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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Dec 21. 2021

그런 편입니다

9월 월간일기

# 하늘 모양 크록스를 즐겨 신는 편입니다


 9월 둘째 주 주말에 갑자기 부산 여행을 가게 되었다. 일주일 전에 룸메가 부산에 사는 친구랑 놀러 간다며 '같이 갈래?'라고 물었고 반나절쯤 고민한 뒤 '가자'라고 답했다. 인원은 총 여섯 명이었는데 그중 아는 사람 세 명이었고 모르는 사람이 두 명이었다. 아는 사람 셋 중 둘은 룸메이트였지만 나머지 하나는 술자리에서 한 번 본 정도로 거의 모르는 사람이라고 보는 게 맞았다. 예전 같으면 끼지 않았을 인원 조합이다. 여럿이서 함께 움직이는 걸 좋아하지도 않았고.



 삼십이라는 나이에 안착했다고 할 수 있는 지금에 와서 좋은 점 중 하나는 낯선 사람들에게 나를 드러내는 게 자연스러워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어떤 자리에 가든 나를 그 자리에 맞추려고 했다. 내 존재가 누군가에게 불편하지 않게, 그래야만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있는 자리는 불편했고 나도 모르게 스트레스가 쌓여서 사람 만나는 게 힘들어졌다. 사적인 시간은 가능하면 나랑 잘 맞는 사람들과 함께하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선을 넘지 않는 에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도 괜찮다는 걸 알았다. 혹은 어떻게 해도 선을 넘지 않으리란 확신이 생겼다. 종심소욕불유구, 공자님이 칠십이 되어 이른 경지에 다다른 경지가 이런 걸까? 물론 자만하다 엎어질 수 있으니 조심성을 잃으면 안 된다.


부산 중앙역 인근 <주책공사>


 2박 3일의 첫째 날 밤, 술자리에서 느낀 건 잘 안 맞네라는 느낌이었다. 대화는 끊이질 않았지만 붕 떠 있다는 느낌이 강했고 여행을 즐기는 방식이 다르다는 걸 알았다. 다음 날 브런치를 먹은 뒤 나는 독립서점을 가고 싶었고 다른 일행은 멋진 카페에서 사진을 남기고 싶어 했다. 맛없지만 비싼 브런치를 먹은 뒤 말했다. 가고 싶은 독립서점이 있으니 다녀오겠다고. 그 말을 시작으로 여섯 명인 일행은 두 명씩 나뉘었다. 카페와 독립서점과 숙소로. 지금 생각해도 그 여행에서 제일 잘 한 건 그 말을 했던 거였다. 밤에 다시 숙소에 모였다. 각자 다녀온 곳들을 소재로 이야기를 했다.


해운대 <미나미>


 쭉 알고 있었지만 문득 깨닫는 것들이 있다. 여행을 다니는 스타일은 각자 다르다는 것. 그러니 굳이 상대에 맞추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즐기다가 저녁에 모여 이야기를 나눠도 된다. 그리고 이건 여행에 한정되는 게 아니다.


 여름이 되기 전 크록스 매장에서 신발을 샀다. 무난한 네이비 색으로 고를까 하다가 눈에 들어온 게 하늘 무늬 크록스였다. 신고 다니면 하늘 위를 걷는 느낌일 것 같아서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조금 튀는 형태라 부담스러웠다. 고민을 하다가 구입한 뒤 일주일 간 택을 떼지 않고 신발장에 넣어놨다. 약간 부담스러웠지만 여전히 괜찮아 보이길래 택을 떼고 신고 다녔다. 튀는 스타일이라 주목을 받을 때도 있지만 막상 부담스러워하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여름 내내 마치 내 몸의 일부가 된 것처럼 매일 신고 다녔다.


 남들과 다른 개성은 하늘 모양 크록스 같다. 그게 누군가를 불편하게 하지 않거나 혹 불편해도 무례한게 아니라면 그냥 신고 다니면 된다.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된다. 불편해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건 누군가의 잘못이 아니라 다른 것뿐이니까.



# HBD to me


지인이 생일 때 마다 남겨주는 메모, 나름 중독성 있다.


 서른세 번째 생일은 박스 포장으로 시작했다. 나 자신한테 주는 선물을 주는 그런 거창한 건 아니고 가지고 있던 영화 굿즈를 중고나라에 팔기 시작했는데 제법 잘 팔려서 벌써 10개도 넘게 박스 포장을 했다. 스마트 스토어 점주가 된 것 같았다. 그렇게 4개의 박스를 연달아 포장해서 택배 접수를 하니 벌써 오후였다. 그리고는 차 시동을 걸고 전주로 향했다.


 원래는 서울에 있는 호텔을 예약하고 홀로 글을 쓰며 호캉스를 보낼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 얘기를 들은 친구가 토요일에는 서울에 차가 많으니 전주로 오면 생일상을 차려준다고 했다. 운전대의 방향을 180도 틀었다. 저녁쯤에 도착해서 친구가 차려준 생일상은 참치회와 직접 말아준 스시였다. 단순하지만 제법 고급진 생일상에 만족하며 술 한 잔 하고 동네 산책을 했다. 작년과 재작년은 홀로 생일을 보냈는데 왁자지껄한 생일 파티는 정신없어서 차분히 자신에게 집중하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친구의 생일상을 받으며 특별할 것 없이 담담한 일상을 얘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9월 17일인 내 생일은 슬슬 가을의 기운이 스며드는 시기인데 올해는 아직 여름의 기운이 가시지 않아서 밤 산책을 해도 전혀 춥지 않았다. 친구의 아파트에 있는 벤치가 굉장히 분위기가 좋아서 거기에 앉아 달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썩 괜찮은 생일이었다. 아마도 다섯 손가락, 아니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생일 아니었을까?



Happy Birthday to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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