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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soon Aug 26. 2021

카페 안에서 통화가 노매너인 근거를 서술하시오.

잡생각 영역 서술형 문제

# 쓸데없는 사색


 일을 그만두고 생긴 삶의 낙 중 하나는 사람들이 출근하는 시간에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것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웹툰이나 유튜브를 보기도 한다. 카페에 가는 목적이 친구와 대화를 나누거나 괜찮은 커피를 마시기 위해서일 때도 있지만 대부분은 집과는 다른 환경에서 집중해서 무언가를 하기 위해서다.


 봉준호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을 할 때 나에게 무관심한 사람들이 잔뜩 있는 카페에 가서 태블릿 피씨를 펴고 글을 쓴다고 한다. 한 곳에 오랫동안 머무는 게 아닌 두 시간 간격으로 카페를 옮긴단다. 주로 신촌에서 활동한다는데 상하의 전부 검은색 옷을 입은 파마머리 아저씨가 웅크린 채로 태블릿 피씨를 앞에 두고 작은 블루투스 키보드를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흐뭇해진다. 과연 사람들이 그런 존재감을 옆에 두고 무관심할 수 있을지는 모를 일이다. 지금은 해외에서나 가능하지 않을까?


 목적이 혼자 하는 일에 있는 만큼 커피 맛보다 중요한 건 카페의 분위기다. 개인적으로는 복층의 넓은 프랜차이즈 카페를 선호한다. 편한 의자와 널찍한 목재 테이블이 있고 주문은 1층에서 받기에 직원 눈치나 주문하는 내용이 들리지 않아 좋다. 카페의 위치도 중요하다. 아파트 단지 한가운데 있는 카페 목적에 맞지 않는데 복층이어도 대부분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붐비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역이나 관광지 근처에 있는 카페도 내 목적에는 맞지 않다.


 단골 카페 선정에 있어서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결과 대학가에 있는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의 복층 카페가 내 목적에 부합할 확률이 높다는 걸 발견했다. 그렇게 찾은 두 군데의 단골 카페는 호서대 입구 근처의 스타벅스와 단국대 호수 입구에 있는 탐앤탐스다. 탐앤탐스의 경우 복층은 아니지만 주문을 진동벨로 받기에 파트너가 이상한 닉네임의 고객을 찾는 하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그곳에 가면 대부분의 손님들은 노트북을 핀 채로 앉아 있고 나처럼 태블릿 PC를 피고 있거나 아니면 공책을 펴고 필기를 하고 있다. 겉으로 봐서는 대학생이 대부분이고 30대 초반인 나와 비슷한 연령대도 종종 보인다. 의자도 어느새 카공족을 위한 형태로 되어 있어 테이블은 널찍하고 쿠션이 푹신해서 오래 앉아 있어도 불편하지 않다. 대화 소리가 전혀 없는 독서실 같은 분위기가 아니라 일행이 있으면 조곤조곤 대화를 나누는 사람도 있다. 모니터 화면을 같이 바라보는 경우가 많으니 대화내용은 조모임이나 과제가 아닐까 한다. 인근 주민들로 보이는 중년 이상의 연령대도 보이는데 그 사람들도 주위 분위기를 신경 쓰는지 대화 소리가 그리 크지 않다. 혼자서 글을 쓰다가도 대화 내용이 재밌어 보이면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카공족들이 카페를 채운 가운데 소개팅 커플의 대화 소리가 카페에 울린 적이 있었다. 40대 남자와 30대 여자로 보였는데 남자와 여자의 대화 점유율이 9:1이었다. 남자의 적극성과 여자의 애매한 반응으로 보았을 때 애프터는 힘들지 않을까?

 


 카공족이 점유한 카페라고 해도 대화를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주위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다고 해서 일반적으로 카페라는 공간에서 지켜야 할 매너에 어긋나진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점주의 입장에서는 주문량 대비 자리 점유시간으로 볼 때 혼자 노트북 들고 작업하는 사람보다는 둘 이상이 와서 대화를 나누는 게 훨씬 환영할 만하다. 과거 대학가 카페 아르바이트하던 시절 사장님은 매상 비중에서 테이크 아웃과 일행이 있는 고객 점유율 높이는 것만 신경 썼다. 시험 기간에 카공족으로 카페가 가득 찼을 때 한숨만 쉬던 모습도 떠오른다. 한 때 카공족에 대해 뉴스 이슈가 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시장은 수요자의 행동양식으로 결정되기에 카공족도 카페 소비방식 중 하나로 인정받는 게 지금이다.


 하지만 카페에서 통화를 하는 건 어떨까? 시외버스나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수단에서 통화를 하는 건 통상적으로 비매너로 인식된다. 통화 소리는 전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기에 전화기를 든 사람의 목소리만 들린다. 옆에서 듣기에 한 사람만 얘기하는 것 같은 소리는 부자연스러워 귀에 거슬린다. 과거 시외버스에서 한 시간 내내 통화하는 아저씨 앞자리 앉은 적 있었는데 고역이었다. 코로나 시국인 지금은 버스 내부 표지판이나 안내방송에서 통화 자제 요청을 하고 있다. 하지만 카페에서는? 노트북을 피고 작업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어도 자리 곳곳에서는 대화를 나누고 있고 그게 자연스러운 장소에서 통화를 하는 걸 비매너라고 할 수 있을까?


 같이 카페에 온 친구가 그러고 있었다. 이어폰도 없이 고개를 기울인 채 전화기를 볼짝에 찰싹 붙이고 말이다. 화면이 큰 7인치 스마트폰도 안정적으로 부착될 만큼 널찍한 볼짝을 가진 친구는 아까부터 여기저기 걸려오는 전화를 자리에 앉아 받고 있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회사를 그만둬서 시간이 비는 날에 같이 카페에 간다. 다음 회사를 알아보기 위해서 혹은 회사 다니면서 보지 못한 지인들과 연락하는 친구는 볼짝에 찰싹 붙인 폰에 계속 말을 걸고 있었다. 그날따라 유난히 카공족 점유율이 높은 카페는 친구의 대화 소리만이 울려 퍼졌고 빠른 속도로 친구는 자신의 일상을 같은 공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공유하고 있었다. 나는 매너 그 이전에 내 대화 내용을 모르는 사람이 듣는다는 게 싫어서 길게 통화를 해야 할 때면 전화기를 가지고 밖에 나간다. 하지만 친구는 신경 쓰지 않고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지적을 해줄까 하다가 생각해봤다. 카페에서 전화를 하는 건 비매너인가? 반응을 살피기 위해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겉으로는 신경 쓰지 않고 이어폰을 꽂고 자기 할 일을 하고 있는 것 같이 보였다. 그래, 숙련된 카공족이라면 노이즈 캔슬링 이어폰 정도는 가지고 다니겠지 생각을 하다가도 살짝 찡그리는 사람이 있으면 친구의 통화소리 때문인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친구에게 전화는 바깥에서 하라고 말할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엔 아무런 말도 못 하는 내가 있다. 프로불편러로 보이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이다. 카페에서 통화를 하는 게 뭐 어때서? 스터디 카페도 아닌데. 애초에 카공족이 카페에 더 민폐가 아닌가? 그렇게 혼자 카페 이용매너에 관해 서술형 문제를 풀듯 중언부언 글을 써 내려간 나는 제대로 된 답을 써내지 못한다. 그저 건조한 말투로 친구에게 통화할 때 마스크는 쓰고 하라고 한 마디 건넨다.


누군가 이 문제에 답이 있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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