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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Jul 27. 2021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 리뷰 말고 무비 에세이 2


※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법적인 아버지의 자격을 얻기 위해 출산 후 동사무소에 방문하여 준비한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 정확히는 출생증명서, 신분증명서, 그리고 혼인관계증명서(관공서에서 바로 확인 가능한 경우는 생략 가능)만 있으면 법적으로 한 인격체의 부모가 될 수 있다. IT강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이 모든 게 인터넷으로도 가능하다. 영화의 배경인 일본도 그리 다르지 않을게다. 인터넷으로는 안 될지 모르지만.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이런 법적인 자격만으로 아버지가 되기에 충분한가를 묻는다.


 감독인 고레에다 히로카즈는 가족 관계를 현실적으로 그린다. KBS 주말 연속극처럼 가족 구성원의 개인사를 전부 나누는 복작복작한 대가족을 그리지도 않고, 반대로 자극적인 스토리 전개를 위해 극단적인 형태의 가족을 그리지도 않는다. 물론 <아무도 모른다>나 <어느 가족>처럼 뉴스 사회면에 나올만한 소재로 그리기도 하지만 적어도 거기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은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리려고 한다. 그런 그가 그리는 가족들은 편한 관계지만 가끔씩 누구보다 불편한 관계가 되기도 한다. 나는 그의 영화 속 가족의 모습에 우리나라 영화 속 어떤 가족의 모습보다 공감할 수 있었다.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무렵 산부인과에서 실수로 바뀌었다는 걸 알게 되는 걸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때까지 엘리트 코스를 쭉 밟았던 료타는 아들이 자신과 같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평범하지만 엄격한 아버지다. 인생에 실패가 없었던 그는 자신의 가치관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찼다. 하지만 그러 그가 생애 처음으로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사건을 맞이한다. 영화는 공고한 성 같은 삶을 살았던 그가 허물어지는 과정을 이야기 그린 뒤 후반부에는 허물어진 자리에서 새로운 토대를 쌓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의 앞에는 태어나서 쭉 함께 했던 피가 이어지지 않은 아들이 있고, 다른 가족과 함께 자라 낯설지만 피가 이어진 아들이 있다.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가족을 이어주는 건 시간과 피, 어느 쪽인가를 묻고 싶었다고 했다. 얼마 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에서 공식적으로 선진국 지위를 얻었지만 아직까지도 국내 입양처를 찾지 못해 해외입양을 하는 한국의 입장에선 이해 못할 질문일 수도 있다. 당연히 피로 이어진 관계가 중요하지 않나? 료타 역시 그와 크게 다르지 않다. 병원에서 통보를 받고 돌아가는 길에 과거 자신의 아들임에도 자신과는 달리 승부욕이나 성취욕이 부족한 모습을 떠올린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조용히 내뱉는다.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이 말을 옆에서 들은 그의 아내는 그의 무심함에 린 듯한 표정을 짓는다. 정작 료타는 본인이 그런 말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랬던  아들과 쌓은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아버지로서 성장의 가능성을 찾는다. 두 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영화는 유전자나 혈연만큼 중요한 게 함께 보낸 시간으로 쌓은 유대라는 걸 담담히 주장한다. 영화의 결말에 이르러서는 피가 이어지지 않은 아들인 케이타가 자신을 찍은 사진을 하나씩 넘기면서 아무 말 없이 흘리는 료타의 눈물은 흔한 한국영화의 신파적 구성으로 억지 눈물을 짜내는 것과 달리 먹먹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잠든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카메라의 시선에 담긴 애정을 느끼며 보며 료타는 아들을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내려보던 시선서 내려온다. 영화의 말미 자신을 피해 도망가는 케이타를 따라잡고 무릎을 꿇은 상태로 케이타를 마주 본다. 시선의 높이는 영화에서 꽤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6년간은 아빠였어. 제대로 해주진 못 했어도, 아빠였어.

 개봉한 지 꽤 되었음에도 이 영화는 계속해서 회자된다. 좋은 영화는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의 대화 속에 머무른다. 더 많은 사람들의 대화에 이 영화가 머물기를 바란다. 여담으로 감독은 일 때문이 집을 자주 비우면서 딸의 유년기를 함께 보내지 못했던 걸 반성하며 이 영화를 연출했다고 한다. 하지만 영화의 국내외적 흥행과 칸 영화제 심사위원상 수상으로 해외 체류 기간이 늘어나 집에 있는 시간이 더욱 줄었다고 한다. 하여간 인생은 모를 일이다. 누군가의 부모가 된다는 건 분명 쉽지 않은 일이다.



 영화로 무비살롱을 진행했습니다.

CINEEND X 남의집 프로젝트 in 2021. 7. 9 19:00

https://naamezip.com/detail/9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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