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obinsoon Oct 01. 2021

밤은 점점 시원해지고

8월 월간일기

# 4차 돼유행


7-8월 체중 변화


 4차 대유행도 큰일이지만 개인의 영역에서 더 큰 문제는 4차 돼유행이다. 퇴사하고 두 달간 6키로가 쪘다. 7월 초에는 퇴사 후 들뜬 마음으로 오랫동안 미뤄둔 인연을 하나씩 챙기며 함께한 술 때문에 쪘고, 7월 말에는 공모전 마감을 위해 운동도 않고 책상에 앉아 글만 쓰다 보니 쪘다. 오랫동안 미뤄둔 과제를 끝내서였을까, 개운한 마음으로 8월이 되자마자 미친 듯이 먹어댔다. 거기에다 체중 증가의 버팀막이 되어준 러닝도 무릎 통증이 다시 도져 불가능했다. 일할 때 유지했던 평균 만 보의 걸음도 사라졌다. 이번엔 그 상태가 더 심해 걷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이번 달 수영을 시작하면서 러닝을 대신하려 했지만 델타 변이 앞에 백신처럼 치솟는 체중의 숫자를 덜어내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이상이 4차 돼유행에 대한 자가 분석이다. 줄줄이 써놨지만 요약하면 그저 방심으로 인한 태만의 결과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 짬 내서 운동할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친구와 술 한 잔 대신 커피로 바꿀 수도 있었으니 말이다. 그저 억제했던 돼지 본능이 코로나 변이만큼 무섭다고 할 수밖에. 덕분에 뱃살은 다시 셔츠 표면에 존재감을 드러내고 바지는 끼기 시작했다. 이런이런.


 결국 필요한 건 음식과 거리두기. 특히 밤 6시 이후에는 2명이 아니라 누군가를 만날 생각을 말아야 한다. 운동량을 늘리는 건 한계가 있기에, 해야 하는 건 먹는 걸 줄이는 일이다. 아직까지 4차 대유행은 잠잠해질 생각을 안 하는데 그전에 돼 유행을 끝내는 게 우선이다. 



# 1박 2일 제천국제음악영화제


 1박 2일간 영화제에 다녀왔다. 3만 보를 걸었다. 4편의 영화를 봤다.


 음악영화를 좋아해 한 번쯤 가보고 싶었던 영화제다. 하지만 8월 중순이라는 영화제 일정은 극장의 성수기와 겹쳐서 도저히 휴가를 써서 올 수는 없었다. 극장 일의 장점이자 단점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이 놀 때 일하고, 남들 일할 때 쉴 수 있는 점이다. 일을 그만두고 나서야 갈 여유가 생겼다.



 12시가 넘어서 도착한 제천역에서 영화관까지는 걸어서 20분이면 갈 수 있었다. 극장에서 숙소까지는 걸어서 10분. 차를 가지고 갈 필요가 없었다. 짧은 일정이었기에 관광보다는 영화제에 집중하기로 했다. 영화는 대부분 제천 메가박스에서 상영했고 음악영화제인 만큼 커다란 공터 같은 곳에서 공연 진행하는 듯했지만 일정과 맞지 않아서 포기했다. 1박 2일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필요한 건 선택과 집중이었다.


  인구가 10만이 조금 넘 소도시다 보니 도시의 정경은 읍내에 가까웠다. 과거 시멘트 공업 위주로 발달했던 제천시는 지금은 도시 자체가 힘이 빠지고 나이가 든 느낌이다. 극장 근처에는 재래시장이 있었으며 대로변에서 어르신들이 모여서 수육을 삶아 드시고 있었다. 정겹다는 말이 올랐다.


