거의 먹지 않는다.


건강했던 식단들, 가끔씩 건강하지 않은 때도 있었다.


 체중의 꺾은선 그래프는 게임스탑의 주가까지는 아니지만 가끔씩 꽤 커다란 폭의 변동이 있었다. 억눌렀던 식욕이 폭발해 자정이 넘은 시각에 닥치는 대로 입에 넣었던 때다. 올해 들어서는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80이라는 벽을 깨고 70대로 진입했을 때는 감격스러웠다.


 1월 말쯤 PT 상담을 받을 때 체중감량과 근육 증강을 같이하는 건 비효율적이라는 얘기를 듣고 일단 원하는 수준까지 살을 뺀 뒤에 근육을 본격적으로 키우기로 했다. 원래 목표는 75킬로까지였지만 지금은 72킬로까지 목표를 상향했다. 특히 빼고 싶은 허벅지와 엉덩이 살이 좀처럼 빠지지 않는다. 체지방률은 구체적인 수치는 정하지 않았지만 10프로 초반 정도를 목표로 잡고 있다. 체중계의 낮아지는 수치를 볼 때마다 성취감은 오른다.


 하지만 4월의 중순 즈음이었을까, 무릎에 탈이 나기 시작하면서 다이어트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 만성적인 오른쪽 무릎의 저림 증상이 심해지더니 통증으로 번져 근래에는 걷는 것조차 힘들 정도가 되었다. 통증의학과에 갔더니 무릎 관절에 물이 찼다고 했다. 걷지 못하면 일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되기에 급한 데로 통증 주사를 맞고 다시 주사기를 꽂아 무릎에 찬 물을 제거했다. 통증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하지만 걷는 것 이상의 활동을 할 때면 통증이 다시 올라오기에 이제는 무릎 컨디션을 고려하면서 달릴 필요가 생겼다. 체중감량이라는 성취감과 함께 무릎 통증이 함께 찾아온 걸 보면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동시에 찾아오는 게 삶의 법칙처럼 느껴졌다.


 중요한 건 꾸준함이다. 코로나 시국 확찐자 대열에서 겨우 빠져나온 지금, 습관이 된 운동과 식단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하지만 삼십 년 넘게 쌓아온 게으름으로 향하는 몸의 관성은 언제고 그쪽으로 새어나갈 하고 있기에 여름이 되기 전에 목표 체중에 도달할 생각이다.



# 무언가에 몰입한다는 것


 바에서 처음 본 사람들과 2주 뒤에 클라이밍을 하러 갔다.


 4월 첫째 주 주말에 있던 일이다. 크클바라는 곳에 가서 술을 한 잔 주문하면 대화주문서를 주고 나와 맞는 대화 상대를 매칭 해준다. 그런 취지지만 실제로 적당히 세 명 이상이 모이면 별도의 테이블에 안내하는 것 같다. 두 번째 방문인 그 날은 뜻밖의 잘 풀리는 대화 덕분에 꽤 즐거운 시간이었고 이 시국 서울 통금인 밤 10시에 헤어지기 아쉬워서 강남역에서 신논현역까지 같이 걸었다. 그렇게 세 명이 헤어지기 직전, 나는 깔끔하게 뒤돌아서서 가려던 일행을 붙잡고 같이 클라이밍 가자는 쿨하지 못한 제안을 했다. 뜻밖의 제안에 둘은 머뭇거리는 듯했지만 다행히 민망한 상황은 오래가지 않고 오케이라는 답을 얻어냈다.



 그렇게 서로가 일정을 맞춘 결과 2주 뒤 일요일로 정해졌고 서로가 낯선 우리는 클라이밍을 하러 갔다. 4월이 되고 첫 번째 주말이지만 주초에 만개했던 벚꽃이 토요일 하루 종일 내린 비 덕분에 절반 가량 지고 없었다. 떨어진 벚꽃을 밟을 때 일 년 중 하나의 시기가 벌써 저문 것 같아 아쉬움이 들었다. 나이가 들어서 일려나. 시간이란 건 후반부로 갈수록 빨라지는 마라토너 같아서 풀코스의 중간지점을 돌았을 때 지쳐서 걷고 있는 내 눈앞에서 점점 빠르게 멀어져 간다. 따라가기에는 그저 숨이 찰뿐이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는 밤이었지만 이번에는 오전 11시, 해가 저 위에 떠 있는 시간이었다. 한 번 밖에 안 본 사이니 어색하려나 싶었는데 다행히 클라이밍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가까워졌다. 점심으로 족발과 막걸리를 먹고 선유도 공원을 산책했다. 괜찮은 시간이었지만 중간에 무릎 통증이 재발해 걷는 내내 신경이 쓰였다.


 저녁 즈음이 되었을 때 한 명은 먼저 돌아갔고 나머지 한 명과는 망원역 근처 앤트러사이트를 가기로 했다.



 건물 내부가 짙은색의 나무로만 이루어진 그곳에서 그 사람은 청각에 대해 말했다. 나무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의 발소리가 인상적이라 했다. 커다란 저택의 내부를 카페로 개조한 듯한 시각적인 요소가 강한 곳이기에 시각적인 반응을 먼저 기대했기에  내심 놀랐다. 그 사람은 계속해서 감각에 대해 이야기했다.


 어느 책에서 읽은 내용을 토대로 가급적 한 가지 감각에 집중하려 한다 했다. 예를 들면 혼자 식사를 할 때는 미각에 온전히 집중에 유튜브를 보거나 음악을 듣지 않고 온전히 맛에 집중한다고 했다. 밥 먹을 때 유튜브 보는 게 습관이 된 는 그 말이 꽤 인상적으로 들렸다. 같이 있었던 시간은 묘하게 몰입이 되는 시간이었다.


 그 이후 나는 그 말을 따라 가끔씩 혼자 식사할 때 아무것도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먹는 것에 집중하곤 한다. 매번 그러고 싶지만 역시나 지루하기에 매우 맛있다 느끼는 무언가를 먹었을 때로 한정하기로 했다. 먹다가 맛있다는 생각이 팟하고 드는 순간 귀에 꽂은 이어폰을 떼고 유튜브를 틀어놓은 핸드폰을 뒤집은 채로 온전히 먹는 것에 집중한다. 고독한 미식가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바쁜 일상 와중에 집중하는 좋은 요령을 하나 터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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