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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Feb 11. 2022

남의 집 연애론

30대의 연애

 나는 20대 때보다 30대에 연애 활동이 활발한 편이다.


 학교, 알바, 취업준비로 분 단위로 쪼개는 삶을 사느라 경제적, 시간적 여유가 부족했던 탓도 있지만 그건 부차적인 이유고 돌이켜보면 주된 이유는 자신감 부족이다. 자신의 이성적인 매력을 극단적으로 불신했던 사람, 그게 바로 나다. 어느 정도냐면 멀쩡하게 보이던 사람도 나에게 호감을 표현하면 '저 사람은 이상한 사람일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할 리가 없지'라고 생각해버린다. 이렇게 글로 써보니 어리석기 이를 데가 없지만 실제로 그런 생각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도 가끔씩 자존감이 바닥인 상태가 면 그때의 내가 된다. '앞으로 평생 누군가 나를 좋아할 일은 없겠지'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어찌 되었든 30대 초반부터 이전에 없이 다양한 연애를 할 수 있었다. 많이 내려놓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좋아하는 이성 앞에서 나에게 없는 매력까지 풀어내기보다는 내가 갖고 있는 점 중에서 괜찮다고 생각되는 부분 정도만 드러내자는 생각을 하게 되니 호감을 표현하는데 허세가 없어지고 담백해졌다. 내가 갖고 있는 것들 중에서도 이성에게 매력적인 부분이 있다는 확신이 생겨서다.


 그렇게 30대가 되고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헤어졌지만 만나서 후회했던 사람은 없었다. 기억으로 남은 과거의 인연들은 좋게 남았다. 그 기억들을 글로 재현하는 걸 좋아한다.


 언제부턴가 말버릇처럼 하는 게 있다. 30대의 연애는 이미 완성된 집을 들어가서 둘러보는 것과 같다고. 나는 방문객으로서 집주인이 허락한 만큼의 공간을 둘러볼 수 있다. 관계가 깊어지는 만큼 집의 내밀한 공간에 들어가는 걸 허락받을 수 있지만 집의 구조나 인테리어에 의견을 낼 수는 없다. 기껏해야 가구 배치나 벽지 색깔 정도에 의견을 낼 수 있을 뿐이다. 상대의 집은 이미 완성되어 있고 나는 방문객 이상이 될 수는 없다.


 반면 20대의 연애는 서로가 아직 각자의 집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만나기에 상대에게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집의 토대만 닦아 놓은 상태에서 기둥을 어디에 세울지, 침실과 화장실의 위치는 어디에 둘지 영향을 준다. 그렇기에 이 시기의 연애는 좀 더 날것의 형태로 자신을 드러낸다. 그 시절의 기억이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친한 친구 중 한 명은 올해로 서른셋이지만 연애 상대로는 여전히 20대가 좋다고 한다. 30대를 만나면 상대가 지난 연애의 경험으로 인한 틀 같은 걸 갖고 있어서 답답하고 20대는 그런 틀이 아직 갖추어지지 않아서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단다. 물론 옆에서 보기에는 그냥 어린 여자가 좋은 것 같지만.


 나는 30대의 연애도 나름의 재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좋아하는 상대가 30년 넘게 쌓아온 가치관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재미 때문이다. 그 사람이 왜 그렇게 생각하고 느끼는지를 질문하고 대답을 들으면서 그녀가 정성껏 만들어낸 세계에 푹 빠진다. 내가 연애를 즐기는 방식이다. 나는 썸 단계에서 그 사람의 과거 연애담을 듣는 걸 좋아한다.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과거에 누군가를 사랑했던 경험 역시 상대의 일부분이라 생각하니 질투심보다 호기심이 앞선다.


 20대 때 연애를 많이 못 한 게 아쉽긴 하지만 이러한 이유 때문에 30대의 연애도 꽤나 즐겁다. 물론 이런 얘기를 친구에게 해도 여전히 20대 여자가 좋다고 한다. 그 친구의 집 역시 내가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비슷한 이유로 나는 <비포 선라이즈>보다 <비포 선셋>을 더 좋아한다. <비포 선라이즈>에서 서로가 좋아하는 감정을 주체 못 해 잔디밭에서 사랑을 나누는 셀린과 제시보다, <비포 선셋>에서 상대와의 거리감을 유지하다가 셀린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모습을 한 발짝거리에서 바라보며 서서히 빠져드는 듯한 제시의 눈빛 더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나는 아침햇살보다 저녁노을을 더 좋아한다.


 묘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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