 제천에 사는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일주일 전에 밀접 접촉자로 지정되어 자가격리를 하는 바람에 볼 수 없었다. 대신 제천 맛집을 여러 군데 소개해줘 가이드를 따라가듯 맛집을 순회했다. 첫 번째로 간 곳은 영화관 앞에 있는 빨간오뎅. 나무젓가락에 오뎅을 꽂아 고추장 국물에 졸인 자극적인 맛은 초딩 시절의 분식집을 떠올리게 했다. 떡볶이 속의 오뎅보다 좀 더 칼칼한 맛이었다. 3개 천 원이라는 가격은 매력적이었다. 삶은 달걀 두 개도 추가해 2천 원에  제천에서의 첫끼를 해결했다. 이어서 추천받은 건 친구네 집이 운영한다는 한우해장국이었지만 휴무였다. 토요일에도 쉬는 당당함에 맛이 더욱 궁금해졌지만 그렇다고 하루 더 머무를 순 없었다. 두 번째로 도전한 건 등갈비 맛집이라는 두꺼비집. 하지만 2인분 이상 주문이라는 가게 룰 덕분에 입구 컷 당했다. 여러 지방을 혼자 다니면서 자주 겪었던 일이기에 쿨하게 돌아섰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시장 내에 위치한 순댓국집. 고소한 국물에 푸짐한 뽈살 고기의 양은 순댓국보다 고기 국밥이라는 말이 어울렸다. 국밥집 특성상 혼밥러를 배제하지도 않는 점도 좋았다.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었다. 덕분에 가지 못  한우해장국과 등갈비 집은 잊을 수 있었다.


 

 벽을 온통 노란색으로 칠하고 내부는 20세기말스런 인테리어의 제천 메가박스에서 총 4편의 영화를 봤다. 뉴욕의 다양한 버스커들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타임 투플레이; 뉴욕 버스커에 관하여>, 영화제에서 볼 수 있는 단편집인 <한국 음악영화의 오늘-2>, 테이크 온 미로 유명한 밴드 아하(a-ha)의 음악적 자취를 따라간 영화인 <아-하: 테이크 온 미>, 마지막으로 유명한 락밴드가 고향에서 공연하기를 바라며 천 명의 락커들이 합주하는 내용을 다룬 다큐멘터리 <천 명의 락커, 하나의 밴드>가 있었다. 두 편의 다큐는 영화적인 재미보다는 버스킹 문화와 락커들의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정도였고 단편영화집은 총 4편을 상영했는데 상영관 의자에 앉으면서 항마력이란게 필요할 정도로 만듦새가 조악했다.


 이번 영화제에서 건졌다는 느낌이 든 건 '아-하: 테이크 온미'였다. 테이크 온미라는 노래가 워낙 유명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원 히트 원더로 인식되지만 그들의 국가인 노르웨이에서는 국민이라는 타이틀이 붙을 정도로 유명했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해체와 재결합을 반복하면서 활동을 이어나가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인터뷰에서 서로를 대놓고 까는 모습도 북유럽스런 쿨함이 느껴졌다. 그들은 적지 않은 시간 동안 함께하면서 이뤄낸 성취만큼 깎여나간 감정들이 느껴지는 모습을 보여줬다. 영상이나 음향의 퀄리티가 다른 영화와의 차이가 날 정도여서 그대로 상업영화로 개봉해도 될 정도였다. 실제로 9월 22일 CGV 독점으로 개봉했다. 각기 다른 성격의 세 명이 밴드 활동을 하면서 서로의 단점을 담백하게 지적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Hunting High and Low'와 'Foot of the Mountain'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했다.



 숙소에 들어서자 워치에 걸음 수가 만 칠천 보 조금 넘게 기록되어 있었다. 2만 보를 채우기 위해 폰을 숙소에 두고 밤 산책을 하러 나갔다. 길치라 한 번도 꺾지 없고 앞으로만 쭉 나아갔는데 갔던 길을 돌아오기 위해 돌아섰을 때 전혀 다른 길 같이 느껴졌다. 덕분에 길을 헤매어 한 시간 넘는 시간 동안 걸었다. 걷다 보니 다다른 곳은 다른 지방의 개발구역처럼 허허벌판 위에 고층 아파트가 늘어선 풍경이었는데 자정이 지날 무렵 시원함이 느껴졌다. 올해 여름도 어느새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2021년 8월의 밤하늘


매거진의 이전글 카페 안에서 통화가 노매너인 근거를 서술하시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